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로 단번에 세계적인 지식인 반열에 오른 유발 하라리, '역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통섭 인문학을 선보였다. 세계적인 석학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1998년작 <총.균.쇠.>를 연상케 하는 인류역사학의 대작이다. 인간이 가장 관심있는 건 역시 '인간'임을 이런 책들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유발 하라리의 전공은 '중세 역사'와 '전쟁 역사'라고 한다. 박사학위도 '중세 전쟁사'로 받았다고 하는데, 굉장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겸비한 그의 전쟁 이야기가 어떤 재미를 선사할지 궁금하다. 학문적 고증과 저자의 행실은 둘째치고,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대중 인문 교양서인 시오노 나나미의 다양한 중세 전쟁사 이야기 책들이 생각나게 할까. 유발 하라리의 지금이 있게 한 원류의 책이 나왔다.
<대담한 작전>(프시케의숲)은 유발 하라리의 전공을 제대로 살린, 그야말로 가장 그다운 지식과 스토리텔링의 향연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특수작전', 그것도 서구 중세 시대의 아무도 자세히 알지 못할 특수작전에 대해 다룬다. 1장은 중세시대, 즉 기사도 정신 시대의 특수작전에 대한 전반적 해설이고, 2장부터 7장까진 개별적인 특수작전들을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선보인다.
명확한 자료에 입각한 팩트, 상상력과 추측에 입각한 픽션의 아슬아슬한 경계 혹은 균형이 개개의 이야기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곧 딱딱한 역사 따위는 저멀리 던져버리고 한없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선사하는 것이다. 한 편 한 편의 특수작전 이야기들은 차라리 한 편의 영화에 가깝다.
암살과 납치, 니자리파의 특수작전
특수작전에 암살이 빠지면 섭하다. 서구 중세시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점과 최고지휘관이었다. 그것들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정통적 공성전의 정규작전만이 답이었는데, 특수작전 즉 암살과 납치야말로 지극히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 책은 기사도 정신의 중세에 암살과 납치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책에서 보여지는 특수작전들의 행태를 보면 맞는 말이다. 그중 니자리파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비밀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암살' 'assassin(아사신)'이 다름 아닌 이 조직에서 유래했다. 이 조직은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과격파 집단 중에서도 극닥전인 파였다. 그들은 유럽 전역에 그 악명을 떨치며 여러 지역에 독자적인 근거지를 확립했다.
그들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것은 몬페라토 후작 콘라트가 예루살렘 왕 대관식을 앞둔 때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탈라아 북부의 가장 중요한 귀족가문 중 하나인 몬페라토의 후작 콘라트는 살라딘에 의해 망해가는 예루살렘 왕국에 도착해 착실히 기반을 늘려간다.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 왕관을 쓰게 된 그다.
대관식으로 분주하던 차, 콘라트는 수도사로 변장해 있던 니자리파의 두 암살자에 의해 말 위에서 혹은 성당 안에서 살해당한다. 배후 없이 니자리파 수장에 의한 직접적 암살이었는지, 애초에 콘라트를 지지하지 않았던 잉글랜드 왕 리처드가 배후였는지 잘 나가던 차에 걸림돌이 된 콘라트를 암살할 필요가 있던 살라딘이 배후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로 인해 니자리파의 명성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한 편의 영화에 가까운 책 한 권책은 이밖에도 다양한 특수작전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로 공성전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공격측에 의한 기습인데, 그 방법이 대부분 매수이다. 충성심이 투철하지 않은 책임자 중 한 명이라도 꿰어내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돈으로 유혹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역공을 당한 사례도 있다. 그 사실을 사전에 알고 함정을 파놓은 것.
15세기쯤 되면 유럽이 봉건시대의 절정기, 수많은 가문들의 이합집산이 혼란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 와중에 독살로 수렴되는 암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행해졌다. 물론 그 죽음이 누구에 의한 암살인지, 암살이 맞긴 한 것인지 정확히 알려진 건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누군가에 의한 특수작전일 터다.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서구 중세시대 특수작전 이야기는 비단 특수작전만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적어도 그 전후로 50~100년은 훑어야 하는 바, 사실상 1000~1500년대까지 유럽 역사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대하역사소설 내지 서구 중세시대 역사 이야기에 특수작전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 한 편을 얹어 놓은 느낌이다.
한편, 고상하고 고고한 명예에 입각한 기사도 정신의 이중적 성격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람의 인생과 나라의 운명이 달린 전쟁에 무슨 명예 따위가 설 자리가 있을 것인지 생각하면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수히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정규작전보다 특수작전이야말로 전쟁에서 그나마 가장 '좋은' 개념이 아닐까. 비록 소수의 생명은 어쩔 수 없이 버려질지라도.
특수작전이라는 특수한 주제에 대한 특이한 주장이 이리도 스무스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는 건 전적으로 저자의 몫이겠다. 그 가치와 쟁점 등의 연구적 목적을 제쳐 두고서라도 이 책은 참으로 재미있게 잘 읽힌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연구서로서는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이미 이름높은 유발 하라리이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저작물들을 더 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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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작전>,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프시케의숲 펴냄, 201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