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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민박에서 박보검이 <쓰기의 말들>을 읽고 있다.
 효리네민박에서 박보검이 <쓰기의 말들>을 읽고 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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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우울한 마음을 달래본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행복해져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 잊을 수 있다.

<쓰기의 말들> 표지
 <쓰기의 말들> 표지
ⓒ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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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박보검이 나온다. <쓰기의 말들>이란 초록색 책을 한 권 들고. 박보검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초록색 책을 읽다가 비스듬한 의자에 앉은 채로 잠에 든다. 박보검이 읽다 잠든 책 <쓰기의 말들>, 어떤 책이기에 박보검을 저렇게 지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지 읽어봤다.

책의 부제는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이다. 작가는 글과 글쓰기에 관련해 자신이 수집한 문장들을 펼쳐놓으며 우리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써야 하는지를 자신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왼쪽은 글쓰기와 관련된 좋은 문장을 실고 오른쪽에는 이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얼핏 보면 명언집 같기도 해서 처음에 거부감이 들 뻔했다. 왼쪽의 명문장보다 이에 대한 작가의 사소하고 진솔한 이야기인 오른쪽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다보면 당장 노트북 앞으로 달려가 한 줄이라도 끄적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인간을 부품화한 사회 현실에서 납작하게 눌린 개인은 글쓰기를 통한 존재의 펼침을 욕망한다. 그러나 쓰는 일은 간단치 않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안 쓰고 안 쓰고 안 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되어 수업에 왔다는 어느 학인의 자기 소개가 귓전을 울린다. 이 책이 그들의 존재 변신을 도울 수 있을까. 글을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글쓰는 사람은 멋있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든 없든, 글을 쓰든 안 쓰든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한다. 왜 글쓰기는 멋있을까. 왜 모두가 글을 쓰진 않지만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글쓰기가 도대체 뭐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동경하고 갈망하게 하는가.

글쓰는 행위 자체가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의 글만큼 그 사람을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글을 쓰고 다른 이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까지 다 드러내는 일이다.

상황과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발가벗고 서는 일이다. 이 일을 해낸 자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아니, 부끄러움의 대가로 자유를 얻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좋은 글에는 금기와 위반이 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드러내고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밝혀낸다. 작가의 용기에 탄복하고 작가의 용기에 전염된다. 어쩌면 용기란 몰락할 수 있는 용기다.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도돌이표처럼 용기 구간을 왕복하는 일이 글쓰기 같다. 오죽하면 이성복 시인이 말했을까.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요즘 들어 이상하게 글이 쓰고 싶어 어떤 것으로 어떻게 써볼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모르겠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 건지, 무엇을 쓰고 싶은 건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건지,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 건지.

이유를 모르는 채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멋진 글을 보면 부러워하기도 하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을 보면 왜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쓴다.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쓰기 전엔 잘 쓸 수도 없지만 자기가 얼마나 못 쓰는 줄도 모른다는 것. 써야 알고 알아야 나아지고 나아지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안심한다. 안 쓰면 불안하고 쓰면 안심하는 사람, 그렇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좋은 글을 보고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사람들, 글을 쓰고 싶은데 실천이 쉽지 않은 사람들이 읽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펜을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제이기도 한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이 이미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긴 몰라도 박보검도 이 책을 읽은 그날 숙소로 돌아가서 일기를 쓰지 않았을까? 글쓰기를 동경하고 갈망하고 멋있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은유 지음, 유유(2016)


태그:#쓰기의 말들,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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