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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습니다. 어떤 때는 채 열 명이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쉰 명이 넘었습니다. 피맛길에서 시작해 명동, 뚝섬, 문래동, 돈암동, 성북동, 인왕산, 인왕산 자락 행촌동, 청량리, 남산의 남쪽 후암동에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골목들을 찾았습니다. 5년 전부터 시작한 골목여행이 120차례 이상 이어졌습니다.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거리거리, 골목골목에 흐릿하게 남아있는 구전(口傳)에 귀 기울였습니다. 바싹 마른 바위에 까만색으로 메말라 남아있는 생명 질긴 이끼처럼 버티고 있는 풍경들은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이름으로 전해지는 유래는 알밤을 줍듯 챙겼습니다. 여기에 이삭처럼 떨어져 있고, 저기에 오줌싸개가 이부자리에 남긴 흔적처럼 남아있는 사연들 또한 차곡차곡 주워 담았습니다.

<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 여행>

 <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 여행> / 지은이 김란기 / 펴낸곳 발언미디어 / 2017년 12월 26일 / 값 15,400원
 <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 여행> / 지은이 김란기 / 펴낸곳 발언미디어 / 2017년 12월 26일 / 값 15,400원
ⓒ 발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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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 여행>(지은이 김란기, 펴낸곳 발언미디어)은 서울 정릉동에서 인문학사랑방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동반자들과 함께 서울 골목을 찾아 두 발로 걷고,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보며 온몸으로 더듬은 흔적과 느낌을 담아낸 내용입니다.

울퉁불퉁한 담장이 나란히 이어지던 골목, 숨바꼭질하기 딱 좋게 성글게 대문이 달려있던 골목길이 없어졌습니다. 처마가 야트막하게 달렸던 집채까지 무너뜨리며 조붓했던 골목은 어느새 넓혀졌습니다.

흙 내음 풀풀 날리던 길은 포장길이 되었고, 종종걸음을 치던 사람들 대신 자동차들이 휙휙 달리는 대로가 되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골목,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도랑을 이루던 골목이라는 말 자체가 어느새 흑백사진으로 된 앨범에서나 찾을 수 있을 법한 추억의 단어가 된 듯합니다.

'피맛길'하면 언뜻 피 맛쯤 나는 끔찍한 사연을 유래로 품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나마 높은 사람들이 탄 말을 피하던 길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예전에는 무섭든 더럽든, 곤란에 처한 몸과 마음을 잠시 피할 골목이 은신처이자 의지처가 골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 종로의 '피맛길'이 그 이름을 갖게 된 데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높은 사람이 큰 길을 지나갈 때 도성의 민초들은 엎드려 조아려야 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여 피맛길말을 피하다이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였다고나 할까. 반상의 구분이 유난한 계급사회의 지배층과 관료들의 유세를 엿볼 수 있다." -<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 여행> 13쪽


책을 통해서 더듬어가는 골목에는 전설에나 나올 법한 까마득한 옛날 옛시절 이야기, 우여곡절로 점철된 일제 강점기시절의 사연, 체류가스가 풀풀 날리던 몇 년 전까지의 상황들을 아름아름 그려낼 수 있는 풍경들이 그렁그렁한 그리움으로 남았습니다.   

"전에는 충무로 길을 진고개라고 했다. <진고개 신사>란 노래도 있었다. 앞서 명동길에서와 유사한 고민이 진고개길에서도 되풀이 된다. 진고개야말로 거리라고 하면 거리가 되고 골목이라고 하면 골목이 된다. (중략) 그나저나 앞서 이야기한 '비 내리는 명동거리'와 연결하여 각하면 오래전 진고개는 엄청나게 '진'질척거리는 고갯길이었으리라." - <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 여행> 37쪽


책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 골목에 잔상처럼 스며있는 사람들, 그 골목을 배경으로 산 인생, 그 사람들이 그려낸 작품 속 골목까지도 조망하듯 그리고 탐사하듯 살폈습니다.

성북동 산자락에 있는 길상사에는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져 있고, 대원각 주인이었던 기생출신의 김영한이 백석과 만리장성처럼 쌓았던 사랑이 실핏줄 골목을 따라 촘촘하게 이어집니다.

세월을 넘고, 공간을 초월해 더듬어가는 골목, 그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불어 그려내는 골목은 역사와 사연,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나이테 같은 궤적입니다.

서울 속에 이런 저런 골목이 있고, 골목골목마다 주정뱅이처럼 넋두리로 풀어야 할  사연이 있고, 자명종소리처럼 스스로 되새겨야 할 역사가 스며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골목은 점점 흐릿해질지라도 인문으로 새길 수 있는 골목은 호롱불 밝기를 대신해 LED빛 밝음으로 각색되며 보존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 여행> / 지은이 김란기 / 펴낸곳 발언미디어 / 2017년 12월 26일 / 값 15,400원



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여행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7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김란기 지음, 발언미디어(2017)


#인문으로 만나는 도시골목 여행#김란기#발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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