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의 역사와 현실을 알리려고 했지만서울시에서 기획한 의미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용산공원, 시민에게 길을 묻다>라는 특별 전시다.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II에서 5월 6일까지 열린다. 그런데 시민들의 관심이 부족해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용산공원, 시민에게 길을 묻다>전은 서울시 도시계획국 용산공원전략팀이 기획해, 2017년 8월부터 11월까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청, 용산구청에서 열린 바 있다. 그리고 2017년 12월 15일부터 2018년 5월 6일까지 전쟁기념관에서 열린다.
용산 미군기지의 역사와 현실을 알리고, 반환 후 이용방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또 용산공원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자는 의도도 있다. 금단의 땅으로 알려진 용산 미군기지를 다시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 미국 정부소유(US. Government Properties)로 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우리의 관할권 밖이다. 용산지역이 우리의 손을 떠나게 된 것은 언제일까?
1904년 일본과 맺은 <한일 의정서>가 그 출발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와 남산 아래 주둔하게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을 일으키기 한해 전 <한일 의정서>를 통해 군사상 필요한 조선의 땅을 수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용산 일대 땅 300만평을 군용지로 강제 수용했다. 1906년부터 1913년까지 용산 일본군 기지공사가 끝나 118만평이 군용지로 수용되었다. 이것은 1914년의 "한국 용산 군용수용지 명세도"를 통해 확인된다.
1927년 발행된 "용산시가도"에는 군사기지 내 사령부, 병영, 병기창, 사격장 등 주요시설이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민간기관으로 용산경찰서, 소학교, 중학교 등이 보인다. 군사기지 밖으로는 이태원리, 황학동, 보광리, 서빙고 같은 마을도 보인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용산지역을 흐르는 만초천(蔓草川: 넝쿨내)이 범람해 삼각지 일대가 물바다를 이룬 사진도 볼 수 있다. 만초천은 본류가 인왕산에서 흘러내리지만, 지류는 남산에서 흘러 용산기지를 관통해 흐른다.
일본군으로부터 반환된 용산기지가 미군의 손으로
용산의 미군기지는 북기지(North Post)와 남기지(South Post)로 나누어진다. 이 둘을 나누는 길은 삼각지역에서 녹사평역으로 이어지는 이태원길이다. 북기지 중 되돌려 받은 곳은 전쟁기념관(옛 육군본부)이다. 남기지 중 되돌려 받은 곳은 국방부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한 용산 가족공원이다. 이들 지역을 제외한 미군기지를 방문하려면 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용산 일본군 기지가 미군기지로 변한 것은 1945년이다. 해방과 함께 주둔군 자격으로 온 미군 제24군단은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곳을 접수해 캠프 서빙고(Camp Seobinggo)로 만들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주한미군사고문단(KMAG)만 남기고 주한미군이 철수했다. 그리고 용산기지는 잠시 우리 정부에 넘어와, 국방부와 육군의 지휘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6․25사변의 발발로 미군이 다시 들어와 용산기지 일부를 사용했고, 정전협정 체결 후인 1953년 8월 80만평의 땅이 주한미군의 군용지로 제공되었다.
1957년에는 도쿄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가 용산 미군기지로 이전해 주한미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1978년에는 이것이 한미연합사령부로 바뀌어 용산기지의 주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10년 후인 1988년 한미당국이 용산 미군기지 시설 이전에 합의함으로서 100년 이상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이 열릴 가능성이 생겨났다. 그 일환으로 1989년 육군본부가 논산 계룡대로 이전하면서 그곳에 전쟁기념관이 들어선다. 1992년 11월에는 주한미군 골프장이 반환되어 용산가족공원이 되었다.
2004년 7월에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용산 기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합의되었으나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평택 미군기지 조성의 지연과 관련이 있다. 2006년 서울시는 용산 미군기지를 국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완료되는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공원조성 공사를 시작하기로 한다.
용산공원 조성은 10년 계획으로 2027년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번 <용산공원, 시민에게 길을 묻다> 특별전도 용산공원 조성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더욱이 홍보와 소통을 통해 용산 역사공원 여론을 조성하자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관의 적극적인 홍보 부족과 시민들의 관심 부족으로 여론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군기지의 이전이 늦어지면서 공원조성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남을 캠프 코이너에 미국대사관이
그리고 마지막까지 반환되지 않는 땅이 있다. 그곳이 캠프 코이너(Camp Coiner)다. 미군기지의 가장 북쪽에 있는 캠프 코이너는 한미연합사령부 지원부대가 위치하고 있다. 캠프 코이너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전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용산 미군기지 중 일부는 여전히 미국 땅으로 남아있게 된다. 캠프 코이너에는 조선시대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지내던 남단(南壇)이 있다. 현재는 유구 일부가 남아 있고, 석물을 제거 또는 파손하지 말라는 경고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권 「경도(京都)」【단묘】편에 보면 남단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풍운 뇌우 산천 성황단(風雲雷雨山川城隍壇): 남쪽 교외 청파역동(南郊靑坡驛洞) 송림 사이에 있다. 지금은 남단(南壇)이라 부른다. 사방 2길 3치요, 높이가 2자 7치인데 사면으로 섬돌이 있으며, 두 토담 사이는 사방 25보이다. 풍운ㆍ뇌우의 신좌가 가운데 있고 산천은 왼쪽에 있으며 성황은 오른쪽에 있다. 모두 북쪽에 있어 남향하였다. 매해 중춘과 중추 상순 중에 날을 잡아 제사지낸다."위에서 보는 것처럼 남단은 비바람이 순조롭기를 산천성황신에게 비는 장소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기록이 기우제와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임금이나 관리가 남단을 찾아 기우제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남단에 대한 기록이 74회나 확인된다. <승정원일기>에는 315회 <일성록>에는 85회나 나온다. 이를 통해 남단에서의 기우제가 왕실에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용산에서 가로막힌 조선통신사 옛길 잇기
가로막힌 용산의 옛길을 찾아 이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옛길 위의 조선통신사> 책을 낸 향토사학자 양효성 씨다. 그는 지난 1월 27일 <용산공원, 시민에게 길을 묻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용산: 조선통신사 옛길 잇기"라는 제목으로 시민과 함께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양효성씨는 남산 아래로 펼쳐진 용산 옛길을 되찾고 싶은 염원을 다음과 같이 표출했다.
"여러분들이 후암동 주민이 되어 생각해 보십시오. 한강에 가고 싶은데 용산고등학교 앞에서 막혀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막혀있었습니다. 지금도 막혀 있습니다. 만약 이 길이 열리고 보존된다면, 100년 묵은 역사의 체증이 뚫릴 것입니다. 이 길이야말로 끊어진 역사의 동맥입니다. 이 자리는 용산구민에게나 서울시민에게나 우선 마당이랄까? 산소랄까? 정원 같은 곳입니다. 이 자리에 조선통신사 자료관이 세워진다면 전쟁기념관과 아울러 전쟁의 수습 - 평화의 유지를 상징하는 명소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양효성씨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제안을 한다. 이들 제안은 용산구와 용산공원의 역사성을 되살리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첫째 전생서-남단-이태원으로 이어지는 지역의 지표조사와 문화유적 조사를 실시한다. 둘째 미군기지 안의 옛길 지형을 유지하고 이곳에 탐방로로 만든다. 셋째 후암동 고개에서 전생서 남단 이태원 제천정으로 이어지는 옛길을 역사탐방과 체험학습의 장으로 활용한다. 넷째 후암동 주민들이 만든 커뮤니티 지도에 마을 역사지도를 더한다. 다섯째 용산구 지역에 조선통신사 사행로 표지판을 설치하고, 용산공원 안에 조선통신사 기념관을 설치한다.
덧붙이는 글 |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용산공원, 시민에게 길을 묻다> 특별 전시를 계기로 토크콘서트와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에 참가했다. 그 내용을 2회로 나눠 실을 예정이다. 1회는 용산공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리하고, 바람직한 공원조성 방안을 제시한다. 2회는 덕수궁에서 용산까지 조선통신사 옛길을 걸으며, 옛길을 찾아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