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 기자 말[두 번째 이야기] 블라디보스토크와 바이크 통관뱃고동 소리와 함께 배는 점점 육지와 멀어졌고, 이내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만이 가득하다. 어둑해진 저녁, 고요한 바다는 모든 고민들을 집어 삼키는 듯하다. 어느 순간 짙은 해무가 깔리기 시작하니, 이 배만이 유일한 세상인 것 같다. 쉴 곳을 잘못 찾았는지 망망대해에서 갑판 위를 날고 있는 잠자리가 애처롭다.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다, 함께 떠나온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여행이 꿈이었던 사람들. 청년·중년·노년까지,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꿈을 꾸는 우리는 어렵지 않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와 함께 러시아로 떠나는 여행자는 모두 11명. 그중 4명은 가족이다. 아빠, 엄마, 큰아들과 막내딸. 이 가족은 소형버스를 개조한 캠핑카로 세계여행을 떠난단다. 그 가족 말고는 나를 포함한 20대 청년 넷, 40대 중년 둘, 그리고 70세 노인이 함께한다. 노인을 보며 꿈을 향한 도전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꿈을 품고 있던 우리는 배 위에서 술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사라졌다.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며 겨우 일어났다.
아침은 이미 지난 시간. 점심을 먹고 나서 겨우 움직였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나와 난간에 기대 멍하니 물살을 가르는 배 밑 부분을 보고 있는데,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땅이 보인다.
잠시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러시아다. 블라디보스토크다. 두 팔을 위로 쭉 뻗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다. 얼른 방으로 돌아가 남은 짐을 빠르게 싼 후 블라디보스토크의 땅을 향해 걸어 나갔다.
러시아는 두 달간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입국심사를 어렵지 않게 마쳤다. 밖으로 나와, 마중 나온 통관업체 직원의 안내에 따라 호스텔로 향했다. 모든 게 처음인 나는 길가 돌맹이 하나하나에도 눈을 맞추고, 시원한 바다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모든 감각으로 순간을 느끼려 노력한다.
닿았다,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라 그런지 다행히 호스텔 직원이 영어를 할 줄 안다. 가격을 흥정하고 2층 침대가 가득 놓인 가장 저렴한 방을 잡고 짐을 풀었다. 숙소 가격은 760루블, 한화로 1만4000원 정도다.
짐 정리를 마치고 나니,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있다. 일행들과 함께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호스텔 앞에 있는 마트에 가서 컵라면과 소세지 등을 산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러시아에는 한국에서 수출하는 사각형 컵라면이 대유행이다. 마트 한쪽 코너를 점령하고 있을 만큼 종류도 다양한데, 라면 안에 마요네즈가 들어있는 것도 있다.
컵라면과 소세지가 저녁 메뉴다. 가장 싼 소세지를 골라왔는데, 양고기로 만든 소세지다. 양 특유의 냄새가 너무 심하다. 짜기는 또 얼마나 짠지. 그래도 '식량이다' 생각하고 맥주 한잔과 함께 꿀꺽꿀꺽 삼켰다. 저녁을 먹고 나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일행 두 명과 호스텔 근처로 산책하러 나갔다.
한국은 한여름이어서 저녁에도 습하고 더웠는데, 시원하다. 바다가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한국보다 훨씬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거리를 걸었다.
문득 잊고 살았던 감정들이 떠오른다. 예전에 많이 느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감정인데, 이게 무슨 감정인지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애써 찾으려 노력하지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여행의 끝자락에 서면 그게 어떤 감정인지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볍게 씻고 호스텔 앞으로 나갔다. 거리를 걷다가 노상에서 파는 30루블짜리 찐빵과 10루블짜리 믹스커피로 허기를 달래고 숙소에 들어왔다. 잠시 후 바이크 통관업체 직원인 러시아 청년 안톤이 찾아왔다.
통관 절차를 밟으러 세관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직 눈에 익지 않은 러시아 동전을 하나씩 보며 요금을 준비하고 있다가, 정차한 버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어가 가득한 한국 버스다.
러시아에서 만난 한국 버스... "우리집 가는 버스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국 버스가 굉장히 많다. 광고가 그대로 붙어있는 것도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특히 부산 버스가 많았는데, 일행 중 부산에서 온 친구는 "이거 우리 동네 가는 버스다"라면서 신기해했다. 버스 종점이 '해운대'다.
통관 절차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안톤이 부르는 곳으로 가서 직원이 "빠스뽀뜨(여권)" 하면 여권을 보여주고, 도장이 가득 찍힌 서류를 받는다. "쓰바씨바(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 뒤, 다른 곳으로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중간중간에 계산기로 보여 주는 돈을 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화폐라 한참을 확인해본다. 옆에서 도와주는 안톤이 고맙다.
그렇게 통관절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밥을 먹고 산책을 간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삼일 째, 드디어 바이크를 만나는 날이다. 선착장 창고에 나를 기다리던 바이크를 보는 순간, 반가움에 '와!' 하는 함성이 튀어나왔다. 주머니에 잘 간직했던 키를 꽂고 시동을 거니, 바이크도 반가운 듯 부르릉 화답한다.
비에 젖어 축축한 길, 가볍게 내리는 안개비 속에서 시작한 러시아에서 첫 라이딩. 비장한 분위기가 몸을 감싼다. 긴장감을 없애려 숨을 깊게 쉬고 눈을 더 크게 뜨고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10분 쯤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긴장을 잔뜩 했던 것 치고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도로가 어색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며 숙소 앞에 바이크를 세웠다. 짐을 뺀 후 바이크 잠금장치를 이중으로 걸고, 충격을 받으면 큰소리로 알람이 우는 장치까지 하고 나서 바이크커버를 꼼꼼히 씌웠다.
사실 준비가 부족했다, 특히 돈이...
여행을 준비하며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치안이다. 러시아에 다녀온 친구들의 말을 듣거나, 여행기를 찾아보면 치안이 굉장히 좋지 않단다. 큰 도시야 그나마 괜찮다지만, 작은 마을에서는 '훔쳐간다' 정도가 아니라 '빼앗아간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기에, 가장 걱정되는 게 안전이었다.
몇 년 전, 러시아를 여행하던 일본인이 살해당한 사건도 발생했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가 텐트를 치고 자고 있는데, 돈이나 물건을 뺏으러 온 현지인들과 몸싸움 끝에 칼에 맞았다. '설마 그런 일까지 일어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내심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혹여 내 바이크나 물건들이 사라지기라도 할까봐 튼튼한 자물쇠를 잔뜩 준비했다. 자물쇠를 걸고, 바이크가 보이지 않게 커버로 꼼꼼히 덮어두고는 숙소로 들어와 일행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렴한 물가 덕에 돈을 조금씩만 모아도 호화스러운 만찬이 된다. 200루블(한화 약 3600원)씩 모아서 길거리에서 파는 통닭과 양념 돼지고기, 맥주를 샀다. 하지만 남은 돈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통관을 끝내고 나니 남은 돈은 여행기간에 쓸 기름값조차 안 될 정도다.
사실 준비가 많이 부족하긴 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여행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고, 계획보다 준비가 훨씬 덜 된 상태에서 무작정 떠나왔다.
최소한으로 예상한 경비가 1000만 원이 넘는데, 나는 그 반에 반도 안 되는 돈을 들고 왔다. 밥을 사먹는 것도 아까워서 '라면죽'을 해먹기 위해 10kg짜리 쌀 한 포대와 대용량 라면스프를 두 개 가져오고, 숙소비도 최대한 아끼려 캠핑 장비도 챙겼다.
그럼에도 돈은 많이 모자란다. 이 돈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돈 걱정 하기는 싫기도 하고,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맥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출발하는 날인데, 비가 내린다. 사뒀던 소세지와 토마토소스를 꺼내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호스텔에 있는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어 노릇하게 굽고, 나이프로 토마토소스를 바른 후 소세지를 길게 썰어 그 위에 얹었다. 이번에 새로 산 소세지는 '후랑크 소세지'처럼 작고, 낱개로 줄줄이 포장돼 있는 거다.
양고기 소세지를 억지로 먹고 나서 잔뜩 고심하며 돼지가 그려져 있는 소세지를 샀다. 맛은 한국에서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먹는 분홍색 소세지와 비슷한데, 역시 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챙겨온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 타서 호스텔 문 앞에 앉아 거리를 바라본다. 비에 잔뜩 젖은 흙냄새와 풀냄새가 커피향 사이로 옅게 풍긴다. '앞으로 매일 이렇게 익숙한 풍경을 뿌리치고 달려야 하겠지?'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간절했던 이 여행도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숙소 앞 거리를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있노라니, 어느덧 다 식은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한입에 털어 넣은 후 마음을 다잡고 이제 짐을 싸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카메라나 노트북 등 고장 날 위험이 있는 것들은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바이크 사이드백에 넣고, 옷이나 텐트, 침낭 등 부피가 크고 고장 날 염려가 없는 것들은 배낭에 넣어 바이크 뒤에 단단히 동여맸다.
핸들 쪽에는 휴대전화 거치대와 간단한 짐을 넣을 자전거용 가방을 달았는데, 보조배터리와 이어폰 등을 넣기에 아주 적합하다. 쉽게 떨어지지 않게 케이블 타이로 단단히 묶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짐을 다 싸고 나니, 온몸이 비와 땀으로 흥건하다.
"가자, 꿈속으로"
일행들도 준비를 거의 마쳤다. 캠핑카로 여행을 온 가족을 제외하고 7명은 경로가 어느정도 같아서 초반에는 함께하기로 했다. 정이 많이 들기도 했고 위험하기로 유명한 지역이 바로 앞이어서 그곳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동행하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저 길을 따라 달리다가 해가 지면 텐트를 치고 자면 된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곳에 도착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한 결정이다.
호스텔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출발한다. 진짜 시작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절제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음껏 소리치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것이다.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자고, 쉬고 싶은 만큼 쉴 것이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온전히 이 여행을 느끼고, 그 안에서 나를 찾아낼 것이다. 바이크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낮게 중얼거렸다.
"가자, 꿈속으로."[자투리 여행 정보] 동양에서 유럽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이다. 소련 극동함대의 사령부가 있는 해군기지이자,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항로의 중점이다. 모스크바 까지 이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긴 철도인 '시베리아 철도'의 시발점이자 종점이기도 하다.
동양에서 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는 떠오르는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물가가 싸서, 킹크랩 등 신선한 해물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고, 한국에서 가는 시간도 3시간 이내다.
중앙광장(혁명전사광장)과 아르바트거리, 잠수함 박물관, 해양공원, 금각교가 보이는 독수리전망대 등 많은 명소가 있다.
뿐만 아니라,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나 독립운동의 흔적 등 우리의 역사도 찾을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한국을 부흥시킨다는 의미의 '신한촌'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게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