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 간의 비핵화 합의 후에도) '북한, 핵 없네'라고 믿을 게 아니라 북한 시스템상 다 뒤지지 않는 한 필경 핵무기 몇 개는 숨겨 놓을 것이다.""북한의 핵 폐기는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 기적은 어려울 것이다."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단호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내달 12일 북미 양 정상이 비핵화 합의를 해도, 북한이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 못 박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그건 김정은 수령 체제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말도 나왔다. 비핵화 종이로 포장을 해놓겠지만, 여전히 '핵보유국'으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14일 오후 태 전 공사는 160분여간 일관된 주장을 펼쳤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신관 제2세미나실에서 '미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전망'을 주제로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 등이 주관한 강연과 회고록 <태영호의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다.
"북, 핵 포기 절대 안 해"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완전한 비핵화)를 말하고 있지만, 북한은 SVID(suffici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충분한 비핵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SVID는 핵을 포기하지 않은 채 핵 위협을 감소시키는 핵 군축의 방식을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CVID 방식은 김정은 체제의 붕괴와 직결된다. 태 전 공사는 "CVID를 하려면 사찰단의 무작위 접근이 허용돼야 한다"라며 "북한은 이를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꼽았다.
태 전 공사는 "서울 강북구의 2배 정도 되는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며 "미국 등이 핵무기가 있을 수 있으니 (정치범 수용소)를 사찰하자고 하면, 북한이 허용하겠냐"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를 허용한다면 (북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가 다 드러나는 것인데 북한은 이를 보여줄 리 없다"고 내다봤다.
태 전 공사는 북한에 있어 핵은 '창과 방패'라고 봤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무기가 '강력한 보검'이자 '확고한 담보'라고 말했다"라며 "이것을 내려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북미정상회담의 실패로 귀결된다. 설사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CVID)에 합의한다고 해도 이행은 어렵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진정한 핵폐기'에 기초한 합의가 나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맺은 '판문점 선언'에도 북한의 핵 보유 의지가 드러나 있다고 진단했다. 태 전 공사는 "판문점 선언을 보면, 북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노력한다는 게 아니라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되어 있다"라면서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내고, 핵 자산의 반입을 중지하는 등 할 일이 명확하지만, 과연 북한이 무엇을 하겠냐"라고 반문했다.
"악마를 천사로 보지 말라"
태 전 공사는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한국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김 국무위원장의 쇼에 취하면 안 된다"라고 짚었다. 이어 "김정은이 우리와 정상회담을 했다고 북을 악마가 아니라 천사화 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북 시스템상 핵 폐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를 알고 합리적이고 가능한 접근법을 내놔야 한다"라고 반복해 말했다. 그는 "'핵이 있는 북'을 전제로 모든 전략 세우고 북과 교류해야 한다. 도로, 철도 등을 우리가 놓고 북한의 중심을 우리가 뚫고 가야 한다"라며 "도로와 철도를 놓고 우리가 마음껏 교류하면 북한이 과연 견뎌낼 수 있겠냐"라고 피력했다.
태 전 공사는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베트남, 중국 식의 경제 개방체제로 나아가지 않겠냐는 전문가와 일부 언론의 전망도 북을 몰라서 하는 말로 일갈했다. 그는 "베트남과 중국은 사상을 해방하고 경제개혁을 시작했다"라며 "북의 사상해방은 김정은의 세습 정치를 허무는 것인데 (북이) 이렇게 할 리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북, 실세는 김창선"
이 자리에서 태 전 공사는 자신의 책 제목이기도 한 '3층 서기실'을 이른바 청와대 비서실로 규정했다. 우리는 북한의 당 체계를 당중앙위원회 군대, 국가보위성(국정원), 인민보안성(경찰) 등으로만 알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지원하는 건 결국 '당 3층 서기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북한에서는 최고 통치자를 수령으로 하고 신으로 받들고 있는데, 이 체제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라며 "이를 뒷받침하는 기관이 바로 3층 서기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기실의 규모나 소속 인물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데, 현재 이곳의 최고 책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함께 방남한 김창선 비서실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