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조지 오웰, 생떽쥐페리, 앙드레 말로, 로버트 카파, 빌리 브란트. 직업도 조국도 다른 세계적인 작가, 사진가, 정치가인 이들의 이름이 한 줄에 나열될 수 있는 공통점은 뭘까? 그것은 바로 이들이 스페인 내전의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지 않고서는 스페인 내전이 언제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푸른 달빛이 비치는 밤 미국 의용군 로버트 조던(게리 쿠퍼 분)과 스페인 게릴라군 처녀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 분)의 애틋한 키스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는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이라고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도 로버트 카파의 유명한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도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도 배경은 모두 스페인 내전이었다. 애덤 호크실드의 <스페인 내전 –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아래 <스페인 내전>)는 제2차 세계대전에 묻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 스페인의 비극이자 세계의 비극인 스페인 내전을 다룬 책이다.
미국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인 애덤 호크실드는 스페인 내전에 의용병으로 참전한 사람들의 일기, 편지, 비망록과 같은 각종의 기록물과 신문기사, 논문, 책은 물론 생존자들과 참전자들의 친구, 가족,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서 싸우고, 싸우다 죽어갔는지를 저서 <스페인 내전>을 통해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애덤 호크실드는 사회적 정의에 관심을 가진 우리 모두의 정치적 조상이 바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이들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그러며 그들을 알아가고, 그들이 속한 시기와 장소에서 나라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자, 민주주의, 공산주의,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등 온갖 이념이 각축전을 벌인 20세기 최고의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고 불리는 스페인 내전. 애덤 호크실드의 <스페인 내전>은 연대를 통해 대의와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깨어 있던 시민들의 시각에서 스페인 내전을 바라본 바로 그들의 기록이다.
자명종이 울렸는데 왜 일어나지 않은 거야?버클리 대학교 경제학과 수석조교로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다 내전 소식을 듣고 스페인으로 달려간 로버트 메리먼, 열아홉 나이로 신혼여행 중 남편과 함께 스페인으로 간 로이스 오르, 홀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하고 스페인으로 간 스물한 살 필 샤흐터, 아버지가 켄터키주 공화당 의장을 지낸 켄터키 출신 대학 4학년생 조지프 셀리그먼 주니어 등 미국과 유럽 등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국제연대 조직 '국제여단'에는 총 50개 이상의 국가에서 3만 5천 명 내지 4만 명의 의용병들이 참가했다. 미국인은 대략 2800여 명, 그 중 750여 명이 내전 중 전사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은 군인이 아닌 다수의 미국인들이 미국 정부의 방해를 물리치고 다른 나라의 내전에 참여한 유일한 전쟁이었다고도 한다.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그리고 노동자에서부터 아이비리그 출신까지, 출신지역도 출신성분도 각기 달랐던 이 사람들이 스페인에 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부모님께서 이 편지를 받으실 무렵 저는 유럽에 있을 겁니다. 스페인으로 갑니다. … 너무 흥분되고 화가 나서 … 다른 일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파시스트가 판치는 시대에 대학 졸업장을 받는다는 것이 저로서는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제게는 스페인이야말로 중요한 시험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본문 162쪽
조지프 셀리그먼 주니어가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부모에게 보낸 편지다. 저자는 스페인의 위기에 대해 사람들이 도덕적이고 선명한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한다. 급속히 확산되는 파시즘에 대해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고, 마치 여기서 저항하지 않으면 어디서 저항하겠느냐는 것과 같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한 스물세 살의 하이먼 카츠가 전사하기 일곱 달 전 어머니에게 쓴 편지는 모든 의용병들에게 최고의 비문(碑文)이 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편지의 내용은 스페인에 오지 않았다면 그 뒤로 언제까지나 "자명종이 울렸는데 왜 일어나지 않은 거야?"(의역하면, 왜 도움의 손길을 뿌리친 거야?)라고 자문했을 거라는 것이다.
이겼으면 좋았겠지만"우리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가슴 속에 모두 스페인을 간직하고 있다. … 옳은데도 패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이길 수 있으며, 용기가 보상받지 못한 시대가 있다는 것을 체득한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다"라고 알베르 카뮈는 썼다.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정말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결론적으로 스페인 내전은 패했다.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민주적인 인민전선 내각이 들어서자, 이에 반대하는 프랑코 장군의 군부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발발한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 세력 대 반파시즘 연대 세력이 맞붙은 도덕과 정치의 시금석이자 다가올 세계대전의 서막으로도 인식되었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군사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한 프랑코의 반란군과 달리 공화파는 파시즘이 공산주의 확산에 방해가 될 것으로 여긴 소련을 제외하고 서방 세계 그 어떤 국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미국은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하지 않았고,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모두 외면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만 하더라도,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나면 내전은 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분위기로 충만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스페인 내전은 당대에 일어난 그 어느 사건보다 "만일의 문제"를 많이 야기시키기도 했다. 만일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구매를 원했던 공화파에 무기를 팔았다면? 그랬다면 그 무기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보내준 비행기, 잠수함,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고 끝내는 다른 십 수 개 나라들도 침략했을까? 만일 공화파에 무기를 팔았다면 수백만 명의 사망자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야기한 2차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보다는 규모가 작은 다른 방식의 전쟁이 일어나게 할 수 있었을까? 이런 문제들 말이다." - 들어가는 말 中 13쪽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저자는 여러 가지 만약을 가정한다. 그런데 가정을 통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면 만약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화파에 등 돌린 것을 너무 늦게 후회한 루스벨트 대통령과 같은 때늦은 후회가 앞으로는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스페인 내전이 끝난 11년 뒤 한반도에서도 동족끼리의 전쟁이 있었다. 한반도의 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지금도 대치중이다. 그렇다면 스페인 내전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애덤 호크실드는 내전의 승패가 결정된 곳은 늘 그렇듯 전장이 아닌 열강의 회의장이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각 혹은 순수한 이상에 따라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젊음과 용기를 불태운 당대의 의용병들을 기린다는 면에서라도 <스페인 내전>은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가지리라 생각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했던 전투, 살아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전투 속에서도 로버트 메리먼은 "그동안 삶이 충만했던 것은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다른 사람들도 내가 시작한 삶을 살고,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욱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이라고 일기에 썼다.
'내면에 신념을 가질 수 있는 나 자신이야말로 고결한 존재'라는 종군기자 루이스 피셔의 말처럼, 대의를 위해 신념을 갖고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먹먹하고 울컥하고 뭉클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덧붙이는 글 | <스페인 내전 -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616쪽, 201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