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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잘린 아파트 경비원' '경비원 울리는 갑질' '경비원, 꼼수에도 눈 질끈 할 수밖에 없는 이유' 

하루 걸러 하루, 혹은 매일매일. 끊임없이 쏟아지는 관련 뉴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요즘이다. 뉴스의 헤드라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이 클릭을 하고야 만다. '경비원'이 '뉴스'가 되는 현실이 어쩐지 불편하고 불안하다. 또, 아빠의 얼굴이 겹쳤기 때문이겠지.

'그냥 피하자' '뭐 뻔한 내용이지. 그동안 내가 들었던 거, 내가 봐왔던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럼 어쩌지' 라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기사를 눈으로 읽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 뒤엔 아빠가, '그럼 어쩌지' 라는 생각 앞엔 일흔을 넘긴 나의 아빠가 서 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알고 일을 한다. 양쪽 어깨에 아이들을 둘러매고, 뒤로는 아내를 업고, 손으론 제 몸만 한 짐 가방을 들고 그렇게 새벽을 걸어 나가 다음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옅은 그림자가 누군가의 아빠가 될 수 있고,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겐... 적어도 내겐, 작고 늙은 히어로로 비춰진다.

흔히, 그런 말들을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라고. 보통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집단이 그런 말들을 한다. 이것 역시 피해의식이 만들어 낸 생각이겠지만, 이미 많은 걸 가졌으니 그 정도 아량이나 베풂은 오히려 그들을 더욱 '있어 보이게' 만든다. 이처럼 쿨해 보일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없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직업엔 귀천이 있다는 걸 몸으로 안다. 누구 하나 그들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 적이 없고, 그들 스스로도 딱히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알게 된다. 오랜 세월 몸에 새겨졌으니까.

어떤 날엔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지를. 그 물음에 아빠의 얼굴이 더해졌고, 내가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은 '직업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정말 믿고 싶다는 거였다. 아직 나에게 그 믿음은 유효하다. 그리고 깨지지 않는 진리 같은 거였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우리 집에 소파가 생겼다!

작은 아빠는 꼭 아빠를 닮은 조그만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 하신다. '국민 경차'로, 연식도 꽤 오래 된 차다. 자동차랑 주인은 닮는다던데 이정도면 쌍둥이 수준이다. 덜덜 거리는 차를 타고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며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아빠를 떠올리면 다리 하나가 삐그덕 거리는 의자처럼 마음이 좋지 않다. 의자에 꼭 맞게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정물화처럼 그려진다. 왜 인물화는 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 아빠가 못내 안타까워, 정말 큰 맘 먹고 소파를 선물했다
 그런 아빠가 못내 안타까워, 정말 큰 맘 먹고 소파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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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빠가 못내 안타까워, 정말 큰 맘 먹고 소파를 선물했다. 우리 집에 딱 맞는 3인용 소파. 아빠가 집에서만이라도 조금은 넓게 아빠의 자리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합성피혁의 인조 가죽 소파는 67만9천900원이었다.

물론, 소파가 들어갈 자리는 집에 없었다. 그래도 애를 써 가며, 낡은 가구들을 정리해 욕심으로 들여 놓았다. 70평생 아빠의 첫 소파. 그리고 60평생 엄마의 첫 소파. 태어나 한 번도 소파를 가져본 적이 없는 분들이다. 그러니 나 역시 인생의 첫 소파다.

태어나자마자 집에 소파가 있었다면 애초에 소파를 가졌던 사람이라면 그게 뭐 대수냐, 별거냐 하겠지만, 나이게도 '소파'라는 가구는 조금 특별하다. 그 안락함과 편안함을 가져보지 못해서 그랬을까, 주어진 적이 없어서 였을까... 말로는 표현이 잘 안 되지만 무척이나 갖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소파가 생겼다! 이제 우리 세 식구, 배불리 저녁을 먹고 오순도순 소파에 앉아 하루를 얘기하고 정리하겠지 싶었는데... 또 낯선 풍경이 그려진다. 아빠가 소파에 등을 기대고 편히 앉지 못하고 소파 가장자리, 그 끝에 겨우 엉덩이만 걸터앉으시는 거다. 굽은 허리를 세우고 불편한 자세로 TV를 보시는데 왜 그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또 어떤 날엔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아 계신다.

'아~ 답답해. 소파는 도대체 왜 산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소파가 있어도 소파를 쓰지 못하는 현실이, 이것도 사용법이 따로 있는 걸까? 아니면 사용자가 따로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신경질이 났고, 그 화살은 결국 나에게로 향한다. 너무 늦었단, 책망이랄까.
 
소파 생활 4개월 차. 이제 아빠도 여유가 좀 생기신 모양이다. 소파에 털썩 앉는 건 물론, 모로 누워 TV 보기는 유일한 낙이 된 듯하다. 네모 박스의 경비실에서 벗어나 아빠도 아빠의 자리가 생겼다. 굽은 무릎을 그나마 편하게 뻗을 수 있게 됐다. 딸은 그 모습을 오래도록 인물화로 남기고 싶다. 작품 제목은 작고 늙은 나의 히어로!    


태그:#경비원, #히어로,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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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끝, 마음에 평온이 깃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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