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지엠 노조는 지난 2월 13일 군산공장 폐쇄 결정 발표 후 인천 부평구의 본사 앞 본관에서 고용 생존권 보장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한국지엠 부평본사 본관 앞에 걸려있는 노조의 군산공장 폐쇄 철회 현수막. 한국지엠 노조는 지난 2월 13일 군산공장 폐쇄 결정 발표 후 인천 부평구의 본사 앞 본관에서 고용 생존권 보장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최은주

관련사진보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폐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GM 군산공장 폐쇄가 결정됐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폐쇄되면서 50개가 넘는 협력업체가 폐업했고 5천명에 가까운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보고되었는데,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또 하나의 핵심 제조업이었던 GM 군산공장의 폐쇄가 예고되었다. 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면 협력업체까지 포함해서 13,000여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한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대략 70,000여 명의 노동자 가족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개항 이후 약 120년. 돌이켜볼 때 군산의 역사는 부침의 역사이기도 하다. 개항 이후 오랫동안 일제에 의한 쌀 수탈 기지로서 역할을 하던 군산은 1930년대 이후에는 일본 산업 자본이 진출하면서 일본 상품의 수입항으로 변모했다. 쌀 수탈 기지였든 수입항이었든 일제 강점기 당시 군산은 하나의 지역으로 성장했다. 당시 설립된 공업시설을 기반으로 1950년대까지는 비교적 발전 수준이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진행된 경제개발과정에서 소외되면서 군산은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침체를 경험한다.

이 침체는 대략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데 1980년대 후반 이후 추진된 서해안 개발사업은 군산에게 오랜 침체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해안 개발사업과 함께 군산이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이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96년에 세워진 대우자동차 공장은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군산의 제조업이 특화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2010년에 준공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이후 군산은 전라북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중화학공업지대였다.

개항 이후 지속적 성장과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소외되면서 겪은 침체, 그리고 서해안 개발사업과 함께 산업의 집적도와 고용 차출 규모가 큰 제조업을 유치하면서 침체를 딛고 성장의 발판을 다져온 군산은 최근 다시 침체의 입구에 들어섰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다. 군산이 오랜 침체를 딛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중화학공업의 생산기지화를 성장 전략으로 설정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성장 전략의 결과물이 군산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사실 특정 산업에 의존도가 클 경우 산업경쟁력이 약화되면 해당 지역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군산의 현재는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 시점이 지금일 뿐.

군산을 살릴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위기에 빠진 군산을 일으킬 방안은 무엇일까? 물론 지금 당장은 예정된 GM 군산공장의 폐쇄가 야기할 실직자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군산을 '고용위기지역' 및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했지만 지원의 내용이 소위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그칠 내용이라서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좀 더 혁신적이고 적극적인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이고 좀 더 근본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방안이 '지역 재구성의 전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역 재구성의 전략'은 지역 내부에서 지역경제의 발전 동력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를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금 맞이한 군산의 위기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시작된 군산의 재편 속에서 이미 싹을 틔우고 있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군산의 재편이 중화학공업의 생산기지화 전략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군산이 지역 외부의 대자본에 의한 공간적 지배범위의 확대 전략에 편입되는 과정이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군산은 생산기능을 담당하는 분공장(branch) 지대라는 자본주의적 공간분업에서의 하위 영역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왔다.

군산은 그렇게 해서 지역 외부의 대자본에 의해 수직계열화가 되었고, 언제라도 지역 외부 대자본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경제가 휘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설사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다시 물량을 확보해서 배를 만들기 시작한다고 해도, GM 군산공장의 폐쇄가 되돌려진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 전환에 그칠 뿐 지역 외부 대자본에 의한 공간적 지배가 계속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해법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현재 어떻게 해서든지 GM 군산공장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미래를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군산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역 외부 대자본에 의한 공간적 지배를 끊어내는 전략을 지역의 주체들이 수립하는 것이다. 물론 전략의 수립도 쉽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지금이 기회이다. 지금의 기회를 살려 지역을 재구성해야 한다. 좀 흔한 표현을 쓰자면 하나의 모델을 만드는 실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외부 대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경제

군산에 닥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 모델은 '중앙정부 – 지자체 – 지역 시민사회의 공동 대응'이라는 틀로 접근해야 한다. 고용위기의 1차적 피해자는 노동자이지만 그것의 파급은 전체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현 상황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역 시민사회가 함께 돌파해야 한다. 아직까지 지자체와 지역 시민사회는 정부만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태도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 지역 시민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으고 역할을 나눠야 한다.

'정부'는 지원자로서 역할이 주어질 수 있겠다. 정부의 지원은 군산을 '고용위기지역' 및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하고 그에 따른 지원이 이뤄지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당장에는 공장 폐쇄로 인해 발생하는 실업자들에 대해 지금까지 생활수준의 2/3 정도는 최소 2~3년이 가능해질 수 있는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으로 개인과 가족의 삶이 굴절되는 것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자 이들의 소득 단절로 지역의 경제가 악화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함께 군산에서 수립되는 지역 재구성 전략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을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지자체'는 지역재구성의 기획자이자 조직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 및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지역 재구성의 실행전략을 짜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자원 조직, 투자 유치, 재정 확보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 시민사회'는 지역 재구성의 실행전략 수립을 위한 공동 기획자이자 적극적 참여자여야 한다. 지금까지 성장 전략의 수혜자였다면 이제는 전략 실행의 현장에서 핵심 주체여야 한다.

실험 모델은 당연하게도 지속가능한 지역경제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생적 발전론이 채택되어야 한다. 최소한 1970년대 중반 이후 군산 발전의 경로는 지역 외부에서 자원을 끌어오는 외생적 접근이었다. 아마 지자체 역시 이런 접근을 할 가능성이 크며, 현재 지역 시민사회도 이러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생적 접근의 결과가 지역 외부 대자본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지역경제가 만들어졌음을 직시해야 한다. 내생적 발전론 하에서 사회안전망 강화, 산업다변화, 지역 내부에서 선순환 시스템이 가능한 기업 운영, 기업에 대해 지역 통제가 가능한 시스템 마련, 지식 인프라 구축 등이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사회안전망 강화'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실업자 및 그 가족들의 삶을 보호하고 소비를 유지시켜 지역경제의 악화를 예방하는 효과를 목표를 갖는 것으로 정부 뿐 아니라 지자체의 적극적인 예산 편성 및 시스템 마련, 지역 시민사회의 우애에 기반을 한 참여(가령, 외환위기 시절의 희망의 카드와 같은)가 동반될 필요가 있다.

'산업 다변화'는 특정 제조업에 의존하는 경제가 갖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성공적인 고용위기 극복 사례로 꼽히는 스웨덴의 말뫼는 20여 년에 걸친 재편 과정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전체의 8% 미만에 그치는 한편, 유통/소비(15%)․사업서비스(14%)․의료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14%)․교육(9%) 등의 서비스업종이 일자리 창출의 주력 부문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반드시 서비스 업종이 주력이 될 필요는 없다. 초점은 어디까지나 특정 제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내부에서 선순환 시스템이 가능한 기업 운영'과 '기업에 대해 지역 통제가 가능한 시스템 마련'은 함께 작동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 군산공장의 폐쇄는 자본의 이윤 창출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아서이다. 이는 기업의 운영을 자본가에게 일임한 결과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지역 통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지역 시민사회가 기업의 공동 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를 유치하면서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급한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제 그런 전망을 가져야 하며, 그런 전망을 가질 수 있을 때 기업의 성과가 지역 내부에서 선순환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기업의 성과가 지역 내부에서 선순환이 된다는 것은 기업 이익이 지역에 투자되고 그것이 다시 기업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것이 재생산됨을 말한다. 결국 기업의 지역 내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 인프라는 기업에 지식과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기업의 지역 내부화가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이다.

4월 10일자 지역 뉴스에는 GM 군산공장의 대안사업에 대해서 전라북도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이 1순위였다. 심지어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 단지조성도 9.0%나 되었다.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백면서생의 어설픈 상상이라도 풀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 이 글에서 소개한 군산의 역사적 변천과 지역 특성은 김영정 외. 2006. 『근대 항구도시 군산의 형성과 변화 – 공간, 경제, 문화』. 한울아카데미.에서 인용했다.


태그:#군산, #지역 재구성의 전략, #GM 군산공장, #내생적 발전론, #고용위기지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