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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극작가이자 평론가, 소설가로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에 적혀있다고 알려진 글입니다.

장례문화가 많이 바뀌면서 묘비까지 세우는 일은 거의 보기 힘들어진 시대입니다. 하지만 1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웬만큼 행세를 하던 사람이라면 묘비를 세우는 게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꽃상여로 모셔다 묘를 쓴 후에 세우게 되는 묘비는커녕 묘조차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요즘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한두 번 쯤은 후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지 생각해 볼 거라 생각됩니다.

표현과 방법은 다를지라도 살아생전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알기 쉽게 정리한 글을 우리는 이력서(履歷書)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사후, 죽은 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묘비 기록으로 남기는 글을 묘비명(墓碑銘), 묘갈명(墓碣銘)이라고 합니다.  

옛사람 58명이 스스로 쓴 자신 <내면기행>

<내면기행> / 지은이 심경호 / 펴낸곳 ㈜민음사 / 2018년 3월 16일 / 값 25,000원
 <내면기행> / 지은이 심경호 / 펴낸곳 ㈜민음사 / 2018년 3월 16일 / 값 25,000원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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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기행>(지은이 심경호, 펴낸곳 ㈜민음사)은 옛사람 58명이 당신의 일생을 스스로 정리하여 묘비명으로 남긴 58편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스스로 묘비명을 남긴 옛사람 58명 중에는 퇴계 이황이나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소재 노수신처럼 시대적으로 내로라하는 인물도 있지만, 인물검색란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을 만큼 숨겨진 사람도 있습니다.

묘비명은 다른 사람이 써주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짓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송시열을 영수로 하던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된 계기 중 하나가 묘비명(墓碣銘)에서 비롯된 갈등에서 야기되었음에서 알 수 있듯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비명을 잘 쓰는 것은 후손으로서의 역량이기도 하고 도리이기도 했습니다.

남의 손을 빌려 쓰는 묘비명,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서 쓰게 되는 묘비명은 공과 선은 과장하거나 찬양하고 감추고 싶은 과오는 염치없게 감춰졌을 겁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쓰는 묘비명이라고 모두가 있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더 과장하거나 미화하는 경우도 있고, 차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쓰기에는 낯이 간지러우니 스스로의 일생을 조작에 가까울 만큼 소설화 시킨 기록(묘비명)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일찍이 고인이 몸을 닦고 학문을 한 이야기를 듣고 개연히 공경하고 사모하는 뜻을 가졌으나, 성질이 지중하지 못한 데다가, 소시에 가정의 교육을 지키지 못하고 사라서는 사우(사우)가 없어서 날로 혼명하게 되어 스스로 떨치지 못했다. 슬픈 일이다.(후략) 내가 평생 남이 지나치게 찬양하여 적어 주는 것이 싫어해서 스스로 이렇게 기록한다. - <내면기행> 107쪽

1597년에 임천 군수에 임명되고 훗날 가의대부가 된 송남수(宋枏壽, 1537∼1626)는 자신의 출세가 1578년에 음직으로 사포서 별제에 임명되었음은 물론, 가선 대부를 제수 받은 것 또한 여든 살이라는 고령이라는 이유였음을 가감 없이 밝히고 있습니다. 

송남수는 묘비명 끝에 묘비명을 자찬(自撰)한 까닭을, '내가 평생 남이 지나치게 찬양하여 적어 주는 것이 싫어해서 스스로 이렇게 기록한다'고 밝히고 있어 스스로 지은 묘비명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곧이곧대로 기록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586년 4월에 흰 무지개가 해를 꿰자 상소하여 면직을 빌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집안에 석가산을 만들고 주위에 송(松), 백(栢), 회(檜), 삼(杉), 진송(眞松), 적목(赤木), 비자(榧子) 두충(杜沖), 해송(海松), 황양(黃楊) 열 가지 나무를 두었다. 그리고 그 방을 십청정(十靑亭)이라 했다. 이 나무를 보면서 세한(歲寒)의 지절을 지키겠다는 뜻을 부친 것이다. - <내면기행> 92쪽-


이 글은 선조 대에 영의정을 역임한 소재 노수신(1515-1590)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 중 일부입니다. 소재의 묘비명을 만약 다른 사람이 지었다면 을사사화로 19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한 소재가 영의정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역점을 둬 인생역전을 이룬 소설 속 주인공처럼 정말 드라마틱하게 썼을 것입니다.  

소재가 아니었다면 소재 자신이 자신의 집안에 열 가지 나무를 심고 그 방을 '십청정'이라고 부른 이유까지는 묘비명으로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재는 스스로 쓴 묘비명을 통해 열 가지 나무를 심고 방 이름을 십청정이라고 지은 까닭을 묘비명으로 천명함으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삶의 가치를 오롯이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됩니다.  

18살에 죽은 이의 남긴 자신

봉성(鳳城) 사람 금각은 자가 언공(彦恭)이다. 일곱 살에 공부를 시작해서 열여덟에 죽었다.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 - <내면기행> 168쪽


아직은 청춘이라 할 18살, 18년 인생만 살다간 금각(琴恪, 1569∼1586)이라는 사람이 남긴 묘비명입니다. 금각은 만사로 '아버님 어머님 저 때문에 울지 마세요'라는 글도 죽기 전에 지어 놓았다고 합니다.

비록 한두 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지만 금각이 한두 줄을 남기기까지 고뇌한 삶의 무게는 80평생을 더 산 어느 노인의 진지함이나 무게에 못 미치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짧은 만큼 진지하게, 시간이 모자란 만큼 엄중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새기고 또 새겨서 남긴 글이라 생각됩니다. 

요즘을 사는 사람들 중에도 형식과 방법은 다를지라도 자신의 묘비명쯤 한 번 써보고 싶은 사람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신세 타령을 하듯 구구절절하게 쓰고 싶은 사람도 있고,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한 줄 정도로 정리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미리 써보는 묘비명, 지금껏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진지하게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의 거울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스스로 바로 짓게 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옛사람 58인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을 읽을 수 있는 <내면기행>을 통해 그 옛날 사람들이 추구하였던 삶의 가치와 면모를 새겨 봄으로 삶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사고해 보는 계기가 주어질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내면기행> / 지은이 심경호 / 펴낸곳 ㈜민음사 / 2018년 3월 16일 / 값 25,000원



내면기행 - 옛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

심경호 지음, 민음사(2018)


태그:#내면기행, #심경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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