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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무상(無常)하다고 합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뜻일 겁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합니다. 예술이 길다고 변함이 없다는 건 아닐 겁니다. 세상 사람 누구도 나이를 먹으며 변해갑니다. 청장년이 되기까지는 몸과 마음이 성장하며 변하고, 중장년의 나이를 넘어서면 원숙해지며 늙어 갑니다.

꼿꼿했던 허리는 굽어지고, 팽팽했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갑니다. 새까맣던 머리카락도 듬성듬성해지며 희끗희끗 변해 갑니다. 어떤 물건에 대한 호불호도 변해 가고 입맛도 변해 갑니다. 점점 짜거나 달게 먹고, 시거나 쓴 것은 점점 피하게 되는 것 자체가 혀에 있는 맛봉오리가 노쇠해지며 변했다는 반증입니다.

늙어 가는 몸뚱이를 보며 마음은 청춘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곰곰이 되돌아보면 마음에도 주름이 생기며 늙어갑니다. 결기 곧았던 마음은 어느새 굽어져 있고, 천리까지 보일 것 같았던 눈도 어느새 침침해져 있으니 몸도 마음도 늙어가며 변해갑니다.

거장들의 작품에 새겨진 나이테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 / 지은이 이연식 / 펴낸곳 플루토 / 2018년 3월 6일 / 값 16,500원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 / 지은이 이연식 / 펴낸곳 플루토 / 2018년 3월 6일 / 값 16,500원 ⓒ 플루토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지은이 이연식, 펴낸곳 플루토)는 미술계의 세계적 거장 10명,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터너, 드가, 모네, 르누아르, 칸딘스키, 폴록, 로스코, 뒤샹과 같은 미술가들이 나이를 먹으며 빗어낸 그들의 작품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명하고 있습니다.

예술가, 미술을 하는 사람들도 생로병사라는 궤적은 어쩌지 못합니다. 생로병사의 궤적은 그들이 남기는 작품에 또 다른 형태의 나이테가 되어 때로는 도드라지는 변화로, 때로는 보일 듯 말 듯 한 흔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새겨져 남기 마련입니다. 젊어 거칠 것 없던 미켈란젤로도 당대 최고의 조각가라는 명성을 들었지만,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불완전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젊은 예술가는 참람하게도 영원과 보편과 명료함을 추구하지만, 노년의 예술가는 혼란과 불명료함을 긍정하고, 삶과 예술이 불안전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슬픔은 때로 구체적인 형상보다 뚜렷치 않은 형상을 통해 사무치게 드러난다. 말년의 피에타는 예술가가 치른 장엄한 투쟁의 흔적이다." -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 32쪽


대개의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너그러워 집니다. 빡빡하다 싶을 만큼 관념에 집착하던 사람도 대체로 여유로워집니다. 모난 돌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던 감각들도 동글동글한 강돌처럼 두루뭉술해지며 주변에 순응하며 적응합니다.

대개의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회상할지언정 다시 거두어 재현하거나 수정하려고 까지는 않을 겁니다. 미술을 하는 대개의 예술가들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드가의 노후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젊어서 그린 그림, 이미 남의 것이 된 작품까지도 다시 가져와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인상주의 그룹을 이끌었던 드가는 젊은 시절보다 노년에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했다. 또 나이가 들어서도 호기심이 줄지 않았던 그는 여러 재료와 수법으로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 드가는 자신이 앞서 그린 그림을 끝없이 고쳐 그렸다. 이미 남에게 팔거나 선물한 작품도 다시 가져와서 언제까지고 붙들고 그리면서 내주지 않았다. 그에게 노년은 자신의 젊은 날을 고치고 벌충하는 시기였다." -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 88쪽


뒤샹이 연 예술가 시대로 본 조영남 대작 사기사건

가수 조영남씨가 미술 대작 사건으로 세간에 오르내린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이에 따른 재판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조영남씨가 직접 그린 것으로 알고 작품을 산 구매자 측에서는 조영남씨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니 사기라고 하고, 조영남씨 측에서는 '미술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대작 또한 엄연한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직접 그린 것만이 작품이고, 당연히 조영남씨가 직접 그렸을 거라고 생각하고 산 구매자 입장에 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기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대량 생산된 공업 제품마저 예술가가 예술이라고 명명하기만 하면 뭐든지 예술이 되는 시대를 연 뒤샹의 시선으로 보면 전혀 상반되는 주장이 가능한 문제라고도 생각됩니다.

"뒤샹은 일찍이 1917년에 남성용 소변기에 '분수Fountain'라는 제목을 달아 전시에 출품했다. 서명을 넣긴 넣었는데 자기의 이름이 아닌 엉뚱한 이름을 짚이는 대로 써놓고는 이 무렵 자신이 운영진을 맡고 있던 독립미술가협회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이 장난에는 뒤에 거창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뒤샹은 미술품을 예술가 자신이 손수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량생산된 공업 제품을 전시장에 처음 내놓았다. 이를 '레디메이드Ready-made'라고 했다. 뒤샹은 미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예술가 자신이 예술이라고 명명하기만 하면 뭐든지 예술이 되는 시대를 열었다. -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 256쪽


드가는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을 고치고 싶어했고, 르누아르는 전혀 다른 화풍을 왔다 갔다 하며 평생에 걸친 답을 찾아냅니다. 농담 같은 일생을 보내다 수수께끼 같은 마침표를 찍은 뒤샹이 들어간 나이는 예술의 더께를 더해가는 세월의 붓질로 읽혀질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 / 지은이 이연식 / 펴낸곳 플루토 / 2018년 3월 6일 / 값 16,500원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당신에게 보여주고픈 그림들

이연식 지음, 플루토(2018)


#예술가들의 나이듦에 대하여#이연식#플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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