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짧습니다. 그래서 봄밤의 산책은 즐겁습니다. 겨울의 추위도 여름의 더위도 없고 적당한 온도와 벚꽃이 피는 4월의 밤은 걷기 좋습니다. 잠깐 여유를 갖고 호흡을 크게 내쉬고 걸어보세요. 하루가 풍요로워집니다.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2018.03월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라는 제목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밤의 시간은 참 짧구나. 그래서 이 계절 열심히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서울은 매연과 자동차, 거대한 빌딩숲, 아파트촌... 이런 풍경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서울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600년이 넘는 세월을 한 나라의 수도로 지냈기에 시간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궁궐과 초고층 빌딩이 2킬로미터 반경 안에 존재합니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과 8차선 도로와 광장이 어깨를 나란히 공존하는 곳이죠. 서울 도심을 걸어보면 풍경 하나 하나가 재미있습니다. 걷고 걸으면 서울은 삭막하지도 각박하지도 않은 하나의 마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벚꽃이 피는 봄밤, 서울의 도심을 걸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임금님이 살던 곳 경복궁을 출발해 세종대왕이 태어난 서촌 오래된 한옥골목과 청와대 앞길을 지나 삼청동을 지나는 코스입니다.
경복궁역을 출발해서 세종아파트 근처까지 걸어봅니다. 건물을 나지막하고 거리는 한적합니다. 주말에는 북적거리지만 평일 저녁의 서촌은 고즈녁합니다.
북쪽으로 천천히 걸으면 청와대 앞길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경찰이 어디가냐고 막아섰고 일일이 답을 하는 것이 귀찮아 이 길을 지나기가 꺼려졌지만 요즘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 훨씬 산책길이 편해졌습니다.
제가 오늘 선택한 코스의 장점은 한적하고 깨끗하고 곳곳에 경찰이 지키는 안전한 길입니다. 번화가의 불빛이 번잡하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은 뜸한, 산책하기 더없이 좋은 길입니다. 평일 저녁에 한해서 말입니다.
서울의 아름다운 이유는 오래된 궁궐이 있기 때문입니다. 궁궐은 멀리서 봐라봐도, 그 담벼락을 지나가도 그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함께 선 나무들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궁궐의 담벼락과 어울려 기품을 뿜어냅니다. 2018년을 봄, 이 길을 지날 때면 조선시대의 시간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멀리 문재인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도 한번 바라봅니다. 이곳에도 벚꽃이 한창입니다.
인적이 드문 평일 저녁, 삼청동의 밤 벚꽃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광화문에서 10분만 올라오면 이렇게 한적한 거리를 걸을 수 있습니다. 벚꽃아래 조용한 밤 산책, 일에 지친 퇴근 길,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오래된 것의 편안함. 청와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가게입니다. 저 가게의 매력은 평상입니다. 가게는 오래되었고,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다 잘 아는 주인이 있을 것입니다. 권력의 주인은 여러차례 바뀌었고, 언제나 이 주변은 시끄럽고 위태했지만 누군가는 묵묵히 일상을 살았습니다. 평상에 앉아 한가한 봄날, 누군가는 막걸리를 마셨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것입니다.
산책의 끝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입니다. 4월은 딸기의 계절, 딸기케이크는 진리입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다시 산책을 시작합니다. 시작을 축하하며 딸기케이크를 먹습니다. 삼청동의 골목은 맛있는 식당과 카페가 많습니다. 모든 곳을 다 가볼 수는 없지만 산책하는 만큼 가보고 싶은 곳은 더 많아집니다.
"조사하지 않는다, 옆길로 샌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만화 <우연한 산보>는 도쿄의 거리를 걷는 이야기인데요 작가 쿠스미 마사유키는 산책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같은 지하철을 타고 매일 같은 커피집에서 커피를 사고, 늘 먹던 점심을 먹는 것이 평범한 일상입니다.
마음내키는 대로 방향을 바꾸는 것도 어렵죠. 그러나 산책에서 옆길로 새는 것은 언제나 오케이. 봄밤, 꽃그늘 아래 천천히 걸어봅시다. 영화의 제목처럼 밤은 길지 않아요. 그러니, 걸어요.
<오늘의 밤 산책은?>출발: 경복궁역 / 도착: 안국역 /거리 :3.9키로 /걸린 시간:총 1시간 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