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어요. 치안 걱정이 없으면서도 값이 싼 곳을 찾느라 기숙사, 하숙집, 원룸, 고시원, 옥탑방 등 온갖 곳을 옮겨 다녔죠. 임대차 종류별로도 월세, 반전세, 깔세(일정 기간 월세를 한꺼번에 미리 내는 것) 등을 다 경험했고요." 경기도에 있는 집에서 서울까지 통학이 어려워 대학 시절 '1인 가구' 생활을 시작한 이승주(32) <뉴시스> 기자는 스물아홉에 입사한 후에도 '방 한 칸'을 확보하기 위해 동동걸음을 쳐야 했다. 수습을 마친 2015년 3월 산업부 부동산팀에 배치됐는데, 자신의 그 파란만장한 '주거 전쟁'은 부동산 기사를 쓰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론이 다루는 부동산 기사는 강남 재건축이나 아파트 분양 같은 '재테크' 혹은 '투자' 차원의 정보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강남 재건축이나 아파트 분양만 다루는 언론
이 기자가 지난 4월 <토익보다 부동산>이란 책을 낸 것은 언론이 외면하는 20~30대 청년의 주거난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기자는 "원룸이나 고시원 임대료 정보, 빌라의 전·월세 동향, 수도권 외곽의 소형아파트 시세 등 청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신문방송이 다루지 않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언론이 2030을 위한 부동산 기사를 쓰지 않는 이유를 "돈이 되지 않아서"라고 진단한 이 기자는 다른 기사를 쓰는 틈틈이 책에 담을 정보를 취재해 나갔다.
첫 원고는 지금과 달랐다. 20대가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입문할 때 알아야 할 지식, 장차 내 집 마련 등에 필요한 정보 등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출판사마다 "20~30대는 부동산에 관심도 없는데 그런 책을 왜 내느냐"며 퇴짜를 놓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취업 준비 등에 바쁘지, 부동산에 관심 가질 시간은 없다는 또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듭된 취업실패와 '주거빈곤기'를 거친 자신의 경험을 절절히 담아 '왜 청년이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가'를 역설하는 부분을 보강했다. <토익보다 부동산>은 그렇게 탄생했다.
자식이 '스펙' 쌓는 동안 부모도 가난해져 "청년을 주요 독자로 생각하고 책을 썼지만 부모 세대도 일어 볼 만한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취업난, 가난, 하우스푸어의 설움은 2030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청년세대가 스펙을 쌓는 동안 이를 뒷바라지하던 부모세대 역시 가난해졌거든요."그런 의미에서 이 기자는 책 곳곳에 청년 세대와 중장년 세대에게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용적 정보를 촘촘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전세금 반환보증' 등 세입자라면 모두 알아야 할 제도와 최근 달라진 부동산 정책에 대한 해설 등을 친절하게 곁들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최저주거기준 미달과 지나친 임대료 부담을 모두 경험한 집단 가운데 청년 단독가구가 46.8%를 차지했다. 혼자 사는 청년들의 주거 빈곤이 특히 심각함을 보여주는 숫자다. 정부와 많은 전문가들은 '집값 잡기'와 '임대주택 건설'을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지난 2016년부터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 내몰린 청년에게 임대주택을 보급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영등포구 당산동, 성동구 성내동 등 선정부지 인근 주민과 원룸 업자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일부 주민들은 집값이 폭락하고 교통이 혼잡해지며 우범지역이 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이 기자는 "(이런 상황에 맞서)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주거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알고 요구해야 청년을 위한 정책이 나오기 때문에 부동산 문제를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당장 토익 공부를 그만두고 부동산을 공부하라는 게 아니라 부동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을 위한 기사도 쓸 생각
이 기자는 앞으로 어떤 부서에서 일하든 2030을 위한 경제기사를 많이 쓸 생각이며, 특히 신혼부부들의 내 집 마련에 관한 이야기를 꼭 쓰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신혼부부들이 전세를 사는 게 좋을지 (무리해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막상 도움 되는 기사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또래 청년세대를 향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집을 사라, 전세금을 마련해라 하는 얘기가 아니라 부동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나중에 실제로 집을 구할 때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리 알고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격차가 너무 커지고 그게 양극화로 이어집니다. (토익에만 매달리지 말고) 부동산도 미리 좀 공부를 하자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