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국 지엠(GM) 군산 공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본사 방침에 따라 지난달 31일 문을 닫은 것. 2~3년 전부터 계획을 하나씩 흘려오던 지엠 본사는 지난 2월 13일 군산 공장을 5월까지 폐쇄하겠다고 전격 발표한다. 그 후 한국 정부와 노동자를 상대로 협상을 벌여온 지엠은 부평과 창원 공장은 살리고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지엠 사태'가 열흘을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후 처리 방향은 불투명한 상태다. 전북도와 군산시, 그리고 시민 다수가 자동차 관련 부품 업체 유치를 희망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움직임이나 제의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가운데 군산은 작년 여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에 지엠 사태까지 겹치면서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시민의 마음 저버린 채 떠난 지엠
지난 9일(토) 지엠 군산공장이 위치한 군산 자유무역지역(오식도동)을 찾았다. 오식도동으로 향하는 도로가 황량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각종 트레일러와 승용차를 가득 실은 특장차가 질주해야 할 도로가 텅 빈 활주로를 연상시킨다. 씨줄처럼 복잡하게 엉킨 전깃줄은 상심이 큰 군산 시민의 마음을, 붉은색 신호등은 위기에 처한 지역경제를 반영하는 듯하다.
황량하기는 지엠 공장 입구도 마찬가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해외 '먹튀 자본'을 규탄하는 궐기대회와 기자회견 등으로 왁자지껄했던 이곳은 시민단체 회원도, 노동자도, 방문객도 사람의 발길이 모두 끊긴 상태다. 경비실 옆 넓은 주차장도 관객이 모두 빠져나간 야구장처럼 썰렁하다. 주변 그 어디에서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지엠 군산공장 역사는 1997년 4월 21일, 당시 고건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가진 대우자동차에서 시작됐다. 당시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자동화 설비와 생산관리 시스템을 갖춘 대우자동차는 대지 106만 평에 승용차공장(연산 30만 대)과 대형 상용차공장(연산 2만 대) 외에 주행시험장, 수출전용부두, 대형 출고장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지역민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가득 안겨주며 출발한 대우자동차는 3년 후 부도로 무너졌고, 미국 제너럴 모터스(GM) 자동차가 2002년 인수한다. 오늘의 '한국 지엠'이다. 그 후 지엠은 법인세, 소득세 면제 등 온갖 특혜 속에 성장해왔다. 내수 부진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시민이 지엠차 사주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자기 일처럼 도왔다. 그러나 지엠은 시민의 마음을 저버린 채 군산을 떠났다.
지엠 차 애용 운동 펼쳤으나 돌아온 건 배신
군산 시청 주민생활지원국장으로 2009년 정년퇴임을 한 이종예(69)씨는 "대우가 한국 지엠으로 이름이 바뀐 후 공장 가동이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시민과 지자체가 앞장서 승용차 사주기 운동을 벌였다"라면서 "그럼에도 군산공장을 '패싱'한 채 부평과 창원만 살려낸 것은 지엠이 군산 시민을 무시하고 배신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군산 경제가 무척 어려웠던 4년 전(2014년) 봄으로 기억합니다. 군산시가 예술의 전당 야외 광장에서 '지엠 차 애용 범시민 결의대회'를 열었죠. 그때 지엠 군산공장 발전을 위한 범시민 대책위원회가 출범하기도 했어요. 매월 지엠 차 판매 조건을 시청 게시판에 게시하고, 새로운 모델을 시청 1층 로비에 전시하는 등 구매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군산시는 2007년부터 '내 고장 상품 팔아주기 운동(Buy 군산)'을 추진해왔습니다.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함이었죠. 지엠 차 사주기 운동 역시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 속에 해마다 열리다시피 했죠. 그때마다 많은 사람이 지엠 차 타기 운동에 동참하자고 호소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들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군산 사람들은 회사명이 '대우'에서 '지엠'으로 바뀐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도 '지엠 대우'라 부른다. 그뿐 아니다. 지엠 본사가 미국임에도 주민 대부분은 향토기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공장 폐쇄 발표 후 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의 '200만 도민의 힘을 모아 향토기업 한국GM을 살려내자!'는 구호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만큼 정을 많이 쏟았다는 얘기다.
원룸 건물 세 동 가진 임대업자, 공사판 노동자로 변신
지엠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했던 오식도동으로 방향을 잡았다.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까지 떠난 동네는 건물 곳곳에 상가임대 안내문과 원룸 임대 현수막이 나부낀다. 피해의식 때문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대화 자체를 꺼린다. 시원한 가로수 그늘에서 환담을 하는 남자 네댓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차를 받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개인택시 기사들이었다.
개인택시 경력 26년의 여동수(47)씨는 "여기 주민의 80%는 군산조선소와 지엠 대우하고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전에는 시내 여관을 숙소로 사용했는데 이곳에 원룸이 활성화되면서 모두 들어왔죠. 그런디 군산조선소와 지엠 대우가 나가면서 빈집이 많아졌어요. 식당들도 나가고, 초토화됐죠. 우리는 일하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요"라며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수입도 절반 정도 줄었어요. 한 달에 300만 원 정도는 벌었는디 요즘은 150만 원 벌기도 어려우니까요. 기다리는 손님은 발길이 끊기고, 언론사 기자들만 와서 어렵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더 죽은 유령의 도시가 돼버렸어요.(한숨) 사실 보시다시피 비어있는 가게도 많죠. 저쪽 미용실은 계약이 끝나는 7월까지만 하고 그만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입장에서는 택시 기본요금이나 조금 올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전직 공무원으로 택시 경력 20년의 배해수(71)씨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타지로 떠나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어렵게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한 견해를 내비쳤다.
"이곳에는 동남아, 우즈베키스탄 등 외국인 근로자도 많아요. 그런디 작년부터 날마다 보따리를 싸가지고 떠나더라고요. 일자리가 없으니까 떠나겠죠. 갈 곳이 없어 눌러앉은 사람도 많습니다. 매일 새벽 6시면 이곳으로 출근하는데 저기 인력관리 사무소에 사람들이 20~30명 정도가 나래비를 서 있어요. 하루 일당이라도 벌려고 기다리는 거죠. 그나마 일을 나가면 다행이지만 탈락하면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갑니다. 참 딱하죠." 최아무개씨(60대)는 원룸 세 동을 보유하고 임대업을 하고 있지만 매일 새벽 인력시장에 나간다며 하소연. 작년 초까지만 해도 원룸 세 동 모두 70~80% 정도 찼으나 그사이 모두 빠져나가고 요즘엔 20% 정도 차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생활도 하고, 수도세와 전기세를 내려면 공사판으로 막일이라도 하러 다녀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어 "2~3년 전에는 원룸 한 동에 5억씩 했는데 요즘엔 3억에도 거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침체된 경제, 탈출구 찾을 지원책 모색해야
"군산 경제는 지금 최악입니다. 이명박이 4대강 사업에 20조 원 넘게 쏟아부었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눈 딱 감고 '올인'해주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절차 따지면서 타협으로 경제를 살리려고 하면 '백년하청'이 되죠. 군산이 너무 오랫동안 중앙 정부로부터 따돌림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절차적으로는 군산 경제 살려내기 어렵다고 봅니다."식당에서 만난 40대 남자의 푸념이다. 그는 이름 밝히기를 꺼리며 "차라리 군산이 아프리카 어느 밀림 지역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군산이 밀림이었다면 진즉 관광지로 정해져 개발에 착수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푸념에서 소외감으로 파생된 마음의 응어리가 뭉쳐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앞두고 정부는 군산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오는 7월부터는 군산지역 실직자나 실직자 가족 5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희망 근로 지원사업'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희망근로사업은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므로 임시변통의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몇 년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군산 경제. 시급히 해결책을 모색해야 함에도 악화일로를 향해 치닫는 모습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같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동병상련'의 마음이랄까. 식당에서 만난 40대 남성의 푸념 한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군산 경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눈 딱 감고 '올인'해줘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