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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화재와 경남 밀양화재 이후 소방관들의 명예와 자존심이 바닥까지 내몰렸다. 계속되는 인명피해의 책임과 원망을 모두 소방관들에게만 돌리고 있는 모양새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난의 화살은 곧바로 소방관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동안 법에서 정한 기준인력도 제대로 충원 받지 못한 채 노후된 장비와 목장갑을 착용하면서도 사람을 살린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한계점에 다다른 듯 보인다. 

'우리의 임무는 계속된다' 지난 12월 21일 밤 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안으로 향하고 있다.
▲ '우리의 임무는 계속된다' 지난 12월 21일 밤 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안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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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다. 힘들다"라고 어렵게 속내를 드러낸 소방관들은 자괴감에 빠진 채 소방관들을 향한 압수수색과 불구속 기소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일부는 진지하게 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사람을 살리려고 소방관이 되었지만 이젠 더 이상 그 소명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선언으로 들려 왠지 서글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소방관은 아무나 할 수도 없고 또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돈을 떠나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리고 싶다는 맹세를 한 소방관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운명처럼 이 일과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현장활동 중 크고 작은 부상에도 아픈 줄 모르며 인명 구조활동에 몰입하는 그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웃이다.

그런데 혹자는 재난의 결과만을 보고 현장대응을 판단한다. 소방호스 한 번 잡아본 일 없는 이들이 소방관들을 향해 매서운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잘못된 소방작전은 없다. 왜냐하면 작전의 우선순위는 인명구조, 재산보호, 그리고 사건을 최대한 빨리 안정화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현장활동의 원칙이고 현장지휘의 방침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현장활동의 결과가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분명 제천화재도 밀양화재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향후 사고백서를 만들면서 보다 세심한 조사와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방관들이 규정을 어겼거나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조사받고 문책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약속으로부터 게을렀을 때 채찍을 맞는 것도 당연하다.  

결과만으로 현장대응 논하는 것은 위험한 논리

하지만 몇 명의 소방관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기 보다는 정작 신경 써야 하는 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는 무책임한 안전의식, 상식과 예방에 훨씬 못 미치는 안전 관련 법규와 제도, 그리고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행위가 많은 사람들을 다치거나 죽게 만든 주범이 아닌지 묻고 싶다.  

결과만을 가지고 현장대응을 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논리다. 100% 만족스러운 소방관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소방관 혼자서 현장에 뛰어 들어가 수십 명의 사람을 구하는 일 역시 소설에서나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해 12월 발생한 충북 제천화재의 원인은 1층 주차장 천장 배관이 동파되지 않도록 설치한 4개의 보온등에서 스티로폼으로 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26일 발생한 경남 밀양화재의 경우에는 불법으로 설치된 1층 탕비실 천장 전기배선에 합리적 의심을 두고 조사 중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직접적인 원인들 이면에 더 심각한 문제들이 화재감식과 조사가 진행되면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비상구 폐쇄, 방화구획 미비, 불법 증축, 형식적인 자체 소방점검, 건물의 용도와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상식 이하의 법과 시스템이 또 다른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안전은 반드시 스스로가 지켜야 할 의무이자 권리다. 그런데도 국가는 매번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 무한책임주의'를 표방하며 재난의 주범들 앞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왔다. 

국민들 역시 안전을 국가에만 의존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부터 수십 년 동안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국민소득 3만 불을 달성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느끼는 국민들의 안전의식은 아직 1만 불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방서 차고 앞에 무단으로 주차를 하고는 소방서가 쉬는 날인줄 알았다는 변명도, 언제든지 사용해야 하는 소화전 앞에 보란 듯이 주차하는 사람도, 아파트 단지에서 짖어대는 새가 시끄럽다며 해결해 달라는 요청도 이젠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평상시엔 고생한다며 소방관을 영웅이니 슈퍼맨이니 치켜세웠다가도 자신이 위급한 상황이 되면 언제든지 소방관에게 욕하고 폭행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젠 두렵다는 소방관들의 고백이 무겁게 다가온다.

소방관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저 불이 나면 떼거지로 몰려나가 불만 끄는 힘센 동네 아저씨나 아줌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말인가?  

죄 없는 자가 있다면 먼저 소방관에게 돌을 던져라.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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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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