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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작가. 사진은 지난해 10월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2’(알쓸신잡2) 제작발표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위해 자리에 앉고 있는 모습.
유시민 작가. 사진은 지난해 10월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2’(알쓸신잡2) 제작발표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위해 자리에 앉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유시민. 최근 언론의 노출이 잦아지며 방송인으로 느껴지지만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 그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과 '세상'이다. 민주화운동가, 칼럼니스트, 국회의원, 장관 등 여러 직함을 달며 살아왔지만 그 중심에는 사회가 있었다. 뚜렷한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세상일을 분석해 논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그는 몹시 매력적이다. 그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그는 언제부터 이러한 사람이었을지 궁금했다.

민주화운동가였던 시절, 그는 역시 비범했다. 그의 20대는 한마디로 치열했다. 책 <청춘의 독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라 여기는 그의 인생에 어떠한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청년 유시민을 개인이 아닌 세상에 더욱 눈 돌리고, 사유하고 행동하도록 이끈 '14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서 2권, 사회·과학 서적 7권, 소설 5권, 전체적인 구성은 대략 이렇다. 그러나 내용으로 보자면 그가 살아온 시대를 반영하듯 러시아 혁명이나 공산주의에 관한 책이 5권이며 다른 책들 역시 역사 속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거나 '올바른 사회'를 고민하게 하는 책들이다. 목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작가는 책과 함께 자신이 해왔던 고민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책의 시작과 끝에 여실히 나타난다. 1장에서 작가는 대입 예비고사를 한 달 앞두고 읽었다(여기 소개된 책 중 가장 먼저 읽었던 책으로 여겨진다)는 <죄와 벌>(도스토옙스키)을 소개한다. 주인공은 싸구려 술집에서 두 남자가 전당포 노파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듣는다. 돈 많고 나쁜 노파는 많은 재산을 자신을 추도해 줄 수도원에 모두 기부할 예정이지만 그 돈을 빼앗아 선한 일들을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그 일을 해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실행한다. 많은 독자들이 '선한 목적은 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슷하게 결론내리는 책이지만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청춘의 출발점>에서 유시민은 이렇게 질문했다.

"만약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악덕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회악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가? 사회악을 완화하거나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죄와 벌>은 내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떠난 독서와 사색, 행동과 성찰,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그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이었다."(본문 18쪽)

단순히 소설이라 인식하지 않고 삶으로 끌어들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인생의 지도를 그려나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인생의 고비마다 읽었다는 <역사란 무엇인가>(E.H.카)를 소개한다. 이 책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고 밝힌다.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들 사이의 인과관계가 역사책을 쓴 사람의 주관적 신념이나 희망에 따라 구축된 것이라니 그 위에 쌓아온 자신의 가치관, 인생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유시민은 그 고민을 이렇게 밝힌다.

"카는 이 책 후반부에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견해를 밝혔는데, 그의 역사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역사 발전 또는 진보에 대한 견해도 함께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일 경우 인생이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조각배가 될 것임을 나는 예감했다.

카는 이렇게 말했다. (중략) 과학이든 역사든 사회든, 인간 세상의 진보는 현존하는 제도를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성의 이름으로 그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설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 인간의 대담한 결의를 통해 이루어졌다."(본문 307쪽)

그렇게 세상을 향한 그의 돌진이 시작된 모양이다. 이 책은 어쩌면 작가의 자서전이 아닐까 싶다. 구구절절한 인생 이야기는 없지만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그의 20대가 어떻게 그러했던 것인지, 그 생각의 기원을 모아서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만든 이들이 바로 이러한 책들이었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표지.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이 외에도 사상의 은사라 여기며 품위 있는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줬다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해, <인구론>(맬서스), <종의 기원>(다윈), <유한계급론>(배블런) 등의 사회·과학 서적을 소개한다.

그저 책의 내용만 소개하지 않는다. 그 이론이 만들어진 배경이 된 작가의 삶과 당시의 영향력도 함께 제시한다. 또한 32년이 지난 지금(출판당시) 재독해 현재는 그 이론들이 어떻게 평가되며 무엇이 문제인지 보여준다.

나름의 의견도 제시한다.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니라 사유하고 고민한 흔적이라 느껴져 더욱 마음이 간다. 예를 들면 유시민은 유한 계급론을 비판한다. 생활환경은 변화하게 마련인데 개인이 그 변화를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약하면 적응이 일어나고(진보), 둔감하거나 버텨낼 힘이 강한 개인일수록 적응을 거부한다(보수)는 유한계급론을 부정하며 진보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어떤 사람이 더 유연하게 인습적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교정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진보)일까? 똑같은 생활환경의 변화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자신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사회제도에 대해 더 넓고 깊게 이해하고 성찰하는 지성적인 사람일수록 더 유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두뇌 활동이 활발하고 많이 배우고 다양한 문화를 폭넓게 경험한 사람일수록 더 진보적일 수 있는 것이다."(본문 244쪽)


물론 이러한 생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예리한 분석을 신뢰하고 즐기는 독자라면 그가 소개하는 책을 한 권쯤은 읽어보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읽기 불편할 수도 있겠다.

작가는 어떻게 이러한 책들을 읽게 되었을까. 개인의 선택도 있었고 아버지의 영향력도 컸다고 밝힌다. 그러나 가장 중한 역할을 한 것은 대학 신입생이 되어 가입한 지하대학, 농촌법학회였다. 그 안에서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여기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함께 읽고, 공부하고, 실천했다. 앎은 삶과 일치해야한다 여기며 행동했던 젊은이들,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젊은 유시민. 그의 용기를 알기에그가 멋지다.

'청춘'이라는 시기는 규정된 것이 아니라 제각각이다. 지적인 면의 성장으로 본다면 난 이제 막 청춘이 시작된 듯하다. '나'만을 생각하던 시야가 지금에서야 '세상'으로 조금씩 확장되는 중이다.

유시민의 책은 그런 나에게 독서에 대한 대략의 지도를 그려줬다. 책은 내면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며 나와 작가 사이의, 나를 둘러싼 사회와 작가를 둘러싼 사회의 소통임을 다시 생각해 본다.


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7)


#청춘의 독서#유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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