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권리를 외국인이나 타인이 빼앗으려 하거든 생명을 바쳐 싸워라. 이것만이 내 평생 소원이다."
오늘(5일)은 나라와 국민의 독립을 부르짖던 서재필 선생이 숨을 거둔 지 67년째 되는 해다.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세우며 계몽을 강조했던 그를, 후손들은 한국 근대사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재필 선생의 소원은 '인민의 온전한 독립'이었다. 당시 그는 정부란 인민의 종에 불과하다며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이 나라를 빼앗으려 하거든 '생명을 바쳐 싸우라'라고도 주문했다.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그는 개혁의 패인을 일본에 대한 의존에서 찾았다.
1896년 4월 7일. 서재필 선생은 정동에 위치한 정부 소유의 한 건물에서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독립을 위한 계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선생은 신분이 낮은 사람과 여성들도 쉽게 읽도록 순 한글로 출판했다.
이후에도 선생은 '독립'을 향한 소명을 이어갔다. 독립협회를 세우고 독립문 건설 사업을 전개했으며, 협회를 앞세워 서양의 국부 찬탈에 맞섰다. 그의 활동은 우리 민족의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지만, 동시에 선생을 서양 열강의 눈엣가시로 만들었다. 서양으로부터 출국을 종용당하던 그는 결국 미국으로 추방됐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5일, 서재필 선생은 미국의 한 병원에서 후두암과 과로로 일생을 마쳤다. 끊임없는 외압에도 독립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그를, 오늘 하루 마음 속 깊이 새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