새로운 아이디어로 성공(이윤 창출)을 꿈꾸는 스타트업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윤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바꿔보려는 스타트업은 흔치 않다. 우리는 이들을 '비영리 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오마이뉴스>가 2018년 새해를 맞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해보려는 '젊은' 비영리 스타트업들을 만나봤다. [편집자말] |
비영리 스타트업 '시스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업을 빨리 확장하고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려는 절박함이 있지도 않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는 당연했지만 더 이상은 당연하지 않은 가치들을 찾으려는 소박함이 묻어난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이라기보다는 대학교 동아리 같은 느낌을 준다.
"어느 순간부터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찾기가 어려워졌어요. 누군가는 스마트폰에서 원인을 찾고, 또 누군가는 아동 범죄를 얘기하고, 또 누군가는 저출산을 얘기하는데 내 경험을 돌아보니 어린 시절에 뛰논 경험이 성장한 후에도 어려움을 헤쳐가는 데 도움이 많이 됐더군요." (김은주: 세종대 환경에너지공간융합학과 13학번, 24)김은주 대표는 동 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꾼 채진백(12학번, 25)씨와 의견 투합해 '시스브로'를 시작했다.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막이 없어진 지역공동체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 대학생들이 보호막 역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없다는 현실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는데 이대로 두면 아이들이 앞으로 잃을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이 되고보니 중고등학교 때 마음껏 놀아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어요. 놀이라는 게 굉장히 주체적인 활동인데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자라면..."(김은주)
시스브로 회원들이 노란 후드티를 맞춰 입고 매주 일요일마다 광진구와 성동구 일대에서 '놀이+터 플레잉'을 진행한 지도 어언 1년 반이 흘렀다. 프로그램에 등록한 아이들의 수도 8명에서 480명으로 크게 늘었다.
부모들의 반응은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황금 같은 일요일에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자녀들과 서너 시간씩 놀아주는 이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모들은 큰 고마움을 느꼈다.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할 수 있는 안전사고도 그래서 비교적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두어 차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다쳐서 병원 응급실로 데려간 적이 있는데 부모들이 하나같이 "시스브로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며 넘어갔다고 한다. 김은주 대표는 "안전 문제 때문에라도 부모님을 설명회에 반드시 초청하고, 프로그램 시작 전에 아이들에게도 안전수칙을 설명하곤 한다"고 전했다.
'못된 부모들'의 시대에 부활한 '이웃사촌'
처음 모집할 때 낯선 어른들에게 경계심을 드러내던 아이들이 지금은 멀리서 '노란 후드티'를 알아보고 달려와 안기는 것도 꽤 익숙한 풍경이 됐다. 어린 자식을 학대하는 '못된 부모들'의 뉴스가 튀어나오는 시대에 이 정도면 '이웃사촌의 부활'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그들이 변하는 모습을 접하는 것은 또 다른 소득이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논다는 것은 나눔을 공유한다는 것인데, 아이들이 워낙 외아들, 외동딸로 자라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함께 노는 즐거움을 전달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게임 규칙 때문에 싸우는 경우도 꽤 있구요."(채진백)동네 놀이터들을 워낙 섭렵하다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에도 눈이 트이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놀이터의 문제점이랄까? 아이들에게는 스릴과 모험을 찾는 욕구라는 게 있는데, 지금의 놀이터들은 너무 안전하고, 심하게 얘기하면 '보기만 좋은' 놀이터 일색이에요. 우레탄 같은 소재로 안전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는데, 아이들이 별로 재미를 못 느끼게 만들어진 셈이죠. 미국·유럽의 놀이터는 약간 위험하게, 아이들이 계속 놀아도 질리지 않게 만들어졌어요. 우리나라 놀이터는 미끄럼틀, 철봉, 시소 등등 놀이기구의 목적은 분명한데 재미가 없어요."(김은주)시스브로는 서울지하철 2호선 뚝섬역 인근에 만들어져 모래놀이터 등을 갖춘 상원어린이공원을 새로운 유형의 놀이터로 예시했다. 어른들을 위한 체육시설에 비해 아이들을 위한 공공놀이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곧바로 "아이들에게도 투표권이 있다면 이렇게 놔두진 않겠죠?"라는 말이 나왔다.
동네마다 키즈카페가 있고, 시간당 1만 원 안팎의 돈을 받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서비스업체들이 늘어나는 대도시에서 시스브로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매우 특이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활동의 공익성을 인정받아 광진구청의 마을공동체 공모 사업, 성동구의 청년도전프로젝트 지원 사업에 연이어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시 NPO지원센터의 비영리스타트업 쇼케이스에서 '탑 5'로 선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스브로가 계속 존속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노는 비용을 청구? 어떻게 설명할까요?"
우선, 스스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놀이전문가'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베이비시터' 정도로 보는 일부의 시선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가 고민이다.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외부의 지원을 받으면 '드디어 인정 받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러분은 착한 학생들이다. 착한 학생은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며 우리들의 활동을 당연시하는 분들이 있다. 우리들도 시간이나 체력이 남아돌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마음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김은주)앞으로의 전망은 시스브로를 시작할 때부터 따라다녔던 '숙제'다. 지금은 대학생 신분이지만, 학업을 마친 후에도 영원한 '동네 언니·오빠·형·누나'로 남을 수 있을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기업이라면 돈을 벌어야하는 것은 분명한데, 아이들에게 노는 것에 대한 비용을 청구한다는 게 너무 싫어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길 텐데 저희는 많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목표와 지속가능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김은주)채진백씨는 "영리든 비영리든 기업 형태로 나아가긴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도 "우리끼리는 농담 삼아서, 지금 만나는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후에도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또 다른 아이들에게 베품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다"고 덧붙였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두 젊은이는 앞으로 어떤 답을 찾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