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봄비가 내리는구나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요즈음 아버지가 기타를 배우는데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학창시절 보컬을 해봤다는 자만심에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지만 기타 1, 2번 줄의 손가락 끝을 파고드는 고통은 말로 글로 표현이 안된다. 그래도 한달 정도 지나니 손끝에 굳은 살도 박이고 그작자작 견딜만하구나.
아버지가 언젠가 네가 하는 일에 격려보다는 포기하기를 권한 적이 있었다. 아비로서 힘에 벅차보여 안타깝기도 하지만 공들인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없다는 결론이었고 또한 빨리 포기를 해야만 그에 상응하는 다른 길을 쉽게 모색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양손에 잔뜩 움켜쥐고 있는데
어찌 다른 물건을 잡을 수가 있겠느냐?
양손에 움켜쥔 것을 내려놓는 일은 포기가 아니라 용기다.
10여년 전 디지털사진이 완전히 정착이 되어 자고 일어나면 동네 사진관이 없어지던 시절 "그래도 혹시 뭔 수가 있으려나?" 사진관 하는 친구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2년 이상을 더 붙들고 있던 아버지는 결국 엄청난 손해를 보고 말았단다. 때로는 과감히 놓아버릴 줄도 아는 것, 이것은 비겁한 게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그때 배웠다. 아버지가 되도록이면 잔소리를 안 하려고 애를 쓰는데도 잘 안 되는구나.
딸아, 봄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리는 2월 마지막 날 아버지는 내복을 벗었고 문득 '봄비'라는 시가 떠오른다. 시를 많이 외워놓으니까 참 좋은 게, 봄비하면 그에 걸맞는 시가 떠오르고 눈이 내리면 눈을 노래한 시가 떠오른다. 사람이 이런 멋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엄마랑 사가정역 3번 출구 찻집 앞에서 아버지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부부가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붕어빵 한 봉지 들고 백열등 환한 찻집으로 들어가 붕어빵을 우아하게 먹으며 따듯한 차 한 잔 하고 싶구나. 붕어빵을 굽는 어린 부부에게도 달콤한 캬라멜라떼 두 잔을 건네고 싶은 봄비 내리는 밤이다.
이수복 시인의 '봄비'라는 시 하나 소개하마. 시의 마지막 연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라는 구절이 참 아름답지 않으냐? 아버지는 이 구절 때문에 봄비라는 시를 좋아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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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피어오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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