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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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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꽃샘추위가 못마땅하다지만 아버지는 봄을 재촉하는 꽃샘추위가 참말 정겨워. 꽃샘추위가 가고 나면 섬진강 매화꽃이 피고 먹골에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때문이지. 그리고 때에 맞추어 시인(詩人)들은 겨우내 발효를 시켜가며 아꼈던 시어(詩語)들을 토해내지.

섬진강의 매화가 아무리 산절로 수절로 그렇게 절로 피어난다지만 시인들의 곰삭은 시어들이 보태지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섬진강의 매화고 먹골의 배꽃이고 흥이 없으니 찾아볼 아무런 이유가 없어. 매화나무 아래서 배꽃 아래서 그들이 울컥 토해낸 시 한수 정도는 읊어줘야 앞뒤 걸맞는 제대로 된 풍류가 아니냐 이거지.

누가 일부러 가꾸는 것도 아니요 해마다 절로 피고 지는 봄꽃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나마 이렇게 호들갑떠는 시인들이 있기에 세상이 아직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딸아, 이제 너의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있구나. 그동안 결혼준비로 마음고생 했던 엄마를 위로하고자 예식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섬진강으로 떠날 생각이다. 엄마는 축의금 중 일부를 신혼여행 가서 쓰게끔 보태주자 말을 한다만 너희는 앞으로도 여행다닐 기회가 많으니 엄마를 위해서 쓸 생각이다.

어찌되었든 아버지는 네 결혼식이 끝나면 섬진강 매화꽃이 피든지 말든지 엄마 손 잡고 떠날테야. 너를 시집보내며 모든 게 아버지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지만 네게 미안한 마음보다 사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구나. 김해화 시인의 시 하나 읽어보지 않으련?

침대 머리맡의 시집을 무심코 펼쳤더니 '아내의 봄비'라는 시가 있더구나. 김해화 시인이 꼭 엄마를 두고 쓴 시 같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엄마와 섬진강 여행을 생각했다. 엄마가 유난히 배꽃과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네 엄마를 보며 "딸을 둔 부모는 이렇구나." 마음이 안타까웠다. 요즘 세상에 딸 가진 게 무슨 죄인도 아니건만,

아무튼 네 결혼식 끝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떠날 생각이다. 2박 3일 동안 나머지 축의금 네 엄마를 위해서 모두 쓰고 올 생각이다. 네 엄마는 매화꽃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겠지만 아버지는 네 엄마에게 더 많은 위로와 기쁨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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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봄비

김해화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도사리 배추 천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 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2003년 사람의 깊이 '김해화의 새벽편지'에서

아버지가 섬진강을 가본 적이 없으니 회사에 피었던 옥매화 사진 구경이나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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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딸, #시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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