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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혼자에게 묻지 않는다, 결혼을 왜 했냐고.
기혼자에게 묻지 않는다, 결혼을 왜 했냐고. ⓒ 참여사회

<불후의 명곡>에서 박수홍이 비혼식 현수막을 걸어놓고 공연을 하고, <베틀트립>에서 김숙이 셀프웨딩 사진을 찍고, 케이블에서는 <비행소녀>라는 비혼 전문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오늘날 '비혼'이라는 말을 몰라서 다시 묻는 사람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닐 미(未)를 써서 미혼(未婚).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에 사람은 결국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담겨있으니 이를 지양하고 결혼하지 않았다는 상태를 가리키거나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의 비혼(非婚)이라는 용어는 이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이룬 듯하다. 문제는, 비혼이 그저 미혼에 대응되는 개념이나 다양하게 존재하는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는 것이다.

'비혼'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또하나의문화에서 주최한 '비혼여성캠프'나 여성의전화와 같은 여성단체 내에 생긴 '싱글여성모임' 같이 주로 결혼제도를 벗어나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조모임이 기사화되면서 사회적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당시에 비혼은 독신이나 싱글처럼 결혼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여성을 뜻하는 것으로 혼용되기도 했다.①

여성이 누군가의 딸, 혹은 아내, 어머니라는 남성과의 관계적 지위를 통해서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1990년,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4.8세였다. 사회는 이렇게 낮은 '결혼 적령기'를 놓친 여자들을 '노처녀'라고 부르며 문제적 여성으로 낙인찍었다. 노처녀가 아닌 독신이나 싱글, 비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은 이성애적 결합을 전제하고 남성중심 시각에서 여성의 '결혼할' 나이를 정하고 결혼을 위주로 여성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 반대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 간 결합을 통한 가족의 구성과 그 안에서의 섹스, 출산, 양육만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보수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비혼'은 곧 '독신'임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비혼은 비단 결혼 바깥에 '혼자' 존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는 삶에도 얼마든지 수많은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비혼은 기존의 결혼, 가족제도가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위계화 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독신, 싱글과는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가진 언어이자 세계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비혼여성입니다. 결혼하지 못한 미혼여성이 아닌,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한 비혼여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된 섬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홀로 꽃필 수 있고, 함께 꽃필 수도 있는 자유롭고 완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꿉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나가며, 다름이 문제가 아닌 더 큰 힘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려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유를 열망하는 이들의 축복과 함께! 비혼으로 홀로 또 함께 잘살겠노라고 신성하게 선언합니다.

- 비혼선언문, 언니네트워크 제1회 비혼여성축제(2007년)

비혼이라는 문제, 비혼이라는 해답

'남성'은 공적영역인 임금노동시장에서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사적영역인 가정에서 가사, 육아를 전담하는 젠더이분법적인 분업은 산업화 시대에 이상적인 핵가족 모델을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이러한 성별분업은 이성애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정상가족'의 재생산은 결국 이성애라는 섹슈얼리티를 정점에 놓고 그 위계를 재생산해냈으며 어떤 삶이 '정상적'인 여성의 삶인지를 규정했다. 이러한 성차별적 분업을 비판하면서 '정상적'인 여성/여성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이 쏟아졌고 '비혼'은 섹슈얼리티의 위계를 위협하는 존재이자 '정상가족' 단위의 사회 유지 및 재생산을 방해하는 문젯거리로 지탄받았다.

그동안 여성의 취업률은 1985년 40.9%에서 2016년 50.2%로 증가했지만 2015년 일·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시간은 여성이 하루 평균 3시간 14분, 남성은 40분으로 여전히 여성이 전적으로 가사의 책임을 지고 있다.

『기획된 가족』이나 『아내가뭄』, 『타임푸어』 등에서 지적되듯이 가사는 집에 돌아온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책임지고 있는 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매분 매초의 분투이다. 자녀가 학교를 잘 마치고 제대로 된 동선을 따라서 학원에 가고 있는지, 하루 종일 선생님과 다른 학부모들과의 대화창과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 주양육자에게 하루 평균 3시간 14분 가사노동시간이라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다.

가사와 양육, 재생산 활동을 공적영역 외부의 것으로 치부해온 기존의 성별분업 체계는 여성의 이러한 활동을 비용으로 여기게 된다. 이는 곧 여성 노동자의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결국 출산과 양육을 기점으로 여성들은 임금노동시장에서 퇴장하고 커리어가 단절된다.

2016년 기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한 여성의 비율은 47.5%로 과반수 이하로 떨어졌다. 그밖에도 1960년대 이후 피임법 보급에 따른 섹스 및 재생산권에 대한 통제력 증가, 결혼 전 연애 기간의 증가, 대학진학률과 교육기간의 증가, 결혼에 대한 사랑과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 자기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적 압박 등, 왜 지금 이 시대에 비혼이 늘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은 수도 없이 많다.

 비혼은 왜 선택지가 아닐까?
비혼은 왜 선택지가 아닐까? ⓒ 참여사회

비혼은 이제 정말 비-혼이고 싶다

그러니까. 비혼으로서 받는 차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퍽 난감하다. 혼인과 가족 중심의 사회구조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삶 전반에서 나타난다. 이성애중심적인 결혼과 가족 이외의 것을 상상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혼도 여전히 자기가 아는 결혼과 가족에 관계된 것으로 상상한다.

비혼이 이성애중심적인 결혼을 '통해서' 구성되는 가족, 젠더이분법적인 성역할,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 재생산되는 '정상적인 여성'의 정의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결국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비혼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비혼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비'정상가족'운동이나 비'정상여성'운동 쯤이 되려나.

① 2000.12.21. <국민일보> [우리가 다시 쓰는 행복일기] <8·끝> 독신 가족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유나님은 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비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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