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하루 2번 48분, 3년 동안 책을 읽으면 1000권이 된다고 한다. 또다른 누군가는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이 있다고 한다.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시중에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 한 분야가 독서법이다. 독서의 중요성은 강조되는데 독서의 과정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독서법을 담은 책이 출판되고 있다. 그런데 독서법을 펼쳐내는 저자들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와의 위계를 설정하고, 보편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독서법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심어준다.
책이라는 욕망을 부추기는 데에는 일단 성공적일지 모르나 독서법의 결과를 통해 저자처럼 될 수 있다는 확신은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심지어 독서 실패 이유를 '책에 도전하는 이의 게으름과 의지 부족'으로 단정하는 경우도 있다.
김병완은 물이 끓기 직전에 불을 끄는 사람들은 라면을 끓여먹지 못한다면서 임계점을 통과할 때까지 읽으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의 책 <48분 기적의 독서법>에서 밝히는 바다. 그는 책에 미쳐야만 삶에서 즐거움과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며 성장하는 자신을 온전히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 자체를 바꾸어주는 습관은 독서 습관뿐이라는 그의 책에는 소시민의 행복보다 큰 사람이 되려는 방법론을 기술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든다.
실제로 그의 독서 기적의 사례를 살펴보면 에디슨, 김용옥 교수, 나폴레옹, 마오쩌둥,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유명한 분들의 사례만 나열되어 있다. 집중 독서 기간을 통해 한 차원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더 훌륭한 삶을 살면 좋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평범한 삶을 사는 소시민들이다.
그의 책에는 48분을 확보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텔레비전 앞에 책을 가지고 가는 방법, 티타임 대신 티북타임을 가지는 방법, 화장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참 절실하다.
그의 논리대로 하루 48분씩 96분을 확보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는 세상의 모든 책은 유익을 주니 닥치는 대로 읽으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책을 고르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절대로 해가 되는 책은 없다고 한 그는 책을 고르는 능력으로 책의 우위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다.
책의 우위, 다독의 위력을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와 다소 우격다짐식의 논조로 글을 이어가는 그는 몰입 독서법, 이미지 독서법, 1+1 독서법, 상상독서법, 포인트 독서법을 소개하여 3년간 1000권의 책을 독파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독서법의 제목들은 그럴 듯하나 내용은 참신하지도 않고, 제시한 방법이 독서의 즐거움을 전해줄지 의문이다.
"또한 몰입 독서법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독서 능력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시시한 책은 권태를 자아내고, 어려운 책은 근심과 불안을 자아낸다." - 211쪽
"어떤 책이라도 도전할 수 있는 도전 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 257쪽
그는 위처럼 장과 절에 따라 다소 다른 입장을 나타내기도 한다. 단순한 문장 한두 개의 차이일 수도 있으나, 그는 너무 많은 책을 읽고 정리하지 못하여 상황에 따라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의심해본다.
10권의 읽고 1000권의 효과?<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이라는 책의 저자 이정훈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단어 뒤로 숨지 않았다. 그는 소독(小讀)의 기술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소독의 철학을 논한다. 물론 다독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꼭 양이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직업적 독서가나 위대한 인물보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보통의 독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함으로써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9시에 퇴근하는 일반인들의 피곤한 삶에서 억지로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도 한다.
책을 꾸준히 읽기 위해서는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한다. 책을 읽는 강박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찾는 일이 먼저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고 한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다 보면 관심이 깊어지고, 결국 책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순서에 맞춰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위와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나무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나무를 직접 보고, 만진다.
관찰을 하다 보니 나무는 어떻게 물을 잎까지 전달할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고, 그것이 증산작용이라는 낯선 발견을 함으로써 앎과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즐거움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페테 볼레벤의 <나무 수업> 등의 책을 찾아 읽는다. 혹자는 호기심 자체가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지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누구나 어떤 분야든 호기심은 있다. 세상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책은 다양하다.
그는 책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반복해서 읽고, 여러 사람과 나누고, 쓰기를 함께 하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또다른 호기심이 생기고 독서 영역이 확장되지 않을까?
소개한 순서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독서노트 작성 등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들에서는 개인의 역량과 개성에 맞춰 변형할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열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 '1,000권'이란 제목은 다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책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도 기술과 방법, 효과, 성공이라는 MSG같은 단어를 넣어야 이목을 끌 수 있는 시대의 역설이 담겨 있는 책 제목인 것이다.
저자는 책 제목과는 정반대로 다분히 철학적이거나 생각의 깊이를 강조했다. 물론 생각의 폭과 다양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독서법을 제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기적', '혁명', '성공'이라는 독서법에서 상처받고 포기하는 독자들에게 자그마한 위안이 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년에 5만여 권의 책이 출판되는 상황에서 선택과 배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1년에 300권(일 년 출판량 대비 0.006%)을 읽든, 10권(일 년 출판량 대비 0.002%)을 읽든 출판되는 총 수에 대비하면 미미한 차이임을 새삼 밝힌다.
결국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언제 읽을 것인가? 무엇을 읽을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왜 읽을 것인가? 그러나 독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책을 읽는 태도인 것이다. 이정훈이 말한 '책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태도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점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