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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기록관일 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상영회를 통해 공개한 5·18영상기록물.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도청 진압 이후 수습되지 않은 시신들이 찍힌 장면이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일 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상영회를 통해 공개한 5·18영상기록물.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도청 진압 이후 수습되지 않은 시신들이 찍힌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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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고통과 아픔이 생생히 전해졌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하 5·18기록관)이 지난 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상영회를 통해 미공개 5·18영상기록물을 공개했다.

총 72분 분량의 이 기록물은 1980년 5월20~27일 상황, 도청 진압 후 5월28일에서 6월1일까지 정리 상황과 시민들의 일상, 망월동 시신안장 등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았다. 흑백 무성필름으로 소리는 담지 못했지만, 비교적 선명한 화질로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자료다.

38년만에 공개된 5·18영상의 초반부는 도청 앞 집단발포 전인 21일 금남로 앞에서 시위대와 계엄군의 대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38년만에 공개된 5·18영상의 초반부는 도청 앞 집단발포 전인 21일 금남로 앞에서 시위대와 계엄군의 대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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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전인 1980년 5월21일 금남로에서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와 계엄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시위대 앞에서 방송하는 전옥주씨의 모습과 더불어 금남로 곳곳을 에워싸고 분주하고 움직이는 계엄군을 볼 수 있다. 이어 적십자병원, 전남대병원, 광주기독병원직장방위대 등의 장면이 이어진다.

21일 집단발포 이후로 추정되는 장면으로 헌혈하는 시민들의 모습부터, 옮겨지는 시신들, 이를 보고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상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보이는 장면만으로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알 수 있었다.

72분간 상영 시간 내 곳곳에선 '아…'라는 탄식도 들렸다.

다시 22일 전남도청 앞 일대, 금남로를 비춘 장면에선 시위대가 트럭, 버스를 타고 지나다닌다. '광주금호고속'이라고 적힌 버스, 전남도청 입구의 '간첩자수 및 신고 강조기간'이란 글귀도 보였다.

5·18 당시 시위대가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 “시민이여 일어서자”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차량 앞에 걸려있다.
 5·18 당시 시위대가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 “시민이여 일어서자”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차량 앞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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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철폐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금남로를 누비는 시민군의 버스, '구속 학생 즉각 석방하라'는 현수막도 볼 수 있었다. 트럭 위에서 주먹밥을 먹는 시민의 모습도 보였다.

이 부분에서 5·18기록관 양라윤 학예연구사는 "시위 장면은 향후 제보나 조언이 필요하다"고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 영상기록물의 특징은 금남로와 도청 앞 일대뿐 아니라 광주 외곽 상황도 영상에 담았다는 점이다. 장소를 특정하긴 힘들지만 도심 외곽을 돌무더기로 진입을 막아 놓고 경계를 서고 있는 계엄군, 트럭을 타고 이곳을 취재하는 외신 기자들도 영상에 담겼다.

(광주)시청과 목포 방향을 안내하는 교통 표지판과 그 아래 처참히 부숴진 차량의 모습이 이어졌다.

22~23일 도청 본관과 회의실 사이에 수습된 시신들이 태극기로 덮혀 있는 모습, 도청 앞 궐기대회가 진행되는 현장들이 비춰졌다. 도청 앞 분수대 앞으로 시민들이 모여있고, '계엄해재', '휴교령 철폐하라', '끝까지 싸우자 독재없는 민주의 땅'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린 무대가 보였다.

옛 남도예술회관 앞에 붙은 사망자 명단과 이를 확인하는 시민들, 화정동 근처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계엄군과 탱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자단이 헬기에 탑승해 상공을 돌며 도청 주변을 촬영한 영상도 담겼다. 27일 이전 도청 주변 상황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폐허같은 광주…데모 6일째'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신문 기사(1980년 5월23일자)를 지나 시위대를 태운 '24번' 트럭이 분수대 주변을 지나는 모습, '수습학생시민'이라고 적힌 어깨띠가 걸린 트럭에 실린 소총들도 볼 수 있었다.

짐가방을 들고 광주시민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27일 전 광주 상황으로 추정된다. '광복 고물상'이라는 상호의 가게를 비롯해 도심 내 거의 모든 상가 건물의 셔터가 내려져 있다. 그리고 영상은 27일 최후 항전이 끝난 뒤 광주 상황을 비춘다.

전남도청, 광주경찰서 등서 계엄군이 무기를 회수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과 더불어 분해된 총기와 실탄들을 촬영했다.

당시 장형태 전남도지사가 기자단 브리핑, 수습위원들과 면담하는 장면을 지나 공무원들이 다시 도청에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론 광주 도심은 불타고 망가진 상태였다. 각 거점마다 경계를 서고 있는 계엄군과 배치된 탱크들, 연행되는 시민들의 모습이 끊임 없이 이어졌다.

28일을 지나면서 다시 가게를 열고 깨진 유리창을 바꾸는 등 일상을 시작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부모님 손을 잡고 등교하는 학생, 아무일 없었다는 듯 친구들과 운동장에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촬영됐다.

수창초등학교 촬영 장면에선 촬영자가 아이들과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안타깝게도 소리가 안 들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29일 계엄군의 차량 검문 검색,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신분증 검사 모습과 더불어 고아주 대하섬유공업사 화재 등의 장면도 영상에 담겼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엔 망월동에 5·18 희생자들이 안장되는 장면이 나온다. 묘지 옆 햐안 상복을 입고 서있는 아이들의 모습.
 영상의 마지막 부분엔 망월동에 5·18 희생자들이 안장되는 장면이 나온다. 묘지 옆 햐안 상복을 입고 서있는 아이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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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장면은 망월동으로 향한다. 시신을 운구하고 매장을 준비하는 시민들의 모습, 영정사진을 들고 오열하는 유족들이 수도 없이 보였다.

묘 옆에서 넋이 나간듯 한 곳을 응시하는 시민, 형으로 보이는 이의 묘 옆에 하얀 상복을 입고 서 있는 남자 아이의 모습들도 있었다.

재가동되는 방직공장, 광주공원의 시민들, 광주중앙교회로 들어가 예배하는 시민들의 모습, 전남도청 주변 정비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나의갑 5·18기록관장은 "영상을 통해 38년 전 광주, 비극적이고 참혹한 광주, 주먹밥 나누고 피를 나누는 광주를 만날 수 있었다"며 "5·18진실규명에 필요한 직접적인 내용은 담고 있지 않지만, 사실적인 당시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만으로 이 영상의 사료적 가치는 충분하다. 5·18진실을 전 국민에 알리고 확인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영상 중 장면 일부는 아직 장소나 시간대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다. 10일부터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해당 영상기록물을 상영하는 5·18기록관은 영상에 대한 정보, 인물, 장소 등에 대한 시민 제보를 받는다.

※제보 전화: 062-613-8202, 8287.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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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광주드림>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5.18,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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