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에게 있어 늘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날, 바로 소풍이다.
어린이집을 다녀온 아들 녀석이 다른 때와 다르게 무척 신나하며 가방 안에서 알림장을 꺼내들고 곧 다가올 소풍을 알려온다. 아, 어째 잠잠한가 했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날짜를 확인한다. 엄마가 된 이후 나타난 새로운 변화. 내게는 왜 이런 소풍, 도시락 싸는 날이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다른 부모들은 어떨까?
SNS를 통해 올라오는 다른 엄마들의 도시락 사진들에 자연스레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도시락 싸는 일부터가 부모들에게 부담백배로 또 다른 짐을 떠안겨주는 시대임을 느끼게 된다.
우리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 속 화려한 풍경들.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 위한 다양한 모양과 표정들이 시선을 끈다. 유부초밥은 눈이며 입이며 각기 다른 표정들로 웃음을 주고 있었고, 문어 모양 소시지하며, 병장 모양 소시지까지, 도시락이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 따로 없다.
요리에 전혀 솜씨가 없는 엄마들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고, 직장으로 향하는 워킹맘들에게 도시락은 또 하나의 새로운 숙제일 수밖에 없다. 이러니, 때로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담당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할머니에게 부탁을 드리기도, 그리고 때로는 맛있기로 소문난 김밥집에 주문을 해두기도 한다.
또 다른 엄마들은 인터넷을 통해 도시락 예쁘게 잘 싸는 방법을 검색하고 배우며 아이들의 만족감을 채운다. 도대체 도시락이 뭐길래.
아이들 체험학습 때문에 김밥을 말고 하루를 출발한다는 어느 아빠의 하루 첫 인사가 엄마 아빠의 새로운 일상을 말해주고 있다. 또다른 동료 아빠는 김밥집에서 산 김밥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보냈더니 집으로 돌아와선 너무 무성의하다고 타박을 하더라며 이번 봄소풍 도시락을 걱정한다. 아예 예쁘게 모양 내서 파는 도시락 업체가 없는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마치 자신이 싼 듯 생색내는 사례들도 생겨나고 있다.
뭣 몰랐던 어렸을 때야 별고민 없이 그저 김밥 하나 대충 말고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더니 아이들의 도시락에 대한 만족감도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슬슬 친구들과 비교해가며 그 누구보다 예쁜 도시락을 싸주길 바라는 아이들.
"엄마, 이번에도 제가 좋아하는 과일도 넣어주고요, 돈가스도 넣어주고요. 지난번처럼 예쁘게, 알았죠?" 아들의 도시락 부탁이 엄마에겐 또다시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이쯤 되니, 도시락 스트레스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도대체가 도시락을 위한 소풍인지, 무엇을 위한 소풍인가.
한때 도시락 편지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90년대 중반 발간된 책, 조양희의 <도시락 편지>의 영향 때문인지, 당시엔 엄마들이 저자를 따라 아이들에게 도시락과 함께 쪽지나 편지를 함께 적어 보내는 게 도시락 트렌드가 되기도 했었다. 도시락이 자녀들과의 따뜻한 소통이 되어주던 시절.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이니, 편지 대신 그림을 그려 전달해야 하나? 그래서 어쩜 엄마들이 또 다른 사랑의 표현으로 도시락 안에 치즈와 김을 이용해 표정들을 붙여가며 다양한 모양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렇듯 도시락 만들기에 각별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유난이다, 극성이라 할지 몰라도, 그 누군가에게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봄소풍 소식에 요즘 마음도 몸도 바빠졌다는 우리네 엄마 아빠들. 지금 이 순간에도 "최고예요~"라는 아이들의 답장을 기다리며, 또 다른 도시락 편지를 준비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