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현장 특별취재팀] 안홍기(팀장), 유성애, 유성호(사진)싱가포르 현지시각으로 10일 오후 3시 40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차가 인공기와 국무위원장기를 휘날리며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 하는 탄성이 터졌다. 김 위원장을 호위하는 경호대가 호텔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은 매우 빠르고도 절도가 있어, 구경꾼들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날 오후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 도착,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은 언론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취재진들과 함께 무더위 속에서 김 위원장을 기다렸다. 김 위원장이 탄 차가 지나간 건 한 순간이었지만 구경꾼들은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사진과 영상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차로변과 김 위원장의 동선을 따러 쳐진 가림막 때문에 결국 김 위원장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김 위원장이 호텔에 들어가고 더 이상 북한 대표단이 탄 차들도 보이지 않자, 구경꾼들은 다시 각자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들이 길을 메우는 바람에 세인트레지스호텔 건너편 인도는 한 때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북한에선 하루 한끼만 먹지 않나?"..."최고의 악당들이 모였다"
기자와 함께 김 위원장의 등장을 기다린 호주인 남성은 싱가포르에 여행을 와 있는 동안 이런 큰 이벤트가 열려 구경을 왔다고 했다. 그는 "매일 뉴스에 나오는 김정은이 나와 같은 장소에 있다는데 안 와볼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당신이 북한 사람이 아니란 건 알겠다. 그들은 당신처럼 크지 않다"고 말했다. 기자가 "내 체격이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저 사람들이 나보다 크다"라면서 호텔 앞에 나와 있는 북측 경호 관계자들을 가리켰다. 그는 "저들은 잘 먹는 사람들이다. 북한 사람들은 하루에 한끼만 먹지 않느냐. BBC에서 봤는데 영양실조가 매우 넓게 퍼져서 한국 사람들이 훨씬 크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기자는 "그건 너무 과장됐다"고 답했다.
이 호주 남성은 "놀라운 것은 한국 사람들이 김정은과 트럼프의 대화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라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기자의 생각을 말했더니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다.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중국인 여성도 30분 넘게 같은 장소에서 김 위원장의 등장을 기다렸다. 온 가족이 한동안 싱가포르에 체류하고 있는데 주말이라 나들이를 나왔다가 마침 근처를 지나는 길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나는 김정은이라는 사람에 대해선 아무 의견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 됐다"면서 "중국 사람들은 북한을 친숙하게 말할 때도 있고, 뭔가 귀찮은 존재처럼 말할 때도 있다. 난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사람도 만났다. 그는 김 위원장이 호텔 안으로 들어가고 구경꾼들이 흩어질 때쯤 현장에 도착해 "끝났나? 그가 들어갔나?"를 연발하고 있었다. 연세가 지긋이 들어보이는 그도 여행자였다. 그는 "내가 있을 때에 역사적인 이벤트가 열린다니 관심이 간다"며 자신이 세인트레지스 호텔 앞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이 노인은 "나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세계 최고의 악당 두 명이 싱가포르에 모였다. 그 두 사람이 세계의 평화를 논의한다는 것이 매우 재미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날 세인트레지스호텔 맞은편 인도의 구경꾼들 중 그의 등장에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무더위 속에서 그의 등장을 기다린 이들이 그만큼 있었다는 것은 김 위원장의 행보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얘기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