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화로, 바닥이 까맣게 그을린 찻주전자, 검불이 후다닥거리며 타는 아궁이, 그리고 얼룩빼기 황소가 끄는 달구지, 할아버지의 지게에 얹혀있는 소 꼴 더미의 꽃 한 송이. 뒤뜰에 목걸이 만들어 목에 걸고 놀던 감꽃.
하루에 두 번 오가는 버스가 마을에 서면 "뉘 집에 서울로 돈 벌러 간 딸이 왔나?" 마을 할머니들 모두가 열 두이랑 김매다 말고 허리를 펴는 풍경, 자정 넘어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어둠을 밝혀주는 소나무 관솔의 횃불.
사랑하는 딸아,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런 것들은 아버지로 하여금 철학적인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단다. 그러나 소달구지는 택배로 변했고 숯불 위의 찻주전자는 전기만 꽂으면 3분도 안 돼서 물이 끓는다. 신작로에 싸한 휘발유 냄새를 풍기며 달리다가 고장이 나서 한나절을 서 있어도 불평 한마디 없던 고향의 버스는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KTX로 변했다.
속도가 붙은 대신에 여유가 사라졌구나. 낭만이 있고 멋을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다. 남이 울면 따라 울고 남이 웃으면 따라 웃으며 남이 장에 가니 나도 간다던 한가함이 사라졌다. 구불구불 사대강은 곧게 펴졌고 미시령 옛길은 인적이 끊겨 들짐승의 길이 되었다.
멋이, 낭만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다르게 표현하면 인정이 사라졌다고 아버지는 해석한다만, 저녁을 잘 먹고 회사의 산책로를 걸으며 평소의 버릇대로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 참나!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다행히 사람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창졸간에 '아주 묘한 웃기는 사람'이 될 뻔했다. 아버지 역시 이러는 나 자신이 우습지만 그래도 끝까지 불러보았다.
사실 고향이라고 가봐야 옛날 멋진 어른들 다 돌아가시고 무덤 속 백골이 된 할아버지 할머니가 반겨줄 뿐이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고향을 자주 찾는 까닭은 아버지 어렸을 때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놀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살구나무 자두나무 우물가 녹슨 두레박 등등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오늘따라 너의 증조할아버지가 새벽에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꼴을 지게 한가득 베어온 곳에서 나는 풀냄새가 그립구나. 아버지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등지고 떠나온 고향, 어느덧 타관생활 50년.
평생 서울 생활에 적응 못 하는 아버지가 딱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갈 적에는 결국 꽃상여 타고 돌아갈 일밖에 없구나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도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치러야할 하나의 이벤트라고 생각하면 꼭 섧다고만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오늘은 쓸데없는 얘기를 좀 했는데 고향에 가서 살기를, 도대체 네 엄마를 설득할 방법이 없다. 네 엄마한테 고향에 가서 열두 이랑 텃밭에 파 심고 배추 심고 닭이나 몇 마리 키우며 살자했더니 딱, 한마디로 거절하더라.
"뱀 나와서 싫어."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봄꽃이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오늘 봄비에 떨어지는구나. 시 한 편 감상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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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앓는 病
이수익
모진 마음으로
참고 너를 기다릴 때는
괜찮았느니라.
눈물이 뜨겁듯이 그렇게
내 마음도 뜨거워서,
엄동설한 찬바람에도 나는
추위를 모르고 지냈느니라.
오로지
우리들의 해후만을 기다리면서......
늦게서야 병이 오는구나,
그토록 기다리던 너는
눈부신 꽃으로 현신하여
지금 나의 사방에 가득했는데
아아, 이 즐거운 시절
나는 누워서 지난 겨울의 아픔을
병으로 앓고 있노라.
시집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