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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미화된 교실 벽면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철학자가 쓴 명구가 있었다. 온갖 좋은 말만을 떼어내 부착한 교실 벽면은 한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게 차단 됐다. 마치 세계에서 잘생기고 예쁘다고 평가 받은 눈코입을 따로 떼서 붙인 얼굴이 교실이었다. 다 합쳐 놓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못난 얼굴이 보였다.

교실은 뭘까. 학생들을 포함한 교실 구성원은 어디를 향해 돛을 펼쳤는가. 시무룩하게 책상에 손을 얹고 입을 다문 아이들은 피곤함과 무기력함이 빈번한 갈등을 일으키며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교실에서 창의적인 생각은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 외에는 내 삶과 관련된 성찰은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물어본 수업은 그저 시험과는 무관한 시간 때우기였다. 그외에 큰 의미가 생성되지 않았다. 선생도 매번 행하는 동기부여에 피곤해하고 아이들은 처음부터 핏기 없는 하루가 이어지는 일상이었다.

김선, '교육의 차이'
 김선, '교육의 차이'
ⓒ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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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발이 닿지 않는 공부였다. 그것을 공부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까를 묻는 책이 시중에 나왔다. 김선이 쓴 <교육의 차이>였다. 저자는 단일화된 기준과 지식으로 한 나라나 지역사회 그리고 가정 교육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교육은 누가 받는가. 무엇을 위해 받는가.

"서울대를 없앤다고 해서, 자사고나 특목고를 없앤다고 해서 교육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학교나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인재로 자라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과 토론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공론화 작업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육과 철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작게나마 이 책이 새로운 교육에 대한 논의를 위한 '이야깃거리' 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8쪽)


산업화 시대에 맞춘 노동자를 위한 교육 틀은 차츰차츰 무너졌다. 여전히 학교 시간표는 교육 철학에 대해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몇몇 인재가 해외에서 경험하거나 좋다고 한 교육제도를 수입했다.

교과서는 두꺼워지거나 잘게 쪼개 과목 수가 늘어난 것 외에 현장에서 느끼는 교육은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기 어려웠다. 무엇 카더라 제도가 아니라, 버젓이 실내화를 신고 학교를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논의 돼야 했다.

교육 목표가 두리뭉실했다.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는 탐구 과정이 아니라,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는 문제 풀이와 암기가 전부인 듯 우리 교육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저자 김선은 옥스퍼드대 출신 비교교육학 박사답게 그동안 우리가 좋다고 한 독일의 마이스터고, 유태인의 하브루타 교육, 미국 교육이 갖는 혁신성, 싱가포르 교육, 핀란드 교육이 갖는 함의성에 주목하며 역사, 현장 그리고 비전을 비교했다.

교육은 쇼핑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제도를 수입하여 적용하기 전에, 우리 향토에 맞는 교육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함을 저자는 주장했다.

"한국에서 청년들이 공무원과 같은 편안한 직업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아. 투자와 기회가 없으니깐 실패하게 되면 너무 많은 것을 잃을까 두려운 거지. 그래서 편안함과 안정을 사람들이 추구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다시 청년들에게 도전 의식을 잃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되고 말이야." (125쪽)


최근 고등학생을 상대로 '글쓰기-자기소개서' 교육을 지역 도서관과 연계해 진행하고 있다. 전체 10차시 교육진행 과정 중 절반 가량 진행했다. 꿈은 직업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꿈은 내가 원하는 것 중에서 내 삶의 질이나 격을 수준 높게 올릴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진도 수업이 아닌 진로 탐색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꿈에 대해 한번쯤 깊이 있게 생각하기를 바랐다.

처음에 아이들은 꿈에 대해 모른다. 혹은 부모님의 권유로 고위 공무원직, 때론 교사를 선택했다. 첫 발언 이후,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그 꿈에 대해 속성을 말하거나 글을 쓰게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들은 꿈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그 첫 번째로 아이들은 '직업'이 갖는 사회적 맥락이나 의미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아이들은 '내가 원하는 무엇'이 아닌 언제나 타율성에 바탕을 둔 '누군가의 추천-부모, 교사'들이 한 말에 국한하여 꿈을 디자인 했다.

수없이 유튜브나 인터넷을 뒤지며 게임을 하거나 중요 자료를 검색하면서 정작 중요한 자신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볼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각을 검색'하는 과정이 지루하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답을 알려주라는 눈치였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삶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처음이라서 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선택한 꿈은 '여행 가기'로 바뀌었다. 정말 여행을 가고 싶은 것이냐.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 여행을 가게 된다면 누구랑 가고 싶냐, 어디로 가고 싶냐 등 집요한 질문 공세를 일부러 계속했다. 여전히 과정이어서 최종 답은 될 수 없지만, 아이들은 교실을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자유를 느끼고 싶다는 말을 했다.

학교는 왜 다니는 걸까. 왜 학교는 다니면서 자유는 느낄 수 없는 것일까. 통제와 속박 그 속에 잠긴 무기력함 속에 소위 암기 머리 좋은 몇을 위해 수많은 학생은 계속 그들을 뒷받침하는 거름이 돼야 하는가.   

"교육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이다.…… 교육은 또한 다른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은 '되어 가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211~213쪽)


반문하면, 우리 사회 교육은 기회, 토론, 자유, 과정을 위해 그 많은 학습 시간 중에 몇 퍼센트를 소비하는가. 개별적 속도와 능력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저자의 핵심 주장은 명료했다. '우리교육 철학을 세우자'였다. 겉옷만 반듯한 기성품을 사용하지 말고 개별화된 맞춤형 옷이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그것을 위해 첫 번째 시도가 교육 대상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선 수행돼야 한다.

"학생이나 부모가 가난하다면 그 부분은 복지 정책에서 다루면 되는 것이고, 만약 학생의 가정이 보조금이 필요하다면 그 부분은 재정 정책에서 다루면 되는 거지. 교육은 학생의 학습 능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되는 거 아니야? 교육은 정치가 아니잖아."(152쪽)


교육의 차이

김선 지음, 혜화동(2018)


태그:#김선, #교육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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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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