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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들과 함께 2011년부터 해온 북클럽 문학의숲에서, 나는 주로 그리스 고전을 발췌하고 발표를 맡아왔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선뜻 읽지 않는 그리스 고전들을 읽는 행운을 누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헤로도토스 <역사>,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헤시아도스 <노동과 나날> 그리고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유명한 비극 작가들의 그리스 비극을 읽었다. 그리고 올해는 가족 여행으로 그리스 여행을 갈 계획이다.

막상 그리스 여행을 가기로 정하고 나니, 어디서 무엇을 볼지 막막했다. 그리스 고전은 읽었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마음에 와 닿는 곳이 별로 없었다. 그저 크레타섬이나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싶다는 평범한 생각만 들었다. 이래서는 내가 고대하던 여행이라고 할 수 없어서, 그리스 여행 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제시해줄 수 있는 책을 골랐다. 그 중 첫 번째 책이 바로 김승중 교수의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이다.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 표지
▲ 책 표지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 표지
ⓒ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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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교수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딸이다. 나는 도올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질풍노도와 같은 동서양 문화와 불교, 유교, 기독교를 넘나드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매혹시킨다. 최근에 산 <도올의 로마서 강해>는 내가 신약인 로마서에 대하여 관심이 있어서라기 보다, 그 책에서 예수의 시대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리스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대목에 반해서다(결국 로마서에 대한 해설 부분은 다 읽지 못했다).

그 책에서 도올은 페리클레스라는 정치가부터 소크라테스라는 철학가, 아리스토파네스라는 희극작가 등 고대 그리스를 만들었던 위인들을 다루고 있다. 도올은 아리스토파네스를 설명하면서 '김승중 교수가 세계 최고의 희극작가라고 추천한 작가'라며 그의 희극 작품을 소개하였다. 나는 비극 작가만을 읽다가, '고금을 통틀어 세계 최고'라는 말에 끌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도 읽게 되었다.

김승중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현재는 토론토대학의 희랍미술고고학 교수로 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이다. 물리학과 고대 그리스미술 고고학은 공통점이 없지만, 김승중 교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냈다.

도올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나는 세 자녀와 아내와 함께 세계의 어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하나의 작품을 놓고 한없이 담론을 펼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하였다. 역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내가 이번에 아들과 아내와 같이 그리스에 가면, 아고라 위에서 또는 델파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또는 원형극장이 잘 보전되어 있는 에피다우로스에 가서 문학과 미술, 그리고 삶을 얘기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 덮고 나서 다시 보지 않는 책이 있고, 읽자마자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다. 우선 저자의 해박함과 자료의 충실성에서 겨룰 책이 없다. 나는 고대 그리스 역사에 관한 개론서 책을 몇 가지 읽었지만, 이 책처럼 많은 그리스 도자기를 통하여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을 보여준 책은 없었다.

내가 아테나이에 있는 박물관에 가더라도 무엇을 봐야 하는지 제시해 주며, 파르테논 신전에 대하여 부조물을 자세히 설명한다. 예전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도리아 양식이니 이오니아 양식이니, 기둥이 배흘림 양식이라는 등의 이야기만 들었다. 이 책에서는 한 개 챕터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다루고 있고, 건물뿐만 아니라 우리가 놓치기 쉬운 건물 4개 면에 양각되어 있는 프리지(Frieze)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다. 왜 양각되어 있는 조각이 트로인 전쟁, 아마존과의 전투, 기간테스를 물리친 올리포스 신들인지, 김승중 교수는 그의 해박함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고대 그리스 역사와 문화, 미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를 통하여 현재의 역사를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테네 민주정의 허와 실을 얘기하면서, 촛불혁명으로 역사를 바른 길로 바꾼 한국의 데모스의 위대함을 얘기하고 있다.

비록 고대에는 데모스(군중)가 우둔하다고 하여 많은 철학자에 의하여 민주정이 올바른 정치체제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한국에서는 민중의 비폭력적인 힘이 어떻게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례를 만드는지 한국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시민으로 간주되지 못한 여성들이 그 한계 속에서 어떤 지위였고,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설명하면서 한국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아직 진정한 인간해방의 주체로서 자기철학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책에는 김승중 교수가 임명되기까지 운도 따랐다는 에피소드도 전하고 있다.  김승중 교수가 토론토 대학에서 교수임용을 위한 면접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당시 살고 있던 뉴욕에서 갈 수 없어 면접을 제때 볼 수 없어 김승중 교수만 다른 시기로 미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차별화된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나는 내일부터 다시 이 책을 두 번째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읽으면서 내가 그리스 여행 가면 보게 될 많은 것들이 정리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그리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

김승중 지음, 도올 김용옥 서설, 통나무(2017)


태그:#김승중, #문학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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