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저쪽(바른정당)에서 결혼을 구애하지도 않는데, 이쪽(국민의당)에서는 몸이 달아가지고... 신부의 몸값은 계속 떨어져만 가는데도 불구하고, 참. 부모와 친지들이 걱정하는,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조언은 듣지도 않고, 그저 말 한번 뱉었으니까 무조건 고(GO)하겠다고 하는 게 과연 이게 우리 당 창당 초심과 맞는지, 국민들 기대에 부응하는 것인지. 저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5일 오전,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을 반대하는 의원들 모임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회의에서 장병완 의원(광주 동구남구갑)이 한 말이다. 최근 39명 당 의원들이 각기 통합 찬성·반대·중재파로 나뉘어 대치 중인 가운데, "개혁신당을 추진하겠다"며 통합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모인 회의에서 통합 반대의 이유를 강조하려다 나온 발언이었다. 순간 기자는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두 귀를 의심했다.
이날 장병완 의원은 당내 통합파, 혹은 안철수 대표를 '신부'에 비유하면서 반대파 중진 의원들을 '딸 걱정하는 부모·친지'에 비유했다. 정당 간 통합·합당을 남녀 간 연애·결혼에 비유하고, 합당을 '이혼'에 비유하는 게 옳은 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신부가 결혼에 몸이 달았다. 신부 몸값이 떨어진다"는 말은 문제가 있다. '몸값' 발언에는 여성을 사고파는 물건인 양 보는 차별적 시선, 가부장적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장 의원의 이런 발언은 젊은 여성 유권자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 발언을 들은 20대~30대 여성들은 각기 "구시대적인 비유다. 정확하지도 않고 발언 자체도 문제가 있다(29세 ㅇ씨)", "국회의원들의 이런 말 이젠 듣는 것도 지겹다(32세 ㄱ씨)", "굳이 신랑·신부에 비유하는 이유는 뭐냐. 이건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다(33세 ㄱ씨)"는 등 불편함을 나타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지난 19대 대선 때 20대 여성 유권자의 투표율(79%)은 같은 선거 50대 남성 유권 투표율(77.9%)보다 높았다. 성별 투표율을 보더라도, 18대 대선(여성 76.4%, 남성 74.8%)에 이어 19대 대선 때도 여성 유권자의 투표율이 77.3%로 남성 투표율(76.2%)보다 더 높았던 게 현실이다. 의원들의 여성 차별적 발언은 향후 당 선거 전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병완 의원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차별적이라고 느끼셨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애초 "맥락을 봐 달라. '몸값'만 문제 삼는 건 달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보는 것"이라 반박하던 장 의원은 가부장적·차별적 언어라는 지적에 "정체성 차이를 강조하려다 나온 말이었다. '몸이 달았다'는 건 양당 상황이 뒤바뀌어 있다는 얘기였다"며 "그런(성차별) 뜻이나 의도는 아니었는다"고 말했다.
한편 장 의원은 지난해 9월 "한국 여성의 직장 내 차별이 심하다. 여성이 인사상 성별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도록 대책 강구를 촉구한다"는 제안 이유를 들어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안을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대표발의자 신용현 의원).
배제·차별적 시선 담긴 부적절한 정치권 비유정당 문제를 '연애·결혼·이혼' 등 남녀 사이로 비유하는 것은 왜 문제일까. 이는 가부장적 성 역할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일부 성소수자들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혈액형 같은 사람만 결혼하느냐"는 안철수 대표의 말, "합당하게 되면 합의 이혼이 차선책"이라는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비례, 당 전국여성위원장) 발언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러나 언론들마저 기사 제목에 '합의 이혼', '결혼'이란 단어를 스스럼없이 쓴다. 부적절한 비유의 오남용은 국민의당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자당 대선후보를 '옥동자 출산'에 비유, 대선후보가 없는 것을 '불임(不妊) 정당'이라 말해 논란이 됐다(행정상 용어는 '난임'이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영등포구을)이 지난 국정감사 당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을 향해 한 "방송을 강간해온 범인이 저를 성희롱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발언은 또 어떤가.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라디오에서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100년 내로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마라"는 발언을 농담처럼 했다가 성차별 논란이 일자 사과했다. 2009년, 추미애 당시 환경노동위원장에게 홍준표 원내대표가 "일하기 싫으면 집에 가서 애나 보든지 (아니면) 배지 떼라"고 했던 발언도 유명하다. 류여해-홍준표 대표가 주고 받은 '첩','주모' 비유가 구시대적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인들에게 비유는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다. 60대~70대인 나이 또는 남성(혹은 여성)이라는 자신의 성별이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아무리 정치가 '말의 향연'이라지만, 스스로 내뱉는 발언이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닌지, 여성과 장애인·성 소수자 등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지, 국회의원들은 좀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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