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직장 생활을 마감하고 돌아오니 내 명의로 된 47평 아파트 하나와 아이들 둘 그리고 아내만 덜렁 남았다. 현금은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른다. 아내에게 얼마의 현금을 달라고 하면 적당히 주겠지만 그것은 아내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이 환경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직 후 궁지 탈출을 위하여 내 마음이 점점 더 바빠져 동분서주 하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대연 시장통 입구에 도장을 각인하는 임대 가계를 알게 되었는데, 노후된 건물이 허름함에도 보증금 오천만원에 월세 백만원을 요구하였다.
게다가 권리금 이천만원과 인테리어 공사를 포함하면 당장 현금 일억원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이들 둘이 아직 대학교에 다니는 데다가 어머니께서 병원 신세를 계속 져야 하는 현재의 형편에 쉽게 한 방에 저지를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창업, 투자의 경제적 부담을 피하고 부득이 나의 머리와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것은 재취업이었다. 나의 의지대로 정성을 다해 이력서 오십여 장을 준비하였다. 이순(耳順)에 이르러 여기저기서 좌고우면 하게 된 것이다.
야간 아르바이트와 일시 계약직으로 상당 기간을 출퇴근하면서 부산디지털대학교 원격교육을 통하여 평생교육학을 전공해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2년 수강하는 동안 1년은 장학금 제도의 수혜를 받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이렇듯 몸과 마음을 다시 바쁘게 움직였지만, 사회와 세상에서는 나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 없는 것. 준비한 이력서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기에 마음은 청춘의 그 시절을 향하고 있었다. 도전하는 동안은 청춘이며, 청춘의 무기는 도전 정신이다. 그것이 있는 동안 나의 삶이 희망이며, 그것이 없다면 살아있어도 삶이 아니라는 겨울신록 정신을 나름대로 정했다.
왜, 겨울신록인가? 몸 담은 세상과 그 몸은 겨울의 문턱에 있으나 그 몸에 깃든 마음은 신록의 여름이요, 태양의 계절을 누리고 있으니 겨울신록이 아닌가. 인생의 3막을 헐벗은 가시나무로 살아갈 수는 없다. 고목에 핀 꽃일수록 품격이 있다. 새까만 몸체에 새하얀 꽃일수록 순수하고 아름답다. 모든 꽃은 봄 여름을 경유하는 동안 화사하게 피어난다. 겨울에 피는 꽃은 특별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이유가 있다.
그 몸체 엄동설한의 환경을 극복하고 그 자리에 만개하는 꽃은 감동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30세까지 인생 1막이요, 60세까지 인생 2막이요, 지금부터 백세시대는 인생 3막이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김영사)에서 변화 경영 전문가인 고(故) 구본형 선생은 "매 순간 온전히 나를 쏟아붓는 삶을 사는 것, 우리 인생을 시처럼 사는 것, 자신의 삶을 최상의 예술로 만드는 것! 그것이 자기 경영의 목적이다"라고 주장한다.
겨울신록의 인생 철학도 자신의 삶을 몇 번이나 변화하며 살 것인지를 결정하고자 하는데 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재분배하여 인생 3막을 지향하는 것이다. 좌충우돌, 고비고비 선택의 순간을 경험하며 새로움을 수용하고 변화의 의지를 불태우는 리츄얼이 인생 희열이요, 사랑이요, 행복이다.
어차피 겨울신록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천명, 이순의 그릇을 스스로 키우고 넓혀 가지 않으면 그 수명이 다하는 것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3막의 삶에는 나름의 평생교육법 또는 학습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시대에 같은 방향으로 함께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다.
내 삶이, 내 인생이 실패든 성공이든 오롯이 나의 탓, 나만의 공이 아니다. 주변이 함께 하였기에 경험하고 습득하고 추억이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나의 신념을 세울 수 있다. 인생 3막을 관통하는 맥락은 경영을 하든 연구를 하든 예술을 하여도 변화에 대한 맥락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삶의 매순간 중년에 장년에 노년에도 그에 맞는 나름의 변화와 발전, 성숙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겨울신록의 생존법이요, 제2 인생을 위함이다.
덧붙이는 글 | 정퇴 후의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 탐색으로 남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