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아빠와 결혼하겠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한참을 묵묵……하다가
다른 건 몰라도 너랑은 만나고 싶어
에둘러 답했더니
자긴 안 된다며 난감해 한다 이유인즉
이십여 년 전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서
있는 힘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란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자
우승 부상이 엄마인 이유로
필사적 질주 끝에 월계관은 썼지만
그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숨이 차고
무릎도 써금써금하다며
이런 몸으로 재출전은 무리라 너스레다 (나를 울린 마라토너/26쪽)
제주 조천에서 '시인의 집'을 꾸리는 분이 있습니다. 시를 만나고 시로 쉬면서 시를 누릴 수 있는 보금자리를 꾸리는 이분도 시인입니다. 제주에서 바닷바람과 함께 빛나는 <꿈결에 시를 베다>(손세실리아, 실천문학사, 2014)를 찬찬히 읽어 봅니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이녁 딸아이가 스무 해쯤 앞서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힘을 다 썼노라 밝힐 적에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이 시를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시인네 딸아이가 마라톤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면 마흔 살쯤 되려나 어림했는데, 가만히 읽고 보니 마라톤 대회란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려고 작은 씨앗으로서 달린 일'을 빗대는 말이더군요.
시로 살아가는 어머니 곁에서 딸아이도 시를 쓰듯, 삶을 노래하는 말을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어쩌면 그럴 테지요. 어버이가 어떤 삶을 짓느냐에 따라 아이가 짓는 삶이 달라질 테니까요.
조천 사람 앉은자리에 검질도 안 난다기에
내심 각오하고 있었는데 웬걸
폐가 내치지 않고 깃든 일 높이 사
푸성귀 등속 문고리에 걸어놓곤
행여 들킬세라 어기적어기적 내빼는
속 깊고 귀 먼 유지 할망 (텃세/36∼37쪽)
"우리 모두 시를 써요"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제는 흙이 된 어느 어르신이 남긴 책에 붙은 이름인데, 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어야 시를 쓸 노릇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즐겁게 시를 쓸 수 있고 시를 쓸 노릇이며 시를 써서 생각을 키우고 하루를 빛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을 받아서 조금 더 헤아려 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누구나 시를 쓸 만하지 싶어요.
학교를 오래 다녔든 학교 문턱을 못 밟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을 써냈듯 책을 쓴 적 없든 대단하지 않아요. 이른바 등단을 안 했더라도 누구나 시를 쓸 만합니다. 잔치마당에서 저마다 시를 한 줄씩 써서 돌아가면서 읊을 수 있어요. 새해를 맞이하면서 온식구가 저마다 시를 하나씩 써서 돌아가면서 읽을 수 있어요.
봄에는 봄맞이노래처럼 시를 써서 나눌 만합니다. 여름에는 여름맞이노래를, 가을에는 가을맞이노래를 시로 쓸 수 있어요. 겨울을 떠나 보낼 적에는 겨울배웅노래로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몸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암록색 해조류인 몸말예요
남쪽 어느 섬에서는 그것으로 국을 끓이는데요
모자반이라는 멀쩡한 명칭을 놔두고 왜 몸이라 하는지
사람 먹는 음식에 하필이면 몸을 갖다 붙였는지
먹어보면 절로 알아진다는데요 (몸국/68쪽)
노래하는 마음으로 삶을 돌아볼 줄 안다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된다고 여깁니다. 꿈꾸는 마음으로 살림을 가꿀 줄 안다면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되어 어깨동무를 한다고 여깁니다.
모자반을 모자반이라 해도 좋고, '몸'이라 해도 좋겠지요. 누구는 '몸'보다는 '맘'이라는 소리로 모자반을 가리킬 수 있어요. 몸이랑 맘 사이인 '뫔'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몸도 맘(마음)도 함께 헤아린다는 뜻으로 '뫔'을 쓰면서 몸국을 모자반국을 뫔국을 따뜻하며 넉넉히 나눌 수 있습니다.
잊었는지 모르겠다만
나도 너 그렇게 키웠다 (벼락지/75쪽)
어버이가 시인으로 살기에 아이가 시인으로 산다면, 이제 늘그막 길을 걷는 시인네 어머님도 시인으로 살겠지요. 시인네 어머님은 어느 날 문득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잊었는지 모르겠다만 / 나도 너 그렇게 키웠다"면서, 저잣거리나 길거리에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림을 꾸리고 키우셨다지요.
굵고 짧은 한 마디인데, 이 말마디도 삶노래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싯말 한 줄입니다. 삶을 노래하여 하루를 되새기는 포근한 싯말 한 가락입니다.
단골 서점이 문을 닫았다
시는 모든 예술의 기초라며
베스트셀러 자리에 시집 진열을 고수하던
서점주의 무릎뼈가
대형유통업의 일격에 우두둑 꺾인 게다 (시집 코너에서/94쪽)
누구나 시를 쓰는 나라를 그려 보고 싶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아이들도 아침에 시를 읽고, 대학입시를 이끄는 교사도 교과서보다 시집을 먼저 펼 수 있는 나라를 그려 보고 싶습니다. 대학입시 문제에 시짓기가 있어서, 객관식도 주관식도 논술도 아닌, 그저 수수하게 제 삶을 적는 시 한 줄을 노래하도록 달라지는 나라를 꿈꾸어 보고 싶습니다.
이웃나라 대통령이 찾아올 적에 이 나라 대통령이 한글로 적은 시를 건네면서 이를 영어나 이웃나라 말로 옮겨서 읊어 줄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그려 봅니다. 하늘을 노래하고 땅을 꿈꾸며 서로 사랑하는 살림자리를 기릴 줄 아는 즐거운 시 한마당을 골골샅샅에서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꿈결에 시를 베고, 꿈결에 사람을 생각하는, 고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는, 기쁜 보금자리를 이루겠지요. 작은 새들이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서 아침을 노래합니다.
덧붙이는 글 | <꿈결에 시를 베다>(손세실리아 / 실천문학사 / 201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