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국민의 관심이 쏠린 재판이 있었다. 바로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 선고였다.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받아 구속 상태가 유지되었던 이재용 부회장은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뇌물사건은 1심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1심의 판결과 정반대의 방향의 판결이 나온 후 국민들의 관심은 해당 판결을 내린 정형식 판사와 사법부에 쏠렸다.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는 정형식 판사의 이번 판결과 과거 판결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사흘이 지나지 않아 참여인원이 20만명을 돌파했다.
국민의 분노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
게시된지 사흘이 되지 않았지만 20만명이 넘는 국민이 청원에 참여했다.
정형식 판사에 대한 청와대 청원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왔다. 그의 파면을 요청하는 청원부터 특별감사를 요청하는 청원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 청원들이 가지는 의미는 같다. 이는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분노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의 관여자로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포함한 승마선수들에게 삼성이 지원을 결정한 것은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의 승계와 관련된 민정수석실의 보고를 받았다는 보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보도들은 국민들이 이재용 부회장이 제공한 뇌물이 삼성의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이재용 부회장의 1심 판결에서 재판부가 이를 '암묵적 청탁'으로 인정하면서 뇌물의 대가가 삼성의 승계였음을 인정했다.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특검이 구형한 12년에 비하면 낮은 형량이라는 평가도 있었고,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한 발판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여타 다른 대기업 회장들처럼 1심에서 집행유예로 구속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2심은 달랐다. 2심에서는 이 부회장의 승계 과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로인해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아 구속을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뇌물을 준 것이라는 판결로 일종의 피해자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 부회장의 죄는 국민들의 생각과 다른 판결로 이어졌다. 이 지점에서 일어난 국민들의 분노가 보여주는 것은 이번 판결이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에 예외가 있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정형식 판사의 발언은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이 부회장의 2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 가장 많이 거론된 이름은 정형식 판사다. 정 판사는 이 부회장의 2심 판결 이후 판결에 대한 논란이 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두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의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의 시작은 그의 생각을 보여줬다.
"판결을 내리기 전부터 이런 일(신상털이)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판결이라는 게 형사든, 민사든 불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 사람이 잘했다고 하겠습니까."그는 판결에 진 사람들이 불만을 표하는 일은 당연하다는 뜻의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에서 정 판사가 이야기 하는 '진 사람'은 누구일까? 법리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번 판결에서 진 사람은 특검이다. 특검이 구형한 12년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특검 역시 판결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진 사람'은 특검만이 아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국민들은 어쩌면 진짜 '진 사람'이다. 국민은 그와 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해 강한 분노를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를 '진 사람'의 불만 표출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 중에 선택한 단어일지 몰라도 이는 정 판사의 생각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사법부가 되어야 한다이번 판결로 국민들이 보여준 것은 정형식 판사 한 명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사법부가 보여준 국민의 생각과 반하는 판결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들에 대한 불신을 표한 것이다. 사법부는 이를 무엇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이 국민의 민심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정부 부처가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사법부의 상징인 투명함과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국민들의 신뢰가 없다면 제 아무리 사법부가 법에 의거한 판결을 내린다 한들 그 공정성은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이번 논란으로 사법부는 스스로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사법부에 대한 분노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정형식 판사를 향한 20만명의 청원 참여는 한 명의 판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다. 지금껏 국민들이 동의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사법부에 대한 문제제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 easteminence의 작은 눈으로 보는 큰 세상에도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