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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의 목적>은 고등학교 교사인 이유림이 교생실습을 나온 최홍에게 집적거리면서 시작된다. 이유림은 최홍에게 성관계 여부를 묻고 몸매를 품평하는 등 성희롱을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딱 3초만 넣고 있을게요"라고 외치며 강제로 성기결합을 하는 장면이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중략)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이유림만의 '언어'가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고 하는데, 과연 합의 이전에 사용된 이런 식의 언어가 나중에 둘이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정당화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왜 여성은 이토록 수동적으로 묘사되며, 남성의 소유물이자 전유물로 등장하는 것일까?

왜 이유림의 언어적, 신체적 성폭력은 아름다운 사랑의 탈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내가 자라서 직접 '여성은 능동적이고 독립적이며 강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집 <다음이는 귀엽다음> 16편 '나는 그렇게 프로불편러가 되었다' 중에서)

잠시 외출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집배원이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내 손에 책을 한 권 안겨준다. 열어보니 그냥 그저 평범한 개인 문집이 들어있다. 그런데 표지에 적힌 지은이가 낯이 익은 이름이다.

그랬다. 지난해 충북 진천 혁신도시에 개교한 자립형 공립고인 서전고등학교 1회 입학생인 최양다음. 지난여름, "치마 줄여 입고 바지 입는다고 해서 비행 청소년이 되지 않는다"며 활동하기 편한 남학생 교복을 직접 사 입어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학생이었다.

(관련 기사 : "여학생은 바지 입으면 안 되나요? 당연히 됩니다")

 문집 <다음이는 귀엽다음> 표지.
문집 <다음이는 귀엽다음> 표지. ⓒ 최양다음

 문집의 목차(좌)와 16편 ‘나는 그렇게 프로불편러가 되었다’ 중 일부.
문집의 목차(좌)와 16편 ‘나는 그렇게 프로불편러가 되었다’ 중 일부. ⓒ 최양다음

"옷은 옷일 뿐, 날개가 아니다"라며 세상에 일침을 가했던 다음이의 문집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기보다는 이 멋진 학생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 발길을 돌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첫 장을 펼치니 다음이가 직접 내 이름을 쓰고, 아래에는 새해 인사까지 적혀있다.

과연 어떤 글들이 실려있을까? 다음이와 가족의 사진을 포함하여 17편으로 구성된 이 문집은 책을 펴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읽고 또다시 읽었다. 예리하면서도 당찬 표현 하나하나들은 절묘한 대칭의 황금비율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특히 입시 현실이나 인권 등 사회의 부조리를 바라보는 능력과 그것을 표현하는 글솜씨는 감히 어른조차 흉내를 낼 수 없이 날카롭다.

"늘 알고 있었고 너무나도 비효율적임에 틀림이 없음에도, 낙후될까 봐 도태될까 봐 두려워 입 다물고 따라가는 교육제도. 말을 이렇게 해도 나 또한 이 교육제도를 따를 것이다. 진짜 왜 나는 대학을 가려는 걸까? 대학과 나는 무슨 상관이 있지? 도대체 왜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불안할까? 이게 내 현실이고 우리들의 현실이다. '누군가는 바꾸겠지'라고 생각한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바꿔야 한다." (3편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를 보고')

쉬지도 않고 읽어 내려간 이 문집은 그냥 문집이 아니었다. 고등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 전반의 적폐를 한 번 더 돌아보는 비판과 성찰의 거울이었다. 꿈이룸학교 장영승 교장과 오만환 시인의 추천사로 시작되는 이 문집은 아버지(최봉수)와 어머니(양은미) 그리고 동생(최연)의 추천 글도 빼놓지 않았다.

 추천사를 흔쾌히 써 준 꿈이룸학교 장영승 교장.
추천사를 흔쾌히 써 준 꿈이룸학교 장영승 교장. ⓒ 최양다음

 문집에 등장하는 최양다음 가족 사진.
문집에 등장하는 최양다음 가족 사진. ⓒ 최양다음

문집은 "안녕하세요! 최봉수와 양은미의 딸, 최양다음입니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17년을 살아온 반성문과 서평, 영화평, 생활글, 감상문 등 총 17편을 실었다.

문집의 말미엔 "벽장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은 동성애자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라며 동성애자 문제는 물론 남성의 전유물로 비친 한국의 여성상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교복과 머리규제 등에 대해 특히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 같은 명상에 잠기는 모습도 눈에 띈다. 천진하고 해맑은 모습이 보기 좋다.

책에는 글쓴이의 인생이 담겨 있다. 다음이는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용기 있게 글을 썼고 또 그렇게 만든 문집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17년의 시간에 새겨놓은 한 문장 한 문장의 위력을 생각하면 작가의 상황이 아닌 독자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책의 가치는 특히나 그 빛을 발한다. 그가 던진 한 문장이라도 우리 마음에 담을 수 있어도 그 값을 충분히 다하고도 남았다.

다음이가 이번에 발간한 이 문집은 원래는 학교 과제물로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집을 만들다 보니 이런저런 기획이 떠올랐고,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살아온 날과 살아야 할 날들을 정리하고 다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문집을 편집하기 시작했고 지난 1월 말 이웃과 지인들을 위주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시중에서는 살 수 없다.

 최양다음 학생.
최양다음 학생. ⓒ 최양다음

다음이의 문집에서는 반드시 건질 수 있는 것이 있다.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이 시대 청소년의 고뇌와 다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것들은 언젠가는 무너진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의 사회는 얼마 못 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라며 당차게 외치는 이 학생은 충청도 진천읍내 문화마을에 사는 최양다음이다.

문득 야누시 코르차크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청소년은 없다. 다만 사람이 있을 뿐이다."


#최양다음#고등학생#문집#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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