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하겠다고 약속한 그 순간부터 배가 고파왔다. 한 끼도 거를 수 없을거 같았다. 성주에서 평택으로 가는 길, 네비는 2시간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내 운전실력으로는 3시간이 걸렸다. 고속도로의 차량소통은 원활했지만, 하늘은 뿌연연기로 다 가렸고, 구름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은 산산했다.
쌍용자동차가 정리해고 할 때, 헬기가 최루액을 뿌리던 2009년도에 평택을 향했던 기억, 밀양과 청도 삼평리 송전탑반대했던 할매들의 72시간 송년회로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창근씨와 김정욱씨 두 사람이 굴뚝 위에서 손을 흔들었고, 밀양할매가 굴뚝을 쳐다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화성 매향리를 방문하고 성주로 가는 길에 이 곳을 찾았다. 노조사무실이 카페로 둔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들렀다. 창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고, 나는 두 손으로 양 눈을 모아서 어떻게 꾸며졌는지 보기위해 창문에 눈을 더 가까이 대었다.
작년 여름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을 함께 걸었던 쌍용차지부 노동자들, 김득중 지부장은 키도 훤칠하고 덩치도 컸던 사람이었다. 쌍용차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끝을 보겠다고 시작한 단식은 25일로, 25일째를 맞이했다. 김득중 지부장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고, 해탈한 표정으로 조합원들의 점심을 라면으로 끓여주고 싶어했다.
130여명의 해고자 식구들을 복직시켜야 하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 크다. 굶주림으로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김득중 지부장의 어깨는 점점 야위어 가고 있다. 지부장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많은 조합원들이 너무 긴 시간, 길거리로 나와있는 시간을 버텨내기 힘겹다.
노조사무실 선반위에 놓여있는 촛대 - 솟대가 눈에 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솟대에 초를 올려두었다. 촛대이자 솟대가 된 장식품이지만, 촛불집회 소품이다. 소성리에도 솟대만들기를 따라 해보면 좋겠다는 욕심에 사진을 여러 컷 찍어두었다.
윤충열 수석은 소성리를 찾지 못해 미안해했다. 나는 미안해 하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우리는 자주 찾아가지 못하지만,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쌍용차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쫓겨나 고난의 길을 걸었고, 우리는 고향땅에 위험한 물건이 들어와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다른 길로 걸어가는 듯 보이지만, 우리는 연대로서만 완전한 승리를 이룰 수 있다.
솟대 하나 하나에 이 땅의 노동자들이 투쟁해서 승리하는 염원을 새겼으면 좋겠다.
솟대 하나 하나에 이 땅의 평화는 노동자가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새겼으면 좋겠다.
솟대 하나 하나에 전쟁말고 평화를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함께 투쟁하자는 소망을 새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하나의 물건을 공유하면서 연결되어갔으면 좋겠다.
쌍용차구조조정으로 희생된 해고자들이 하루빨리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더 많은 곳에서 연결되어야 한다. 해고는 사회적 살인이다. 총고용 보장으로 함께 살자.
오늘은 쌍용차를 알아가는 날. 2018년3월 26일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