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사시미다. 스시(초밥)말고 회 말이다(참고로 사시미는 일본어이므로, 아래부터는 우리말인 '생선회'로 대체하겠다). 그 차갑고 서늘한 느낌이 좋고, 날 재료 특유의 식감이 맘에 든다.
이렇게 좋아하는 생선회이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그리 즐겨 먹지를 못한다.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지에서 쉽게 보기 힘들기 때문에, 회를 제대로 먹고 싶으면 날 잡고 횟집에 가거나 일식집을 방문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생선회 인프라그런데 횟집이나 일식집 등에서 제공하는 생선회는 가격이 제법 비싼 축이다. 이름이 알려진 곳일수록 값은 치솟는다. 가끔은 이 정도 양에 이 정도 가격이 과연 적당한지 영 께름칙할 때도 있다.
게다가 생선회는 속칭 '혼밥'도 어색하다. 회를 먹을 때는 최소 두서너 명 정도는 모여야 멋쩍지가 않다. 따라서 혼자 불현듯 생선회가 먹고 싶을 때에도 일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한마디로 이래저래 생선회는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편하게 즐기기는 힘든 음식이다. 따라서 아직은 마니아를 위한 음식에 가깝다.
그러나 일본에서 생선회는 결코 마니아를 위한 음식이 아니다. 내실에 비해 가격이 턱없이 높게 책정되지도 않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상적으로 즐기는 음식인데다, 가격 또한 생각보다 낮다.
오히려 너무 싸게 팔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아마도 섬나라라는 점, 그래서 해안가가 많고 가깝다는 점, 어류를 숙성 관리하고 유통하는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는 점, 수요층이 두텁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어느 슈퍼마켓이나 어느 마트든 생선회를 파는 섹션이 반드시 있다. 게다가 대략 저녁 8시 내외에서 점포 마감 즈음까지는 단계적으로 할인이 진행된다. 처음에는 20~30% 정도의 할인 딱지가 붙다가, 뒤로 갈수록 50% 이상 할인하는 품목도 즐비하다.
나 같은 여행객 입장에서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살짝 들러 요샛말로 '득템'하기 딱 좋다. 한국에서는 1팩 정도 살 수 있을 가격으로 여기서는 평균 3팩 정도를 살 수 있다.
다양한 종류들로 골라 사는 재미사실 우리나라 마켓, 마트에서도 회를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종류는 대략 딱 세 가지다. 참치, 연어, 광어. 그 외로 가끔 오징어나 문어를 팔기도 하는데 사실 생선회라기보다는 숙회인 경우가 많다. 생활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회가 이 정도 뿐이다 보니 다른 종류의 회들을 먹으려면 역시 횟집이나 일식집을 가야한다. 앞서 말한 대로 생선회가 우리나라에서 마니아 음식으로 치부되는 이유다.
그러나 일본은 마켓, 마트에서 파는 생선회조차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생선회의 일상화라고 해야 하나. 일단 참치와 연어는 당연하고, 심지어 부위도 나눠 판다. 특히 참치는 뱃살 부위도 늘 진열대에 있다. 가격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저렴하다(인기가 좋아서 할인 시간대에 가면 항상 보란 듯이 매진되어버린다는 점은 슬프지만).
오징어나 문어, 낙지들도 숙회가 아니라 정말 생선회다. 그 외에 '흰 살 생선'(도미, 숭어, 점성어 등)과 '붉은 살 생선'(송어 등) 그리고 '등 푸른 생선'(고등어, 전갱이, 방어 등)에 해당하는 대표 생선회들도 항상 볼 수 있다. 심지어 '갑각류'(새우 등)와 '어패류'(조개, 가리비 등)도 있다.
다만 광어는 보기 힘들다. 일본은 광어를 양식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우리처럼 광어를 싼 값에 대량으로 흔하게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일본이 한국의 양식 기술을 배우는 입장이다. 그래서 한국의 광어는 일본으로도 수출한다.
한번쯤은 편의점 말고, 마켓과 마트로 포식을일본 여행 책자에서 맛집 소개로 빠지지 않는 것이 스시야(寿司屋), 즉 스시집이다. 그 중 미슐랭 스타 초밥 집은 여행 가이드북 단골 콘텐츠다. 물론 타국에 여행을 가서 맛과 인지도를 갖춘 음식점을 찾는 일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 중 하나일 테다.
특히 '미식의 나라' '맛집 천국'으로 알려진 일본까지 여행을 갔다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일본은 미슐랭 별을 획득한 레스토랑이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나라다. 미슐랭 맛집으로는 세계에서 2위인 셈이다.
그렇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주로 무엇을 즐겨 먹는지를 알 수 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슈퍼마켓, 마트, 편의점이다. 그곳들을 가봐야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그네들의 진솔한 식문화를 날 것 그대로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 책자들이 마켓‧마트들에 대해 소개하면서도 그 내용이 정작 과자, 음료, 라멘 등 가공식품 및 공산품류에만 치중해있는 점은 늘 안타까웠다. 일본의 마켓‧마트에는 그 외에도 신선식품이라든가, 이미 조리된 요리들, 혹은 즉석식품(인스턴트 식품)이라 할지라도 유통기한이 길지 않아 사실상 신선식품에 가까운 먹거리들이 많다. 여행객 입장에서도 숙소에 가져가 쉽게 먹을 수 있을 만큼 포장이 잘 되어 있고, 조리법도 간단한 것들이 상당수다.
특히 생선회와 스시 등 해산물 먹거리는 단연코 일본 슈퍼에서 한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식생활 문화 중 하나다. 요새 일본에 여행가서 소위 '편밥'(편의점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추세던데, 편밥 말고 슈퍼에도 한번 가보길 권한다. 도리어 편의점보다 싸고 방대한 신세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