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맨날 일하고 와서 소파에 누워서 티비만 보다가 자기가 배고프면 엄마 시켜서 배고프지도 않은 우리를 억지로 밥 먹게 시킨다. 그럴 때마다 '네 밥은 네가 차려먹어'라고 소리치고 싶다." 가출하고 싶을 만큼 화가 난 적 있는지 물었을 때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신나게 썼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질문 중에서 가장 잘된 질문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더라고요. 아이들의 글은 기발하면서도 가슴 아팠습니다.
"이건 정말 너무하다", "담임선생님께 전화해달라고 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야겠다", "어쩜 그렇게 말할 수가 있니?" 하면서 제가 더 화를 냈습니다.
아이들은 "맞죠?", "정말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이 봐도 진짜 어이없죠?" 하면서 격하게 반응합니다. 아이들은 위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동네 도서관의 아주머니 대상 강의에서 감동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이제 대 명절이 코앞에 다가왔죠? 남편이나 아이 아빠에게 이 글을 보여주면 어떨까요? 왜 아주머니들이 환호했는지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어쩌면 올해 지방선거보다 더 중요한 이슈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책 한 권을 출간했습니다. 원래 책 안에 담겨 있는 30여 권의 인문고전을 가지고 이야기를 펼치려고 계획했지만 계획을 바꿨습니다. 故 이민호 군의 사고를 겪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중학생들의 외침을 경청하는 것이 소중한 지면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 대신 책 안에 담겨 있는 인문고전 중에서 본 칼럼의 취지에 부합하는 말을 소개합니다.
여인들과 아이들과 하인들과 약한 이들과 궁핍한 사람들과 무지한 이들의 잘못은 곧, 남편들과 아버지들과 상전들과 강자들과 부자들과 유식한 이들의 잘못이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올해는 제주4.3 일흔 번째 해입니다. 1년 내내 많은 관련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얼마 전에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제주여민회가 주최한 <제주여성 4.3의 기억>이라는 포럼입니다(관련 기사:
제주4.3과 여성, 그 오래된 침묵). 남성적 기억에 매몰되었던 제주의 역사에서 타자로 취급되던 '여성'이라는 주제로 조망한 그날 포럼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청중이 자리를 가득 매웠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두서 없이 글을 나열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학생, 고 이민호 군, 여성. 제주 사회에서 오랫동안 약자였고 타자였고 억눌려 왔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제주는 조선 시대 귀양지로 유명했고, 적객(謫客 : 귀양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서당을 열어서 섬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역사가 성리학적 전통과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기도 했지만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구조를 고착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습과 제주 여성의 생활력이 충돌해 제주는 현재 10년째 이혼율과 이혼증가율이 전국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글은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짚은 것입니다. 2018년에는 주변의 낮고 약한 목소리를 가진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7학년도 2학기에는 시외 지역 1학년 학생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한 학기 동안 그림책을 읽으며 글쓰기를 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오면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했지만, 학기 수업이 끝나고 나니 남는 것은 학생들의 글이었습니다.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 유행한 지는 꽤 되었습니다. 이 말을 증명하는 현상들은 꽤 많은 편입니다. 지금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사법고시 합격자들의 비율이나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생, 교사 임용시험에서 여성 수험생의 합격 비중 등 공직사회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임용이나 국가 고위직 여성의 비율이나 남녀 봉급 차이는 아직도 남성 상위입니다. 그리고 명절 날 부엌 풍경, 같은 날 안방 풍경을 보면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중학생이 본 아버지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양심을 노래한 거대한 시편'이자 '역사적・ 사회적, 인간적 벽화'로 평가받는 소설 <레 미제라블>은 1815년 워털루 전투 전날 밤부터 1830년 7월 혁명, 1832년의 파리 노동자 소요 사태에 이르기까지 19세기 초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이 지상에 무지와 가난이 존재하는 한, 이 책과 같은 성격의 책들이 무용지물일 수는 없을 것이다"(<레 미제라블>의 서문)라는 위고의 예언은 안타깝지만 지금도 유효합니다.
소설 속에는 수많은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버려진 어린이들, 성노동에 나서는 여성, 사기꾼, 실업자 등이 나오고, 이런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는 종교 지도자, 혁명가 등이 나옵니다. "도형장들이 도형수들을 만들어냅니다"라는 경고와 "진정한 죄인은 그 어둠 속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영혼 속에 어둠을 만들어놓은 사람이오"라는 경고는 지금도 가슴을 찢어지게 만듭니다. 쟝 발쟝이 자신의 일을 하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듯이 제주의 어른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중학생의 글을 다듬는 '첨삭 선생'으로서는 다가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중학생다운' 글을 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조언은 하려고 합니다. 중학생이 쓴 글을 나누면서 이야기의 꽃이 피어나고, 제주의 중학생들이 자기다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