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여러 특징을 끌어모아 풍성하고 호화롭게 꾸민 베르사유 궁전 스타일은 프랑스식의 또 다른 바로크 모습이었다. 하지만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경향은 조금 더 가볍고 밝은 스타일로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러한 변화된 양식을 로코코라고 부르는데 여전히 바로크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앙투안 와토로부터 시작된 로코코 스타일은 일상의 평화롭고 한가한 순간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즐겁게 웃고 떠드는 희희낙락의 순간이다.
햇빛이 충만한 야외의 정원에서 젊은 남녀들이 서로 농담하고 희롱하며 사랑의 분위기에 취한 듯한 이러한 모습은 확실히 기존의 그림과는 달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화풍은 당시 아카데미에 의해 '페트 갈랑트'(fetes galantes), 즉 우아한 축제, 사랑의 연회로 불렸다.
'사랑의 섬으로의 순례'는 즐겁고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자 모인 남녀들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조각이 놓여 있고 큐피드가 날아다니는 꿈과 같은 공간에서 한껏 흥에 취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그려졌는데 인물이나, 내용, 구도, 색깔 등 그림의 그 어느 요소도 부각됨이 없이 그저 흥겹고 들뜬 분위기만이 전달되어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스타일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에 가서는 한층 더 밝고 가벼워졌다. 그 어떤 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완벽한 자유분방함이다. 그의 대표작 '그네'는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남녀의 다정한 모습을 그린 것 같다. 하지만 치마 속이 들여다 보이는 그네 아래에 누운 남자나 남자를 향해 구두를 벗어 던지는 여자나 남녀간 희롱의 수준이 그리 도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림을 의뢰한 사람은 궁정의 한 신사라고 전해지는데 그와 정부 사이의 애정행각을 그리되 그네를 타고 있는 정부와 그네를 밀어주는 주교, 그리고 정부의 다리가 보이는 곳에 자신을 위치시켜 달라는 꽤 구체적인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프라고나르는 이를 살짝 비틀어 유머를 가미하면서 동시에 도덕적인 요소도 집어넣었다. 그네를 미는 사람을 주교가 아닌 나이 많은 남편(남편의 시야에서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으로 바꾸었고, 오른쪽 아래에 충실을 상징하는 개가 유희하는 여자를 향해 사납게 짖고 있는데 큐피드 상은 개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이 입에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코코 양식은 점점 시들어가고 대신 그 자리에 신고전주의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과학의 발견과 이성에 기반한 철학이 나타나면서 지식을 통한 진보에 대한 믿음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폼페이 등 고대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고대 문물에 대한 관심과 탐구가 이어졌는데 특히 고대 시대의 정신적 부활, 즉 이상의 추구와 시민 정신의 구현, 영웅적 드라마의 재현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그림 속에 질서와 명료함을 불어넣고 고전적인 요소를 담고자 한 신고전주의의 발달로 설명된다. 로마의 고대 유적지나 고대 건축물 또는 예술품을 배경으로 하는 풍경화나 인물화 등이 그려지거나 역사나 고대 문학, 신화의 장면을 영웅적으로 그린 그림들이 주로 나타났다.
프랑스의 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대표적인데 그의 초기작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신고전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든 군더더기적 요소들은 배제한 채 선명한 구도와 색의 단순한 처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분위기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투적인 자세와 칼을 향해 뻗친 손, 빛을 통해 어렴풋이 드러난 확고한 표정은 로마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전투에 임하는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결연한 의지를 잘 드러낸다.
오른쪽에서 비통함에 빠진 여인들의 모습은 남편 또는 오빠를 전쟁터에 보내는 여성의 슬픔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투의 상대가 또한 자신들의 오빠 또는 약혼녀라는 얽히고 설킨 비극적 운명, 누구를 응원할 수도 없고 결과가 어떠하든 자신에게 소중한 누군가를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고통을 표현한다.
이 그림을 통해 다비드는 정치적 구호와도 같은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데, 공교롭게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몇 해 전에 그려진 이유로 마치 혁명적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한 의도로 그려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제국주의가 들어서자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권위를 드높이는 그림들을 그렸다.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들의 조각상이나 그림이 그들의 용맹함과 비범함, 신적인 존재로서의 신비로움을 부각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듯이 나폴레옹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고전적 요소를 차용하는 신고전주의는 잘 들어맞았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마치 고대 로마의 황제를 연상시키는 영웅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휘날리는 갈기와 잔뜩 흥분한 모습의 말과는 달리 나폴레옹의 모습은 차분하고 단호하기만 한데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알프스 너머를 가리키는 오른손과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자세는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다.
권력과 웅장함을 보여주기 위한 이상적인 모습의 구현은 고대 로마 제국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다비드는 이러한 의도를 위해 누구보다도 신고전주의의 특징을 정확하게 차용했다. 다소 인위적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진 탓에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이 또한 그림이 의도한 바와 잘 들어맞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