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배달부 키키>는 만화영화로도 나왔습니다. 아마 무척 많은 분이 만화영화로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만화영화로 찍은 동화책 <마녀 배달부 키키>(가도노 에이코/권남희 옮김 소년한길, 2011)는 얼마나 많은 분이 읽었을까요?
어쩐지 세월이 갈수록 우리 주변에서 마법은 점점 약해지고 종류도 줄어드는 것만 같습니다. 마법이 사라지는 것은 캄캄한 밤과 정적이 없어진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8쪽)
'그렇지만 내가 나는 건 빗자루 때문이 아니야. 마녀니까 나는 거야.' 키키는 자신의 힘을 믿고 싶었습니다. (34쪽)
"마녀라면 뭐든 할 줄 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단정 지으면 제가 힘들어져요. 전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요. 코끼리도 저렇게 큰 몸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갇혀 있기만 하면 불쌍하잖아요." (50쪽)
<마녀 배달부 키키>는 가도노 에이코 님이 1984년에 처음 써서 2009년에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모두 여섯 권입니다. 여기에 2017년에 한국말로 옮긴 뒷이야기까지 더해 일곱 권이지요.
만화영화는 동화책 첫째 권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몄습니다. 둘째 권부터 흐르는 이야기는 만화영화에 없어요. 동화책으로 키키를 만나면 만화영화로는 미처 담지 못한 한결 너르며 깊은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키키는 때때로 마녀지팡이를 안 쓰고 걸어요. 하늘에서 보는 마을이나 숲하고, 두 다리로 땅을 딛고 걸으며 보는 마을이나 숲은 사뭇 다른 줄 어느 날 문득 느꼈거든요. 그리고 하늘을 날 적에는 언제나 혼자요 고양이하고만 말을 섞지만,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며 걸을 적에는 마을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고, 숲에서 온갖 푸나무하고 짐승하고 새를 만나서 새롭게 배운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마녀잖아요? 마녀는 여러 가지 사물들의 노래와 말을 들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돌멩이의 노래나 허수아비의 수다 같은. 난 얼마 전에야 겨우 나무의 노래를 듣게 됐어요. 이런 산속에 살면서 매일 바라보고 귀를 기울였더니 그렇게 됐죠." (81쪽)
"있지, 바람이란 건 말이야, 형태가 있어." "뭐, 형태? 어떤?" (102쪽)
"마녀의 검은색 속에는 이 세상의 모든 색이 다 들어 있단다. 옛날부터 사람들의 소원을 되도록 다 들어주었던 마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이야." (150쪽)
동화책에 나오는 키키는 앳된 티를 차츰 벗으면서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입니다. 여섯 권에 이르는 동화책을 살피면 키키는 어느새 어른 키키로 자라고, 저를 낳은 어머니처럼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아이를 낳아 돌보지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키키는 제 어머니가 저를 바라보며 느꼈을 마음을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마녀로 태어나서 마녀라는 살림을 물려주는 길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요.
마을에서 사는 사람 가운데 마법을 쓰는 사람은 오직 마녀입니다. 마녀는 해가 갈수록 숫자가 줄면서 사람들은 마법을 쓰는 마녀를 차츰 잊을 뿐 아니라, 마녀를 차츰 잊으면서 '꿈'도 함께 잊는다고 해요. 도시는 커지되 새롭게 꿈을 키우는 마음이 줄어든다고 할까요.
만화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으나 동화책에서 다루는 키키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줄거리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이 왜 꿈을 잊거나 잃는지를 건드리고, 사람들이 꿈을 잊거나 잃으면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는가를 짚습니다. 이러한 얼거리에서 키키가 새롭게 짓고 싶은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보여주고, 키키하고 짝을 맺는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수수한 사람'은 서로 어떻게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들이 새로 걸음을 내딛도록 이끄는가를 들려주지요.
"이름 그대로 끝없는 장소잖아. 나도 알 것 같아. 앉아 있지만 마음은 날고 있는걸. 날아다녀서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앉아 있어도 많은 걸 볼 수 있는 것 같아. 이것도 마법이라고 생각해." (216쪽)
"봄에 여러 가지 풀과 꽃을 따서 만든 거야. 열여덟 종류나 섞어서 말이야. 상쾌한 숲과 언덕을 걸을 수 있어서 차 만드는 게 참 즐거워. 잘 보면 말이야, 풀이 먼저 냄새를 강하게 풍기면서 '차로 마시면 좋단다' 하고 불러 줘." (261∼262쪽)
이제는 키키도 알 것 같았습니다. 키키의 마음에 힘이 있으면 빗자루에 그것이 전해진다는 걸. (293쪽)
우리가 모르는, 어쩌면 우리가 잊은, 머나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마녀였고 '마남'이었을 수 있습니다. 아득히 먼 옛날에는 누구나 하늘을 날며, 바람만 마셔도 배가 부르는 삶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먼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참말 바람처럼 가볍게 걷기에 사람들 발길이 닫는 데에 발자국이 남지 않아 풀도 꽃도 안 다쳤을 수 있어요. 까마득히 먼 옛날에는 돈을 버느라 다투지 않았을 수 있고, 저마다 놀라운 재주를 부려서 멋진 집을 아늑하게 가꾸며 사이좋은 어깨동무를 하는 나라였을 수 있습니다.
동화책 <마녀 배달부 키키> 둘째 권에서는 키키가 왜 하늘을 지팡이에 앉아서 날 수 있는가를 밝히고, 빗자루한테 그저 딱딱하게 시킴말만 해서는 안 되며, 빗자루하고도 마음으로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키키네 어머니가 딸아이한테 이녁 마법을 물려주면서 딸아이가 스스로 새 마법을 찾도록 가르친 마음도 넌지시 알려주고요.
"뭐야, 그냥 씨앗이잖아. 내 눈으로 하는 줄 알았네." "그래, 그냥 씨앗이야. 그렇지만 안에 신기한 게 잔뜩 들어 있다고." (331쪽)
"엄마하고 똑같은 재채기약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자 고리키 씨가 확고하게 대답했습니다. "키키의 약은 엄마하고 달라. 키키가 만든 거잖아." 키키는 '응?' 하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335쪽)
만화영화는 만화영화대로 아름답습니다. 동화책은 동화책대로 아름다워요. 동화책 키키 이야기에서 끝자락에 보면 키키네 어머니가 키키한테 '어머니가 지은 마법약'은 '딸 키키가 지은 마법약'하고 똑같을 수 없다고 똑똑히 알려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직 어린 키키는 어머니 말을 어렴풋하게만 헤아립니다. 아직 다 알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어머니가 아이한테 남긴 사랑 어린 씨앗 한 톨은 아이 마음에 고이 깃들리라 봅니다. 우리 어른들도 여느 삶자리에서 우리 아이들 마음에 이처럼 씨앗 한 톨을 심어서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겠지요. 아직 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깨달을 수 있기에, 즐겁게 사랑씨앗을 심어요. 꿈씨앗도 심고, 노래씨앗도 심습니다. 놀이씨앗도, 살림씨앗도, 웃음씨앗도 고루고루 심습니다.
마법사한테 나는 즐거움뿐 아니라 걷는 즐거움이 새롭다면, 수수한 이웃을 만나는 즐거움에 너른 숲을 만나는 즐거움도 새로울 테고, 파란 하늘과 바다를 아우르는 즐거움도 새로울 테며, 날마다 먹는 밥 한 그릇도 새로울 만하리라 생각해요.
가만히 보면, 마녀 배달부 키키는, 마녀로서 이웃들한테 꿈이랑 사랑을 실어 나르는 몫을 맡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문명하고 도시를 키우기만 하면서 자꾸 잊거나 잃고 마는 꿈이랑 사랑을 되새기자는 뜻을 늘 즐겁게 활짝 웃으면서 실어 나르네요.
덧붙이는 글 | <마녀 배달부 키키 2>(가도노 에이코 글 / 히로노 다카코 그림 / 권남희 옮김 / 소년한길 / 201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