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머리맡에 두었다가 자기 전에 꼭 읽고 자는 책이 한 권 있었다. 글의 길이가 짧아 밤에 읽기 제격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글 하나하나가 심장을 관통한다. 고작 삼십 몇 년 산 나는 흉내낼 수 없는 삶의 내공이 담겨 있었다.
책을 다 읽어버리는 게 아쉬워서 한편씩 야금야금 읽어왔지만, 결국 끝 편을 읽고야 말았다. 이제 자기 전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고심하던 때에 발견한 책이 있었다. 이 책에 대한 만족도는 이전에 읽었던 책을 능가한다. 바로 <쓰기의 말들>이다.
<쓰기의 말들>을 처음 만난 장소는 대형 서점이었다. 무채색과 파스텔 톤의 표지 물결 속에서 유난히 녹색의 존재감을 뽐냈다. 내용을 읽기도 전에 출판사를 보는 순간 반가워서 눈이 확 띄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유유출판사의 책이었다.
출판사 대표가 인터뷰한 기사를 굉장히 인상 깊게 읽어서 따로 스크랩을 해둔 적이 있다. 출간 도서를 보니 교육 관련 책이 상당히 많았는데, 마침 출간 도서도 내 취향에 맞았다. 그 때부터 이 출판사에 대한 관심은 애정이 되었다.
1인 출판사답게 책의 표지디자인마저 개성 넘친다. 유심히 보지 않고 넘기면 이게 무슨 글자들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나조차도 처음에 표지에 왜 이렇게 이상한 글자들이 많은가 생각했더랬다. 참 희한하다고 생각하며 아무 쪽이나 펼쳐서 읽는 동안 예기치 못했던 내용에 내 시선이 책에 고정되었다. 바로 이거였다, 내가 원하던 내용의 책!
먼저 글을 쓸 때 이러이러한 맞춤법이 있고 문장의 길이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말들만 늘어놓지 않아서 좋다. 그런 건 돈 주고 책을 사서 읽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꼈던 각종 이름 모를 힘듦과 감정들에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내용을 원했다. 이 책이 바로 그러했다.
저자는 글쓰기를 주제로 104개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저자가 글을 쓰면서 느꼈던 감정, 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정, 학인(學人)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있었던 일 등을 다룬다.
부제목처럼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쓰는 과정에서 조우하게 될 각종 감정들과 애로사항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원론적인 글쓰기 방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서 좋다.
저자가 글쓰기를 기반으로 겪었던 경험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많이 부족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실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글을 쓸 때 당신만 힘든 게 아니에요, 이런 상황일 땐 이렇게 하세요' 등 글이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하고 방향을 알려주기도 했다.
왼편에는 글쓰기에 관한 명사들의 어록만 싣고, 오른편에는 작가의 글을 실은 구성도 좋다. 어록과 관련한 경험을 풀어내는 느낌을 줘서 글의 감동이 배가 되었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며 글을 써왔다는 은유 작가, 책을 읽을 때마다 수집하듯이 좋은 문장을 찾아 발견해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저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작가도 글을 업(業)으로 삼는 만큼 보석 같은 문장들을 접하며 감동받고, 자기 문장을 쓰고 고치고, 또 다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을 모습이다. 이 책도 그러한 노력을 거쳐 완성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글의 내용과 깊이에 저절로 수긍이 간다.
나는 전문 지식이 없어 전문 서적을 집필할 수준은 못 된다. 그렇다고 긴 호흡을 가지고 소설을 써본 적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거라고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특별할 게 없는 그런 글들도 누군가 읽어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저자도 본인의 평범한 글 소재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어느 새 작가에게 친근감을 넘어서서 동질감마저 느꼈다. 정답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일상을 소재로 한 글이라 더 쉽게 읽히고 더 깊게 마음에 와 닿는다는 점이다. 글을 읽는 주체인 우리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 이유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독자는 신기한 존재이다. 작가와 친분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 책 몇 권 읽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작가를 좋아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은유 작가에게 감사하다. 나에게 글을 쓰는 기쁨, 잘 쓴 글을 읽는 행복을 알려주었다. 부족하게나마 쓰는 사람이지만 더욱 글쓰기에 빠져드는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