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판타지, 액션 등등 과거 대다수 활극만화 주인공들은 전형적인 히어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주인공은 평범한 이들보다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남들은 평생 가도 얻지 못할 기연까지 얻으며 빠르게 성장을 거듭한다.
거기에 교활한 악당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좋은 머리에 성격마저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모까지 출중한지라 별다른 노력(?)없이도 뭇 이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기도 한다. 어디하나 부족한 데가 없다. 한 마디로 완벽한 인간이다. 주인공은 늘상 그랬다.
무협물에서는 천하를 구하는 영웅으로 명성을 떨치고, 판타지에서는 세상을 위험에 빠트릴 마왕이나 마물을 제압할 전설의 재림이다. 하늘이 영웅을 선택했고 거기에 맞게 맹활약을 펼친다. 현대, 미래 액션물에서도 그보다 스케일은 작을지언정 활약도는 만만치 않다.
예전 활극물에서는 주인공의 완벽함을 최대한 포장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강한 악역의 음모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지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내고 결국은 모두가 감탄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황성의 무협만화 속 한 장면에서의 주인공은 며칠을 굶은 상태에서 지인이 고기를 구워먹는데도 침조차 삼키지 않는 것으로 묘사됐다. 그야말로 특별함을 넘어 신선 같은 존재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최근의 독자들은 단순한 대리만족을 넘어 본인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을 원한다. 주인공은 말 그대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캐릭터일 뿐이다.
성격이나 행보까지 도덕책처럼 완벽할 필요는 없다. 때론 보는 이가 오글거릴 정도로 찌질하기도 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점이 많을 수도 있다. 외려 독자들은 그런 부분에서 인간적 매력을 느낀다.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고 악당과 맞선다
최근 연재를 시작한 <약한 영웅>(글 서패스 그림 김진석)은 기존에 인기를 얻고 있던 학원 액션물과는 다른 색깔이 엿보인다. 친구들과 자신을 괴롭히는 일진 패거리에 맞서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부분은 비슷하다. 하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슷한 소재의 일반적 작품과는 여러모로 차별성을 띠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 연시은은 <대가리>의 김구처럼 당당한 체구에 완력이 강하지도, <럭키짱> 강건마처럼 투지로 똘똘 뭉친 싸움꾼도 아니다. 160cm가 안 되는 키에 호리호리한 골격을 가진 작은 체구의 소년이다.
하지만 은장고교에 입학한 연시은은 학기초부터 강한 임팩트를 남기며 주변을 긴장시킨다. 체격과 완력은 약하지만 빼어난 두뇌를 활용해 주변의 여러 도구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싸우는가 하면 심리전을 통해 빈틈을 공략한다.
방심한 상대의 팔을 가방끈으로 묶어버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따귀 연타를 날려 기선을 제압한 것을 비롯 휴대폰, 바지 벨트를 무기로 쓰는 등의 방식으로 덩치 큰 일진들을 무너뜨린다.
연시은이 본래 작은 소년이었다면 <일진의 크기>(글 윤필, 그림 주명)의 주인공 최장신은 갑자기 작아지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케이스다. 농구선수를 연상케 하는 큰 키와 당당한 체구를 가지고 있던 최장신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또래들을 괴롭히는 소위 일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신체 이상으로 체격이 작아졌고 평소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무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최장신은 체격만 작아졌을 뿐 특유의 배짱이나 싸움 기술은 여전했던지라 치열하게 저항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들의 심정을 느끼게 되고 조금씩 지난 잘못을 깨닫는다.
<신암행어사>(글 윤인완 그림 양경일)의 배경은 멸망해 무정부상태가 되어버린 쥬신국이다. 주인공 문수는 쥬신의 특수부대였던 팬텀 솔저를 소환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마패와 총 한 자루를 들고 다니며 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을 돕는다.
과거 쥬신의 장군이었던 문수는 안타깝게도 저주에 걸려 조금만 무리를 해도 숨이 차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뛰어난 무예의 소유자였음으로 짐작되지만 총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행히 천재 검사 춘향을 만나 그녀가 산도로서 문수를 지켜주게 된다.
<외발로 살다>(고영훈 작)는 제목 그대로 한쪽다리를 쓰지 못하는 외다리 검객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 길도는 한때 친구였지만 자신의 다리를 자르고 적이 되어버린 최강의 무사 호국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이를 악물고 수련을 한다. 다리가 한쪽이 없는 상태에서 펼칠 수 있는 다양한 무술신이 인상적이다.
심리 상태나 행보가 꼭 모범적일 필요는 없다
무협 웹툰 <고수>(글 류기운, 그림 문정후)의 주인공 강룡은 사람을 쉽게 해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무림 전체에서 손꼽힐만한 실력을 갖추고도 악당들에게 많은 고전을 한다. 생사를 건 싸움에서조차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승부를 보려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도저히 아니다 싶은 경우에 풀 파워를 내서 마무리를 지어버리지만 그 사이 받은 데미지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또 다른 무협 웹툰 <불괴>(글 폭주필 그림 폭주작)의 주인공 백기립은 엉망진창 양아치다. 바른 생활과는 거리가 먼 제멋대로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무림 최대의 기연이 찾아온다. 구파일방의 전대고수들은 마교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진 천년 무림의 자부심을 되찾기 위해 자신들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내공과 무공을 한사람의 젊은 영웅에게 모두 전수하려한다.
그들에게 선택받은 인물은 마교 교주 등무휼에게 죽은 무림맹주 검제 남궁휘의 손녀 남궁설연이다.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 그녀를 최강의 고수로 만들어 마교에게 복수를 하고 정파무림을 되살리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힘을 전해 받는 것은 양아치 백기립이었다. 양가댁 유부녀와 정을 통하다가 도망가던 중 구덩이에 떨어지게 되는데 하필이면 남궁설연에게 힘을 주기위한 의식이 치러지던 장소였다. 의협심으로 똘똘 뭉친 젊은 영웅이 하늘의 선택을 받아 기연을 얻는 무협의 전형적인 요소를 정면에서 깨버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질란테>(글 CRG, 그림 김규삼)의 주인공 김지용은 이른바 '다크 히어로'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기분 나쁘게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낯선 남자에게 폭행을 당해 죽게 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엄청난 범죄였지만 법은 동종 전과가 있던 가해자에게 살해의도가 없고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3년 6개월의 처벌을 내린다.
이후 우수한 성적으로 경찰대학에 입학한 주인공은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본다. 여전히 그 남자는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감행하고 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주인공은 그동안 배운 다양한 능력을 동원해 낮에는 모범적인 경찰대학 엘리트로, 밤에는 범죄자를 처단하는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경찰대학 내에서는 누구보다도 법에 충실한 주인공이지만 바깥에서는 전혀 달랐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치 '사신(死神)'같은 모습으로 잔혹하게 범죄자들을 처단한다. 작품을 보는 상당수 독자들은 이 같은 주인공의 모습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때론 법이 범죄자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불만도 있는지라 웹툰 속 김지용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닥터 하운드>(글 팀 겟네임, 아루아니 그림 레임)는 평소에는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 따뜻한 수의사였다가 범죄자들에 맞서서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물론 죽음의 흔적까지 꿰뚫는 빨간 눈의 괴물이 되어버리는 이중인격 주인공을 다뤘다.
이 같이 최근 발표되고 있는 상당수 활극물에서는 꼭 주인공이 반듯하거나 지혜롭게만 나오지는 않는다. 때론 지켜보는 독자들이 답답해 미칠 정도로 꽉 막혀있거나 고집불통인가하면 악당을 처단함에 있어 그 이상으로 잔인한 모습도 서슴없이 보여준다.
"악당들을 이기기 위해선 그들 이상으로 교활해야 한다"는 <신암행어사>의 대사처럼 주인공이라고 다 반듯하고 완벽하지 않고 우리와 비슷한 심리상태를 가질 수 있다는 입체적 시각에서 스토리를 끌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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