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롱이가 사진관에서 우리 가족과 사진을 처음 찍은 것은 2016년으로 다롱이가 14살이었을 때다. 이미 사람 나이로 90살이 넘은 노견이었다. 물론 사진 찍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코커스패니얼인 다롱이는 에너지가 넘쳤고 몸부림을 많이 쳤다.
단체 사진을 찍고 나서 독사진을 찍는 차례였다. 장난감으로 다롱이의 시선을 카메라 렌즈에 고정하려고 해도 다롱이는 카메라 앵글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난 후 특단의 조치로 우리 가족은 다롱이 시야에 보이지 않게 밖으로 나가야 했다. 병원에서도 수의사는 개가 흥분해 진찰이 어려울 경우 견주를 밖으로 내보낸다. 혼자 남은 개는 의지할 곳이 없어져 얌전해진다. 덕분에 다롱이는 무사히 독사진을 촬영했다.
그렇게 다롱이와 함께한 가족사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누군가와의 좋았던 기억은 언제나 순식간이다. 그리고 만남 뒤에 있을 이별을 준비한다. 다롱이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초였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다롱이에게 이상한 증상이 보였다. 자다가 한 번씩 코를 킁킁거렸다. 처음에는 갑자기 바뀐 주변 환경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생각하고 넘겼다. 매일매일 반복되다 나는 결국 다롱이와 함께 병원을 갔다. 병원에서는 감기약을 처방했다. 약을 먹고 다롱이는 낫는 듯했지만 결국 상황은 악화됐다.
5일 뒤에 다시 찾아간 병원 수의사는 피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하자고 했다. 큰 이상은 없었다. 그때 나는 다롱이가 숨쉬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수의사에게 보여드렸다. 수의사는 코에 종양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CT를 찍자고 했다.
나는 고민됐다. CT를 찍으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했다. 수의사는 다롱이가 고령인 것을 감안하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다롱이는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산책이 마냥 신나기만 한 듯 폴짝폴짝 뛰면서 겨울 내음을 음미했다.
며칠 뒤 다롱이에게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그날따라 유독 더 다롱이는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보였다. 다롱이는 그 상황에서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현관문을 바라봤다. 가족들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당시 아버지는 출장 중이었고 언니는 결혼해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나서 엄마와 함께 다롱이 곁을 지켰다. 그리고 이 세상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에게 빌었다. 도와달라고. 이대로는 보낼 수 없다고.
다음 날 엄마의 추천을 받아 다롱이가 어릴 때부터 다녔던 인천의 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라운 결과를 알게 됐다. 수의사는 다롱이가 노견이라 신체가 약해졌고 약해진 잇몸이 이빨을 잡아주지 못해 이빨이 상악골을 뚫어 코의 공기 통로를 막았다는 것이다. 다롱이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이유였다.
아롱이와 아픈 몸을 살다나는 수술을 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수의사의 생각은 달랐다. 수술하면 살아서 나올지 그대로 이별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의사는 다롱이의 몸 상태는 힘들어도 여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겠냐고 했다. 나는 소염진통제와 다롱이가 좋아할 만한 맛있는 간식을 잔뜩 사 들고 집으로 쓸쓸히 돌아왔다.
나는 원래 다롱이에게 간식 주는 것에 너무 인색했다. 다롱이가 오래 살기를 바랐기에 간식은 생식이나 조리해서 최대한 채소나 과일 위주로 주었고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닭가슴살은 엄마가 직접 생닭을 조리해 줬다.
그랬던 내가 병원에 다녀온 후 다롱이에게 간식을 마음껏 주기 시작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서 사온 간식을 먹어 신세계를 경험한 다롱이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간식 껍질을 버린 쓰레기통을 뒤지며 쓰레기통 뚜껑까지 뒤집어쓰기까지 했다.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했던 다롱이였다.
그러나 다롱이의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병원에 다녀온 지 이틀 만에 코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온갖 방법을 써도 멈추지 않았다. 날이 밝아 나는 급하게 택시를 잡아 다롱이와 인천 병원으로 가려고 했다. 콜택시를 부르니 케이지에 넣거나 소형견이 아니면 기사님이 눈치를 준다. 어쩔 수 없이 애견택시를 불러 인천까지 갔다. 비싼 비용을 지불했지만 나도 다롱이도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수의사는 다롱이의 이빨이 코의 살을 뚫기 시작해 피가 나는 것이라며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괜스레 뻘쭘했다.
집으로 돌아간 밤 다롱이 코에서 누런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멈추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롱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수의사 선생님의 추천으로 다롱이의 호흡을 도울 수 있는 네블라이저(천식 호흡기 치료기)까지 구매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다롱이는 얼마간은 간식을 골고루 먹고 산책도 했다. 간혹 누런 콧물은 흘렸지만 피는 흘리지 않았다. 그렇게 다롱이는 감기약부터 진통소염제까지 약을 먹은 지 한 달이 되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약을 먹기 싫어했다. 별 방법을 다 썼다. 다롱이가 정말 좋아하는 딸기 안에다 약을 숨겨서 줘도 뱉어냈다. 약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1월 29일이 됐다. 다시 다롱이가 잠을 안 자기 시작했다. 쿠션을 놓아도 박차고 나갔다. 나는 등에 다롱이를 업었고 그제야 다롱이는 편하게 잤다. 나는 엄마와 교대로 다롱이를 간호했다.
그러나 다롱이의 몸 상태는 하루가 더 나빠졌다. 누런 콧물과 간혹 섞여 나오는 피가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혹시나 해서 간호를 하면서 코 종양에 대해 검색했다. 다롱이 증상과 같았다. 나는 그날 밤 눈물을 쏟았다. 나는 일본에 사는 언니에게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연락했다. 다롱이는 밤마다 현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는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곧바로 집으로 왔다. 다롱이는 언니를 보며 너무나도 좋아했다.
다롱이와 함께 한 마지막 순간그날부터 다롱이는 입에서도 피가 났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는 CT를 찍어야만 알 수 있다고 했다. 청담동에 있는 한 CT 전문 촬영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전신마취 후 다롱이는 무사히 깨어났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서 몇 시간이 흘러 다롱이는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힘이 없어 화장실에 계속 누워 있었다. 다롱이는 숨을 힘겹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새벽이 되자 다롱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집안 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집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자는 언니 옆으로 가서 누운 뒤에 거실로 나와 창가 커튼 뒤로 들어갔다. 나는 다롱이를 안아주며 "너무 힘들면 내려놔도 괜찮아. 옆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마.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마"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롱이는 그제야 있는 힘껏 숨을 몰아쉬며 내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렇게 내 품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며칠 뒤 다롱이를 화장했다. 다롱이의 유골을 정리하던 날, 나는 고인이 되신 외할머니와 다롱이가 인사를 나누게 하고 싶었다. 다롱이는 생전 외할머니와 친하게 지냈다.
그곳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가족과 외할머니 산소에 방문했을 때였다. 갑자기 낯선 진돗개가 다가와 눈물을 흘렸다. 음식을 줬으나 먹지 않았던 그 백구는 어느새인가 종적을 감췄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다롱이는 암이 몸 전신에 퍼진 상태였고, 코 안구 쪽의 뼈는 아예 녹고 있었다.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롱이가 떠난 뒤 나는 펫시터 일을 시작했다. 견주가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갔을 때 강아지를 맡겨 놓고 가면 돌보는 일이다. 때로는 견주와 함께 동물병원에 가서 강아지 상태를 함께 보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한 펫시터 일도 벌써 약 1년이 됐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으로 돌본 강아지가 코커스패니얼이었다. 그 뒤 9마리가 넘는 강아지들이 우리 집을 거쳐 갔다. 나는 더욱 세심하게 강아지를 돌보고 싶어서 반려동물행동교정사 자격증까지 땄다.
다롱이가 떠난 지금 우리 가족은 아직도 다롱이를 잊지 못하고 있다. 다롱이는 우리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고 웃게 해줬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다롱이에 대한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아 새로운 만남을 하기 어렵다. 다롱이가 세상을 떠나고 며칠 뒤 내 꿈에 나온 적이 있다. 넓은 초원에서 행복하게 뛰어노는 꿈이었다. 부디 꿈처럼 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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