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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은 신학이 아니다, 인문학이다

God and Religion 신과 종교
God and Religion신과 종교 ⓒ Pixabay

한마디로 유신론자들을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예를 들어 성직자를 양성하는 신학 대학 등에서 배우는 학문이 곧 신학이다. 특정 종교의 교리와 경전 등을 탐구하는 것이다.

반면에 종교학자들은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심이 없다. 종교학의 관심은 세상의 종교들 그 자체에 있다. 예를 들어 카톨릭은 역사 속에서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 불교는 힌두교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왜 대부분의 종교는 내세를 얘기하는지, 특정 종교가 사회에 출현한 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공동체의 양식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등을 연구하는 것이 종교학이다. 쉽게 말해 종교의 본질에 대해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책 <세계 종교의 역사>는 신학이 아니라. 종교학이다. 따라서 범주를 크게 보면 인문학 서적인 셈이다. 이 책의 저자도 책 안 곳곳에서 자신의 집필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본인은 특정 종교들이 믿고 있는 신이 '진짜'인지를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종교들에서 보편적으로 찾을 수 있는 종교의 기능과 그것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이다.

아직도 종교학이 신학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종교학이 지닌 인문학으로서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는 예수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런 오래된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그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때, 또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부활했을 때, 천사가 몇 명이나 나타났는지에 대한 논쟁에도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 예수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사실들에만 충실할 것이다."(192p)

저자의 입담과 상상력에 반할지어라

책 표지 《세계 종교의 역사》
책 표지《세계 종교의 역사》 ⓒ 소소의책



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를 한권에 요약한 책들은 이전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그것들은 요샛말로 하나같이 '노잼'이었다. 그런 책들은 일단 종교가 언제 어떻게 발흥하고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지나치게 연도를 강조한다.

그리고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행위와 사건들을 표면적으로 설명하는 데 집착한다. 게다가 그 모든 것들을 강박적일 만큼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정작 그것이 과연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띨 수 있는지 저자 나름의 해석은 전혀 없다. 무척 강직한 조선시대 사관들이 엮어낸 역사 실록, 혹은 대학 교재나 학교 교과서를 읽는 느낌이다.

이 책은 자신 있게 추천하건대, 그 이전에 나온 '종교 역사 서적'들을 통틀어서 가장 재미있다. 저자는 연도·행위·사건을 기술하면서도, 그러한 사항들이 '왜' 당시의 '어떤 맥락' 안에서 이뤄진 것인지 시간과 지역을 연계하며 지그재그로 스토리텔링 해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종교 역사서는 대개 사도 바울(St. Paul)이 본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자였다가 훗날 기독교인으로 탈바꿈한 개종자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신실함을 찬미하는 말 몇 마디를 부연 서술하고 끝낸다. 무척 심심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 간단한 스토리에 자신의 입담과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시절에는 어떤 마음가짐이었기에 그리했던 것인지 그의 혈통, 신분, 성장 과정, 직업 등을 통해 유추한다. 또 기독교인을 체포하러 가는 길에 그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감화되는 장면을 마치 영화로 그려내듯이 실감나게 묘사한다.

사도 바울이 결국 기독교로 개종한 뒤, 기독교인들에게 했을법한 대사들도 복음서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구현해낸다. 그리고 저자 나름의 해석과 해설을 붙여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한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계시를 받은 자로서 과거의 모세나, 후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 등과 어떻게 다른지 지그재그로 비교하며 입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사도 바울 얘기만이 아니다. 세계 종교의 역사 속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각종 인물이나 사건들마다 저자는 특유의 스토리텔링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분야는 다소 다르지만 왜 진수의 <정사 삼국지>보다 나관중이 평역(評譯, annotation) 한 <삼국지연의>가 더 재밌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지 알법하다.(물론 책 <세계 종교의 역사>는 <삼국지연의>와 다르게 허구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객관성 측면에서는 <삼국지연의>보다 낫다.)

'이상적인 삶'을 지향하므로 종교는 곧 정치다

"그리고 애초부터 종교는 정치적 혼합물의 일부였다. 어쩌면 신과 인간의 관계, 그 자체가 일종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속적인 정치의 일부였다."(299p)

이 책을 읽어야 할 마지막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그것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종교가 곧 정치라는 관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정교분리가 원칙이 되어버린 현대의 민주사회에서 이게 웬 생경한 소리인가 싶다.

하지만 저자는 '이상적인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종교는 정치와 이념상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카톨릭이나 개신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등등 모든 종교들이 각자 교리는 다를지언정, 그 교리들이 그를 믿는 신도들에게 "이렇게 살면 진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만큼은 공통적이다.

정치도 원칙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주기 위한 활동이다.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정부의 정책 기조는 그를 신뢰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특정 종교의 교리와 진배없다.

무엇이 바람직한 삶인지 알기 위해 정치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가끔은 종교학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이 책을 읽다보면 어떠한 정치 철학들은 몇몇 종교의 교리들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놀라울 만큼 자주 발견한다.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 너무 철학이나 윤리학 위주로 편식했던 사람들, 혹은 종교학이 신학인 줄 알고 애초부터 종교학에 관심을 꺼둔 사람들은 이 책 <세계 종교의 역사>를 읽고 자신의 지식과 교양의 외연을 조금 색다르게 넓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세계 종교의 역사 - 인간이 묻고 신이 답하다

리처드 할러웨이 지음, 이용주 옮김, 소소의책(2018)


#세계종교의역사#서평#역사학#세계사#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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