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군산미군기지투쟁 함께 한 20년, 함께 가자!' 행사가 있었다. 군산기지에는 미 7공군 예하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 중이다. 참석을 위해 도착한 미군기지 옆 하제마을은 황량했다. 2000여 가구가 살던 마을엔 이제 20여 가구 정도가 남아있다고 했다. 탄약고 건설을 위해 마을 부지가 수용되었고, 탄약고 안전관리 기준에 의해 주민들이 더 이상 마을에 살지 못하게 된 때문이다. 마을에 도착하자 철거용역이 이미 비어버린 집들을 허물고 있었다. 미군기지에는 격납고를 짓기 위한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날은 무척 더웠다. 먼지가 날리는 그 폐허 같은 공간 속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며칠 전인 5월 31일에는 미 태평양 사령관 이-취임식이 있었다. 이-취임식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태평양 사령부라는 이름을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바꾼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 말부터 트럼프 정부가 언급하기 시작한 인도-태평양 전략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모든 행보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이다. 평택과 군산, 그리고 강정을 잇는 서해안 전략벨트 또한 대중국 견제 전략의 일부다.
올해 초 발표된 2018년 미국의 국방전략에도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자임이 노골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동맹과 파트너쉽 확대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실제 남중국해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항행의 자유 작전과 대만, 필리핀, 인도 등 인접 국가와의 군사관계 공고화로 실제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영국 등 주도로 이뤄지는 세계 최대 다국적 해군 훈련인 림팩 훈련에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군사화에 대한 첫 조처로 중국 초청을 취소하기도 했다. 중국 또한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 기지를 배치하고 확장하며 점점 더 군사지배력을 늘려가고 있으며, 미국의 견제활동에 대응해 남중국해에 폭격기를 배치하고 항모 전단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모든 행보를 정당화하는 것은 '힘을 통한 평화'라는 관점이다(실제로 미 국방전략에는 '힘을 통한 평화'라는 말이 적혀 있다). '힘을 통한 평화'라는 말은 거대하고 추상적이다. 전략적 경쟁, 군사적 우위, 동맹 강화 따위의 개념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세히 파악하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 개념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논의되고 결정된다. 일반 사람이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결정으로 인한 피해뿐이다. 강제적인 토지 수용, 그를 위한 공권력의 탄압, 기지 운용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소음 피해 등의 각종 사고.
피해를 겪으며 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자발적인 풀뿌리 운동으로서의 비폭력적인 저항뿐이다. 군산에서는 이십 년이었다. 강정, 소성리, 평택 등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과 오키나와, 필리핀과 대만, 멀게는 괌과 하와이 등에서도 길게는 수십 년에서 짧게는 몇 년까지의 저항은 멈추지 않고 있다. '힘을 통한 평화'는 저항을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하려 하지만, 저항이야말로 가장 구체적인 삶에 뿌리내리고 있다.
물론 저항은 무력하다. 군산미군기지투쟁 이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어쩌면 그 무력한 세월이야말로 저항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었음을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군산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노래 공연이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 가사를 개사해 위인들 대신 그간 군산미군기지투쟁에 함게 해 온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넣은 노래였다. 역사는 흐른다, 라는 가사는 일 년이 흐르고 십 년이 흐르고 십삼 년이 흐르고 이십 년이 흘렀다는 가사로 바뀌었다. 노래는 4절까지 꽉 채워서 불렸다. 지난 이십 년을 겪은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말해졌다. 그 모든 이름을 들으며 이십 년 동안의 저항은 절대 비현실적인 것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군대를 보는 시민의 눈,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주간 뉴스레터 watch M 제143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