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글 보기)수천 년의 흡연 역사에서 의학적 해악을 거론한 것은 50년도 채 안 된다. 물론, 담배의 해악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소수의 깨어 있는 목소리는 가끔 있었지만, 애연가들의 흡연 예찬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담배는 인류에게 다양한 멋과 정취를 제공하였으며, 최고의 기호품으로써 전폭적인 애정을 받아왔다.
세계적인 인물 중에도 골초가 많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골초 중 한 사람은 처칠일 것이다. 식사할 때와 잠자리에 드는 것 이외에는 입에서 시가를 놓은 적이 없다고 전해질 정도로 골초였다. 어떤 사진기자가 그의 입에 담배가 물려 있지 않은 사진을 찍으려고 며칠을 따라다녔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도 대단한 골초였다. 젊었을 때부터 코카인과 담배를 즐겼는데, 그에게 '담배는 자위'와 같았다. '쾌락과 위험의 탁월한 결합물'인 담배는 그의 삶과 연구의 촉진제이자 동시에 독약이었다. 결국, 구강암 때문에 생전 30번이 넘는 수술을 하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죽었다. 담배 중독은 그만큼 지독하다.
이밖에도 세계적인 골초는 많다. 러셀, 피카소, 헤밍웨이, 체 게바라,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도 담배를 물고 살았다. 담배를 신줏단지처럼 생각했던 린위탕은 끽연의 도덕적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담배는 현명한 자의 사고를 끌어내고 어리석은 자의 입을 다물게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담배만 많이 늘었다. 입대하기 전에 하루에 한 갑을 못 피웠던 것이 제대할 때는 두 갑 정도로 늘었다. 제대 후 신문사 수습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신문사 편집국은 그야말로 '오소리굴'이라 불릴 만큼 항상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그 후 직장을 옮겼던 잡지사와 출판사 역시 흡연자의 천국이었다.
"담배를 사랑하다"라는 라는 말 남기고 떠난 시인
작가 중에는 애연가가 많다. 담배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시인 오상순은 '꽁초'에서 음을 따 공초(空超)라는 호를 만들 정도로 끽연가였다. 평생 하루 20갑 이상 담배를 피우면서 '연아일체(煙我一體)'로 살다 간 선생의 묘비 뒷면에는 "담배를 사랑하다"라는 글귀가 뚜렷하게 음각되어 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도 애연가였다. 하루 1갑 넘게 '거북선'이란 담배를 즐겨 피웠다. 폐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나 수술을 권유한 이도 있었지만, 본인은 83세인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 수술과 치료를 포기하고 고통을 견디다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청준 선생도 하루에 세 갑쯤 담배를 피운 골초였는데, 역시 폐암으로 저세상으로 떠났다.
담배는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나는 폐암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하직한 몇 사람을 보았다. 어느 문인의 장례식장에서 유명한 의사를 만나 폐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폐암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암이라고 그 의사는 말했다. 암세포가 조직을 깊숙이 침범하면 칼로 찌르듯 하고 불에 태우는 것처럼 날카롭게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암의 통증은 이른바 마약 진통제로 덜 아프게 해줄 수 있는데, 폐암은 숨을 못 쉬게 되니까, 그 숨을 못 쉬는 고통은 아직 해결할 수 있는 의학적인 수단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냥 앉아서 숨을 색색, 갈비뼈 사이로 그 사이가 움푹움푹 파일 정도로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게 되는데, 이것은 정말 백약이 무효라고 했다. 아주 실감 나게 끔찍한 그 이야기를 듣고서도 담배를 끊을 자신이 없었다.
2000년대 초순, 담뱃값 인상이 거론될 때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들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담뱃값 인상안 규탄 집회'를 갖기도 했다. '생업인 원고 집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창작 아이디어의 유일한 벗인 담뱃값마저 대폭 올리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이유 있는 항의였다.
나도 글을 쓴답시고 줄기차게 담배를 피웠다. 글이 막힐 때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손에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였는데, 많을 때는 하루에 세 갑 정도를 불살랐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순간 담배부터 찾았다. 죽음을 앞당기는 키스, 죽음의 연기인 담배는 뜨겁게 불꽃을 피우는 순간 재가 되는, 쾌락과 위험이라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호기심에서 골초로많은 사람이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골초가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담배가 주는 순간적 쾌락과 덧없는 심리적 위안의 대가는 끔찍하고 치명적이다. 담배에 든 599종의 첨가제들이 타면서 벤젠·포름알데히드 등 69종의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흡연은 심장병과 뇌졸중 등 심혈관계 질환은 물론 각종 암의 주된 원인이다.
온갖 질병의 근원임에도 끊기 어려운 중독성이 가장 큰 해악이다. 담배의 독특한 습관성을 자극하는 것은 니코틴의 향기와 맛이다. 니코틴에 중독된 뇌에서 니코틴이 부족할 때 나오는 물질(CRF)도 금단현상을 유발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빈속이라도 담배를 물어야 하는 것은 밤새 떨어진 혈중 니코틴을 급히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담배가 없다면 재떨이라도 뒤져서 꽁초에 불을 붙여야 했다.
흔히 담배를 백해무익하다고 말하는데, 과연 담배를 알고서 하는 말일까? 세상에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가 하는 말을 듣고 앵무새처럼 옮기는 사람이 많다. 나는 오랜 세월 오매불망 담배를 짝사랑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나에게 담배는 '정신적 비타민'이었고 '힘든 삶에 위안을 준 친구'였다. 사실 스트레스 많은 인생살이에 담배 한 모금만큼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별로 없었다. 육체 건강에는 해롭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사람이 오래만 사는 것이 꼭 좋은 것인가? 육체적 건강보다 정신적 만족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부자들이야 좋은 세상 누리면서 오래오래 살고 싶겠지만, 오래 사는 것이 지겹고 오욕인 계층도 있는 것이다. 삶이 힘들고 팍팍한 사람들은 담배 한 개비 피우면서 많은 것을 녹여 보낸다.
참아봤다, 난리가 났다... "어서 담배를 피워!"
내가 담배를 끊게 된 동기는 치과 치료 때문이다. 치아 상태가 안 좋아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야 했던 10개월가량 매주 두 차례씩 치과에 가야 했는데, 담배 냄새 풍기면서 치료용 의자에 앉아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치과 치료가 끝날 때까지만 담배를 참아보기로 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40년 가까이 줄기차게 피워왔던 담배를 억지로 참는 것은 고역이었다. 처음에는 하루를 버티는 것이 어려웠다. '내일부터 하자' 하면서 여러 번 금연 결심을 깼다. 그러다가 작심삼일(作心三日)마저 채우지 못하는 내 의지가 한심하여 최소한 사흘은 참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독하게 중독된 니코틴이 몸 안에서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다. 내 입속의 혀끝이 내 몸이 아닌 마치 외부에서 나를 어둠 속으로 유혹하기 위해서 들어온 뱀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강한 흡연 욕구를 받았다. "어서 담배를 피워!" 하고 명령하는 환청이 천둥소리처럼 귀청을 때렸다. 그래도 참았다. 금단증상으로 인해 식은땀까지 흘렸지만 하루, 이틀, 사흘을 버텼더니 참았던 사흘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일주일로 기한을 늘리면서 그날그날 담뱃값으로 나갈 돈을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한 달로 기한을 연장했다. 한 달 동안 10만 원 정도의 담뱃값을 모아 각시에게 줄 선물을 샀다. 각시는 감격하여 눈물까지 보였다. 그러면서 금연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100일을 참으니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불쑥불쑥 솟구치는 흡연 충동은 집요하고도 강한 적이었다. 깨어 있는 동안 꾹꾹 참았더니 꿈속에서 나를 공격했다. 소위 '흡연몽'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다가,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쉰 적도 몇 번이나 된다. 담배를 안 피운 지 3년이 지날 때까지 담배를 맛있게 피우다가 진저리를 치면서 깨어나곤 했다.
마크 트웨인은 "금연만큼 쉬운 일은 없다. 난 백번도 넘게 해봤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도 담배를 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모양이다. 금연을 결심하고 작심삼일로 끝내기를 백번쯤 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독된 담배를 끊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금연에 성공했다. 아이젠하워는 하루에 60개비 이상 굴뚝처럼 피워대던 골초였다. 컬럼비아대학교 총장으로 있을 때 갑자기 맥박이 빨라져 의사의 권고로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담배를 끊고 일주일 만에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후 다시는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집무실 탁자 위에서 담배와 재떨이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다. 주변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금연을 했다면서 왜 담배를 치우지 않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이 집무실에서 흡연하는 것이 거슬리지 않습니까?" 이 말에 빙그레 웃으며 "오랫동안 좋아했던 담배를 매정하게 내치지 않고 눈으로나마 즐기는 것일세. 나는 이제 담배를 끊을 만한 의지력이 있지만 흡연자들은 그런 의지력이 없지 않은가? 안타까운 일일세"라고 말했다.
금연 시작 후 찾아오는 '결정적 고비'내 경험으로 볼 때, 금연은 결심한 초기가 중요하다. 금연을 시작하고 사흘에서 열흘까지가 가장 인내심이 필요했다. 예민해지고 짜증을 내는 등 금단증상도 이때 심하게 나타났다. 금단증상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물을 마시고 은단을 먹었다. 운동을 하든지 껌을 씹든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슬기롭게 그 시기를 넘겨야 한다. 고비는 수없이 찾아오지만,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의지력도 단단해지고 묘한 자부심도 생긴다.
담배를 끊으니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담뱃값이 절약되고, 내가 거주하는 실내 공기가 달라졌다. 몸, 특히 손끝에서 담배 냄새가 나질 않으니깐 참 상쾌하다. 가래가 서서히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았다. 칫솔질하면서 늘 느꼈던 구역질할 것 같은 느낌이 없어졌고 폐활량이 늘어난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담배가 떨어졌을 때나 담배를 못 피우는 비행기, 기차 등에서 금단 증세로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되었다. 자신감과 인내심이 강해졌다. '담배도 끊었는데' 하는 자부심이 발휘하는 힘은 적지 않다.
이제는 흡연자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담배에 중독되어 시키는 대로 질질 끌려다니고 있는 것인데, 그 중독을 방조하고 조장까지 한 것이 바로 국가였다. 중국 공산당은 궐련 흡연과 담배 산업을 장려했다. 마오 시대 궐련은 마오의 붉은 소책자와 함께 결혼 선물이었고, 덩샤오핑은 그의 장수 비결 10가지 중 하나로 담배를 꼽았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담배는 1980년대 중반까지 전매사업이었다. 국가가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특정한 종류의 물품에 대한 판매를 법률상 독점하는 것을 전매라고 한다. 지금도 흡연자의 지갑에 빨대를 꽂고 각종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담배에 붙는 세금에는 담배소비세, 교육세, 폐기물부담금, 국민건강증진기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 담뱃값 중의 무려 4분의 3이 세금이다. 담배로 가장 많은 수입을 챙기는 것은 담배회사나 재배 농가가 아니라 엄청난 세금을 거둬들이는 정부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세수 확보를 확신하는 구석은 가증스럽게도 담배의 중독성이다. 일단 중독이 되면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미끼로 암암리에 배를 불리는 악독 마약상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세계 각국의 흡연 반대자들이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은 흡연자가 아니라 자국 정부이다. 우선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한 담배를 마약류로 지정하여 상점에서 못 팔게 하면 된다. 그런데 구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방관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생각하여 흡연율을 낮추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가장 중요할 텐데, 정부가 그렇게 할 리는 없다. 담배는 가장 손쉽게 세금을 거둘 수 있는 품목인 것이다.
오늘날의 금연 열풍은 세계적 현상이다. 곳곳이 금연 빌딩이고 금연 구역이다. 전 세계적으로 담배의 해로움이 강조되면서 나라별로 금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집단 소송도 활발하여 개인과 유가족이 배상을 받아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애연가의 흡연권은 인정하는 게 옳지만...
담배를 끊는 것이 건강에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건강에 안 좋은 것이 어디 담배뿐이겠는가. 술도 해롭고 커피나 설탕, 소금 등도 지나치면 해롭다. 기호식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대부분 건강에는 안 좋고 중독성이 있다. 따지고 보면 건강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지 남이 참견하거나 국가가 나설 일은 아니다. 아직도 국민을 계몽의 대상, 즉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시대의 흐름이 흡연자를 자꾸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흡연은 엄연히 합법이다. 흡연이 합법인 이상 흡연자의 건강과 인권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비흡연자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라면 애연가의 흡연권은 인정하는 것이 옳다.
언젠가 담배 연기 자욱한 공항 흡연실에 우글우글 모여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을 본 적이 있다. 비싼 세금을 내면서 참담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흡연자들에게 걷은 세금을 엉뚱한 곳에 쓰지 말고 연기가 쏙쏙 잘 빠지는 제대로 된 흡연 부스를 만들어줘야 한다. 흡연 구역이 없으니까 길거리에서 피우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담배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 속에도 정치적인 이유와 복잡한 인간 심리가 미묘하게 맞물려 있다. 자본을 추구하는 세력의 영악함과 수명 단축을 뻔히 알면서도 열심히 피워대는 인간의 무모함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이다. 지혜로운 것 같으면서도 어리석고, 잘 다듬어져 있는 듯해도 엉성한 구석이 많다. 나쁘고 안 좋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 하는 일이 있다. 이래저래 흡연자들의 부담만 커졌다. 이제 흡연자의 시대는 갔고, 흡연의 결과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이참에 독하게 마음먹고 담배를 끊는 것은 어떨까? 중독에서 벗어나면 담배 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