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지만 시절이 하 수상하다. 각 대학 학생회가 최근 교육부에서 '주세법령 준수 안내 협조' 공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문의 요지는 축제장 주점에서의 주류 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내용이다.
각 학생회는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렸다. 이번 공문은 각 대학의 축제가 이미 기획되고 있는 시점에서 준비할 틈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달되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특히나 올해 축제에 신선한 변화를 시도했던 각 대학 학생회는 국세청의 처벌 의지와 교육부의 권고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동안 대학 축제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주점'과 '술'이었다. 특히 주점은 저마다 학과의 특색을 살려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해 나름의 상징성을 보여줬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87년에는 민주화 투쟁으로 휴교와 휴강이 잇따르던 해라 딱 한 번 생략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에 대해 열기가 뜨겁던 1980년대에도 축제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물론 그때도 축제의 꽃은 주막이었다.
1980년대의 주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서먹서먹했던 선후배와 교수님과의 교류의 장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학과마다 상징을 나타내는 기발한 문구를 동원하여 주점의 이름을 정했다. 거금을 투자하여 친구들을 동원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고, 조리와 서빙 그리고 호객 행위도 볼거리 중의 하나였다. 학과생 전체가 총동원되는 가장 중요한 학내행사였던 것이다.
주점에서 단연 인기메뉴는 두부김치와 파전이었다. 얼마나 많이 팔아치웠는지, 파전에 들어갈 파가 다 떨어져 잔디를 뽑아서 부쳤다는 괴담이 한 번씩 돌긴 했지만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았다. 주점의 막걸리가 동날 때까지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어느새 잔디밭을 두루마리 삼아 잠을 청하곤 했다. 그래도 동이 틀 때까지 막걸리를 마시며, 함께 민중가요를 불렀던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학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주점에서 모인 선후배들은 막걸리가 얼큰하게 들어가 주체할 수 없는 열기를 발산하기 위해 교내 연못에 뛰어드는 무모한 모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이 뛰어들었는데도 요즘처럼 사고 한번 없었던 것은 선배와 동기들의 배려와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십 년 동안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는 대학축제는 상업화에 휩쓸려 그저 술만 마시는 축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늘었다.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술을 판다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비난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축제의 주점에서는 대부분 술장사로 쉽게 수익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축제에서 술을 팔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법이 맞다. 막걸리 주조장이나 도매점에서 허가받은 사업자만 술을 받아다가 팔 수 있지만, 축제 한 번 치르자면 주점 한 곳에서만 수십 상자 해치우는 것은 예사였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수십 년이나 허용해놓고 지금에 와서 갑자기 술을 팔지 못하게 하는 건 가혹한 처사로 보인다. 술을 금지하는 자체가 아니라 주류판매 면허가 없는데 학생들이 팔면 처벌 받을 수 있다고 내린 공문이라지만, 주점에서 주류판매 시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다.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 더 좋은 방안은 없었을까?
이미 여러 대학에서 처벌받은 선례도 있다. 그동안 관례로 축제에서의 주류 판매를 허용했지만, 이제는 당장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학교마다 기준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술 판매는 안 되는데 인근 편의점에서 사 오는 것은 또 된단다. 학내 주류 반입의 경우 실질적으로 규제가 어렵고, 축제 기간이 아닌 경우에는 주류 반입에 제한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여 규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문에서 규정한 주류 판매행위보다 사실 법적으로 더 문젯거리가 되는 부분은 음식 조리와 판매 활동이다. 주점에서 부스를 열고 주류를 판매하는 행위보다 더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애초에 학교 주점에서의 모든 활동이 불법인데, 식품위생법 기준을 지키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21조(영업의 종류)는 '식품제조·가공업'을 식품을 제조·가공하는 영업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식품을 판매와 나눔으로 구분하지 않고 제조·가공하는 모든 영업은 반드시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또는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조리와 음식판매 등의 위법 행위는 적용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술 판매만 못 하게 하는 것은 어딘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법 집행은 강력하게 집행해야 할 곳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하면서, 관행으로 그냥 넘어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곳에는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 무슨 '규제'를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 물 마시듯 집행하는 건지 헛웃음이 나온다.
대학에 들어간 아들의 말에 의하면 요즘 대학 축제는 연예인 구경하는 기분이 반, 중간고사 막 끝내고 막걸리 한잔하는 맛이 나머지 절반이라고 한다. 어차피 주막에서 못 마시면 다른 편법으로 마실 수 있는데, 왜 이제 와서 제재하는지 잘 모르겠단다.
"야시장 불법 노점은 잡지도 못하면서 주류판매 규제로 편의점만 때아닌 호황을 맞게 생겼어요. 그런데 그분들께 물어보고 싶어요. 혹시 그런 지침을 내린 분들은 대학 축제 때 주점에서 술 안 마셨을까요? 주점에서 술 없앤다고 결코 못 마시지 않아요, 오히려 편법이 늘어 더 많이 마실 걸요?" 공문은 주세법령 준수를 통해 '건전한 대학축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며 마무리를 맺는다. 대학교 축제 기간 내 잠깐 운영되는 주점, 술 판매가 그렇게 큰 문제일까? 이미 그들도 성인이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다만 자유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지킬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