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배치를 조작한 네이버(대표이사 한성숙)가 해명 및 재발 방지 대책 요구에 4개월 가까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외부 기관의 청탁을 받고 뉴스 배치를 조작하는 데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던 점에 비춰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뉴스 시장을 독점한 네이버의 갑질 횡포를 막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축구연맹 "이번이 마지막 부탁"... 2시간 40분 만에 수용한 네이버<오마이뉴스>는 지난 2016년 10월 3일
'한국프로축구연맹, 누군가를 처벌할 자격이 있나'(이근승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네이버에 송고했다. 해당 기사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심판 매수 사건과 관련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내린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이날 오전 9시 55분 네이버스포츠 축구 면에 배치된 이후 낮 12시 44분까지 많은 댓글과 '좋아요'로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갑자기 댓글 달리는 속도가 줄더니, 낮 1시 56분부터 오후 3시 15분까지 한 건의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을 받은 네이버가 이 기사를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기사 배치 조작'은 약 1년 후인 지난해 10월 20일
스포츠 매체 <엠스플뉴스>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이 매체는 청탁의 근거로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네이버 고위관계자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김아무개 홍보팀장이 네이버스포츠를 총괄하는 금아무개 이사에게 청탁성 문자를 보낸 것이다.
김 팀장은 이날(2016년 10월 3일) 오전 11시 21분 금 이사에게 "휴일에 연락을 드려서 죄송하다"면서 "K리그의 기사 관련한 부탁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한 번 부탁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얼마 후 해당 기사의 댓글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김 팀장은 다시 금 이사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김 팀장이 금 이사에게 두 번째 문자를 보낸 시각은 오후 2시 2분.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노골적인 청탁이 네이버에 적용되는 데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엠스플뉴스> 보도 직후 한성숙 네이버 대표 명의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성숙 대표는 "감사 결과, 네이버스포츠 담당자가 외부의 기사 재배열 요청을 일부 받아들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네이버가 사업과 관련이 있는 기관의 청탁을 받아 뉴스 배치를 조작했다고 시인하자, 독자들은 배신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네이버가 뉴스 편집·배치 공정성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뉴스 배치 과정상 절대 있을 수 없는 구조"라며 전면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기사 재배치 청탁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축구연맹 홍보팀장이 네이버에 보낸 문자 중 "기사 관련한 부탁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문구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성숙 대표는 이번 건에 대해서만 조사를 진행하고 서둘러 봉합했다.
네이버의 공정성 시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삼성의 요청을 받은 네이버가 경영권 승계 작업 관련 기사를 축소 배치한 정황이 드러났다. 네이버 등 포털이 '법령이나 행정·사법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실시간검색 순위에서 특정 검색어를 삭제하거나 노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유지해온 사실도 확인됐다.
게다가 지난 보수 정권 내내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진보 매체의 기사를 정치적인 이유로 전면에 배치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한성숙 대표가 이번 축구연맹 청탁 건에 대해서만 조사를 진행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면피성 조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6개월간 무응답이더니... 이번에도 4개월간 무응답한성숙 대표는 뉴스 조작 의혹을 부인할 수 없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자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엠스플뉴스>에 따르면, 네이버에 '외부 청탁에 의한 기사 재배치'를 포함해 여러 의혹을 최초 질의한 건 지난해 4월 5일이었다. 이 매체가 네이버의 기사 배치 조작 건을 처음 보도한 것은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10월 20일. 그 사이 네이버는 철저하게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김아무개 홍보팀장의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네이버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네이버 내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회사가 큰 타격을 입게 됐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냐, 회사에 기여한 바도 있고"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네이버의 뉴스 배치 조작은 '국민을 상대로 한 기만행위'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0월 25일 한성숙 네이버 대표에게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의 뭇매가 쏟아질 때만 잠시 고개를 숙였던 네이버는 <오마이뉴스>의 답변 요청에 4개월 가까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네이버가 여전히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음은 <오마이뉴스>가 네이버에 보낸 공문 전문이다.
1.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6년 10월 3일 '한국프로축구연맹, 누군가를 처벌할 자격이 있나'(이근승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네이버에 송고했습니다. 당시 이 기사 대해 네이버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을 받고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재배치한 사실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합니다.2. 해당 기사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심판 매수 사건과 관련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내린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2016년 10월 3일 오전 9시 55분 네이버스포츠 축구 면에 배치된 이후 낮 12시 44분까지 많은 댓글과 '좋아요'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댓글이 달리는 속도가 줄더니, 낮 1시 56분부터 오후 3시 15분까지 아예 댓글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을 수용한 네이버의 '기사 배치 조작'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축구연맹 홍보팀장이 네이버에 보낸 청탁 문자와 실제 배치 조작이 진행된 뒤 보낸 감사 문자를 보면 충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누리꾼의 상당수는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신문·방송 매체의 기사를 포털을 통해 구독하고 있으며, 이미 네이버의 뉴스·미디어 검색 점유율은 70%를 넘었습니다. 네이버는 그동안 뉴스 편집 공정성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구조"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네이버가 청탁을 받고 뉴스 배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단순히 네이버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무너졌다는 정도로 치부될 일이 아닙니다. '돈'과 '권력'만 있으면 네이버에서 불리한 기사를 숨기고 국민을 기만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기자와 독자를 비롯해 수많은 누리꾼이 네이버에 대해 큰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3.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 10월 20일 내부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동일한 조직 내에 스포츠 기사를 배열하는 부문과 언론 취재의 대상인 스포츠 단체와 협력하는 부문이 함께 있다 보니, 구조적으로 해당 기사 내용과 같은 의혹의 가능성을 원천차단하지 못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러한 의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조직의 편재 및 기사 배열 방식에 대해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라고도 했습니다. 반면 네이버 내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회사가 큰 타격을 입게 됐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냐. 회사에 기여한 바도 있고"라며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네이버가 여전히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4. 특히 한성숙 대표 이름의 사과문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우선 축구연맹 홍보팀장이 네이버에 보낸 문자는 이번 청탁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 대표는 이번 건에 대해서만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네이버의 뉴스 기사 배치 등 공정성 시비는 이미 여러 차례 불거졌습니다. 최근에도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삼성의 요청을 받은 네이버가 경영권 승계 작업 관련 기사를 축소 배치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네이버 등 포털이 '법령이나 행정·사법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실검 순위에서 특정 검색어를 삭제하거나 노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유지해온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게다가 지난 보수 정권 내내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진보 매체의 기사를 정치적인 이유로 전면에 배치하지 않았다는 심증은 사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네이버가 이번 축구연맹 청탁 건에 대해서만 조사를 진행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면피성 조치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동일한 조직 내에 스포츠 기사를 배열하는 부문과 언론 취재의 대상인 스포츠 단체와 협력하는 부문이 함께 있"을 경우, 이미 구조적으로 관계 기관의 청탁이나 압력, 개입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성숙 대표와 네이버는 정말 몰랐던 것입니까?또한, 한성숙 대표의 사과문에서는 기사 배치 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오마이뉴스> 이근승 시민기자에 대한 사과가 빠져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처음 보도한 <엠스플뉴스>는 "네이버 에디터들 사이에서 마이너 언론사와 시민기자의 기사는 '언제든 날려도 되는 기사' 정도로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복수의 전·현직 네이버 에디터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한성숙 대표 역시 <오마이뉴스>나 시민기자의 기사에 대해 같은 인식을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위와 같은 이유로 <오마이뉴스>는 한성숙 대표와 네이버에 다음과 같은 조처를 요구합니다.(1) 네이버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을 받고 <오마이뉴스> 기사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재배치한 사안에 대한 내부 감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십시오.(2)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 사례 외에 추가적인 사례는 없었는지, 뉴스 배치 공정성 문제 등에 대한 전면 감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십시오.(3) 네이버 에디터들은 정말 "마이너 언론사와 시민기자의 기사는 언제든 날려도 되는 기사" 정도로 낮게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한 해명을 요구합니다.(4) 재발 방지 대책과 관련, 네이버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제휴 언론사들이 참여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청회 등의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6. 네이버는 기사나 정보의 단순 전달자를 넘어 편집과 배포라는 언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3자에 의한 감시와 견제 등 투명성 확보 대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언론학회의 우려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오마이뉴스>는 향후 한성숙 대표와 네이버가 잃어버린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나가는지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2017년 10월 25일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