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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삶의 의욕이 없다. "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듯이 살고 있다. 외롭다고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그 상태로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면서, 노인은 거친 손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자식들 곁으로 가고 싶지만 누구도 흔쾌히 노모를 받아주지 못한다. 먹고 살기 바빠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늙은 애미가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일 아침에 눈 뜨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인생의 말년에 '죽고 싶다'는 소망만이 남은 노인에게 '죽음'이란 고통스러운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외로움이라는 속박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다. 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죽음을 갈구할 만큼 삶을 지옥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죽음을 사유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삶을 성찰하게 된다.

할머니는 가슴이 꽉 막혀 답답하다고 했다. 이야기라도 하면 속이 뚫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이 늙은 여인의 인생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다면 할머니가 겪고 있는 지독한 우울증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했다.

애석하게도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다 핑계일 뿐이다. 조금 더 마음을 쓸 걸, 한번 더 할머니의 손을 잡아줄 걸,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말 걸기

<고령사회에서 자서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표지 .
<고령사회에서 자서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표지. ⓒ 한국기록연구소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내 주변에는 조금씩 아픈 분들이 많다. 대개 노인성 질환과 같은 신체의 질병보다는 우울감, 고립감, 외로움 등 마음의 병으로 더 힘들어 한다. 노인들에게는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효과를 발휘한다. 진심으로 말을 거는 행위는 당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노인들은 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찾아간다.

임순철 한국기록연구소 대표가 쓴 <고령사회에서 자서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읽으며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작업이 왜,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나는 다시 할머니와의 못다한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올해는 더 많은 어르신들의 생애 인터뷰를 나의 사회복지실천 중요 과제로 설정했다.

"노인은 죽음을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죽음의 순간까지 가족이나 사회의 일원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을 비롯한 사회의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관계가 지속되어야 한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가족과 사회의 발전에 자신이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11쪽)

"희망과 계획이 없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을 살려내는 일은 사회적 책임이다. 그들 현재의 노인을 구조할 적임자는 미래의 노인들이다." (15쪽)


임 대표는 "노년세대에게 노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아주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힘없는 패배자의 모습으로서의 소외가 아니라 타인과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를 소망한다. 나아가 자기 이야기가 가치 있는 것으로, 가치 있는 삶으로 인정받는 것은 곧 자부심이다. 이럴 때 노년의 내일이 기대와 희망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57쪽) 설명한다.

현재 노인들의 이야기를 미래에 노인이 될 이들이 들어주어야 한다. 노인이 이야기하는 대상은 가족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다. 노인 자서전을 만드는 작업은 세대간의 단절된 소통을 복원하고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노인 자서전은 실존적 측면에서 자아통합 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 세대 통합의 기능도 하게 된다.

'경청'은 노인의 삶에 대한 예의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은 '문제'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나는 노인, 아동,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가 국가의 품격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노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는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화두이다. 노인빈곤율, 노인자살률, 노인우울증, 노인학대 등 노인의 삶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에서 1,2위를 다투는 한국사회 노인의 삶은 고달프다. 노인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를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노인의 삶을 더 존중해야 한다. '경청'은 굴곡진 근현대사를 살아내고 인생의 황혼기에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단절에 직면한 노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경청하고 존중할 때 노인은 비로소 '문제'에서 '존재'로 대접받는다.

임 대표는 "한 사람에 대한 이해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미 일어난 이해와 앞으로도 항상 새로이 일어날 이해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사회는 끊임없는 관계에 의해 지속된다. 이 관계를 잇기 위하여 노인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노인들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타인에게,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고(46쪽)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고령사회에서 자서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임순철 지음 / 한국기록연구소 펴냄 / 2017.10. / 9,5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령사회에서 자서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 노인, 이야기하기를 욕망하다

임순철 지음, 한국기록연구소(2017)


#고령사회#구술생애사#노인 자서전#노인문제#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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