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의장 : 개헌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다. (중략) 국회는 정부 개헌안이 나오기 전에 여야 합의로 개헌 단일안을 내놓길 바란다.정세균 국회의장의 사뭇 비장했던 모두발언은 토론회 시작 50여 분 만에 이렇게 바뀌어야 했다.
정세균 의장 : 약속대로 (개헌 국민투표를) 지방선거 때 하자는 기대를 버리고 있진 않지만 그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진 않는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개헌 토론회에서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에 속한 여야 위원들이 대거 참가했지만 각 당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싱겁게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시점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평소 '20대 국회 내 개헌'을 강조해온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의 개헌 합의 시점을 앞당겨달라고 요구했지만, 교착상태에 빠진 국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개헌을 둘러싼 현재의 국회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정해구 위원장)는 오는 13일 개헌 자문안을 문재인 대통령에 보고할 예정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번 주를 국회 내 개헌안 마련의 '골든타임'으로 삼고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헌정특위를 비롯한 여야의 개헌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민주 "국민 대다수 대통령제 원해" vs. 한국당 "4년 중임제 안돼"
정세균 의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권력구조 개편만 담는 개헌이 돼서도 안 되지만 권력구조 문제가 빠진 개헌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지만, 각 정당들은 권력구조 개헌에 대한 견해 차를 좁히지 못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무게를 뒀다. 국회 헌정특위에 속한 최인호 민주당 의원(부산 사하구갑)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라며 "임기 5년 단임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4년 중임제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그러면서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을 분산하고 인사권·예산권·감사권·법률안제출권 등 4대 권한을 국회로 대거 이관해 대통령이 늘 국회와 소통하고 협치를 이룰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에선 당장 반박이 나왔다. 역시 헌정특위 소속인 김성태 한국당 의원(비례)은 "국민들은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를 내려놓는 반지원정대가 되라고 하는데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하자는 주장은 절대반지를 하나 더 만들어 쌍반지를 끼자는 것"이라며 "4년 중임제는 대통령 8년제와 다름없다"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대안으로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제를 제시했다. 그는 "국가수반은 대통령이, 행정수반은 총리가 맡고 총리 선출권은 국회가 갖게 하자는 의견이 우리 당의 대체적인 분위기"라며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대통령제보다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라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지금은 왜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려 하나"라며 내각제에 대한 우호적 의견도 드러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거대 양당 간 권력구조 개편 논쟁에 구체적으로 뛰어들기 보단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구제 개혁을 공히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의석수에서 절대적 약세를 보이는 정당들 입장에서 정당 득표율에 따른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선거구제 개편을 주장한 것이다.
헌정특위 위원인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비례)은 "다당제를 실현하고 민심을 정확히 반영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추진돼야 한다"라며 "반드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전북 전주시갑)도 "많은 사표가 발생하는 거대 양당제에서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정치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다"라며 "인구 비례성과 대표성을 고려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헌정특위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경기 고양시갑)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 그대로 국회'가 되는 것"이라며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구제 개혁을 제시했다.
"개헌 걱정은 정세균 혼자하고 진정성 있는 논의는 정의당뿐이고..."꽉 막힌 국회만큼이나 이날 토론회에서도 개헌과 관련한 각 당의 차이점만 부각되자 토론자로 나선 언론인들에게선 "개헌 걱정은 정세균 의장 혼자 하고 있고 진정성있는 논의는 정의당뿐인 것 같다", "여러 분들이 오신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역시나'였다", "말씀을 들어보니 개헌은 안 될 것 같다"는 등 자조 섞인 비평들이 쏟아졌다.
개헌안 통과를 위해 무엇보다 합의를 봐야 할 민주당과 한국당에게 개헌할 의지가 정말 있는 것이냐는 물음도 재차 나왔다. 현재 국회 의석수 116석으로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당을 여당이 설득해내지 못하는 한 개헌이 요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세균 의장도 "개헌은 현실이지 이상이 아니다"라며 "최선안은 최대한 합의를 빨리 이뤄 지선 때 하는 것이지만 만약 안 된다면 차선책이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고 했다. 6월 지선 때 개헌안 동시투표를 주장한 정 의장도 사실상 그 전에 여야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다소 맥 빠진 토론회가 끝나갈 무렵, 정세균 의장이 토론회에 앞서 취재진과 악수를 나누며 던진 말이 머리를 스쳤다.
"아침 일찍부터 오셨네. 근데 오늘 특별히 취재할 내용이 있으려나...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