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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를 아이들이 다 마시고 있어요. 엄마들 가슴이 찢어집니다"

서울 은평구 은평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학부모 박아무개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12일 오전, 학교 정문 바로 앞 공사장에서는 대형 굴착기가 흙을 퍼 담고 있었다. 등교 하는 아이들 옆으로는 대형 덤프트럭과 레미콘이 수시로 오갔다.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날렸다. 학교 건너편 공사장 소음에 트럭 엔진 소리까지 뒤섞여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았다.

서울 은평초등학교 주변은 공사판이었다. 학교 정문 앞은 응암 1·2구역, 후문 앞은 녹번 1·2구역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었다. 3년 전 공사가 시작된 이후 학교는 분진과 소음 피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울 은평초등학교 뒷편으로 보이는 재개발 공사 현장
 서울 은평초등학교 뒷편으로 보이는 재개발 공사 현장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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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초등학교 정문 건너편으로도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 은평초등학교 정문 건너편으로도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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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계자는 "비산먼지와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기 어렵다"며 "야외에서 체육 수업을 진행하는 게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또 "봄 운동회 때는 많은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은평초등학교 앞에 걸린 현수막
 서울 은평초등학교 앞에 걸린 현수막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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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은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학생들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학부모는 "비염, 천식 등을 앓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최근엔 결막염에 걸린 학생도 생겼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는 "보건실을 통해 자체 조사한 결과 호흡기 질환을 앓는 학생이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주변 공사장 4곳에서 날아오는 먼지로 창틀마다 뿌연 먼지가 가득 쌓였다
 주변 공사장 4곳에서 날아오는 먼지로 창틀마다 뿌연 먼지가 가득 쌓였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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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항의 방문에 뒤늦게 "시공사와 논의할 것"

문제가 심각해지자 학부모들은 지난 3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만들고 시공사와 은평구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비대위 측의 설명에 따르면, 건설사는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은평구로부터는 "행정 지도 및 단속을 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화가 난 학부모들이 먼지와 소음이 발생하는 현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답변은 비슷했다.

결국 화가 난 학부모 60여 명은 12일 오전 9시 은평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항의 방문을 진행했다. 이들은 "공사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안전을 위해 은평구가 대책 마련에 나서라는 건데 앵무새 같은 답변만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12일 오전 은평초등학교 학부모 60여 명이 은평구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12일 오전 은평초등학교 학부모 60여 명이 은평구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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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서울은평초등학교 학부모 60여 명은 은평구청을 항의 방문했다.
 12일 오전 서울은평초등학교 학부모 60여 명은 은평구청을 항의 방문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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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을 면담한 은평구 관계자는 "이번 주 내에 학교 주변 시공사 4곳의 공사 책임자들을 불러 분진과 소음 대책을 논의하고 비대위에 회의 결과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이런 간단한 얘기를 듣기까지 3개월 가까이 걸렸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학부모 60여 명이 우르르 찾아오니 이제야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건 은평구의 무책임한 행정을 여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공사 피해 많아지지만 법규 미흡

공사장 비산 먼지와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곳이 많지만 관련 법규는 이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비산 먼지 규정을 위반한 사업장에 내려지는 벌금은 최고 300만 원.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다 보니 시공사들이 규정을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는 게 공사 현장 관계자의 얘기다.

지난 7일 오전 8시쯤, 서울 은평초등학교 인근 재개발 공사 현장서 굴착기가 먼지 방지 대책 없이 작업하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8시쯤, 서울 은평초등학교 인근 재개발 공사 현장서 굴착기가 먼지 방지 대책 없이 작업하고 있다.
ⓒ 은평초 학부모비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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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법규도 문제다. 대기환경보전법에서는 흙을 야적할 경우 최고 높이 1/3이상 방진벽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산을 깎을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 흙을 싣거나 내릴 때는 물 뿌리는 시설을 설치하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명시하지 않아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조치를 하는 현장도 많다.

공사장 소음도 마찬가지다. 소음 진동 관리법을 위반할 경우 최고 2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이 전부다. 더군다나 공사 작업 시간에 대한 규정도 없다. 시공사가 공사 시간이 촉박하다며 이른 아침이나 휴일에 공사를 강행해도 막을 근거가 없는 것이다.

높이 규정만 있을 뿐 두께나 재질에 관한 내용이 없는 방음벽 규정도 문제다. 시공사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값싼 방음벽을 설치해도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현행 법규에 허점이 너무 많다"며 "지자체가 그때 그때 민원을 처리하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그:#은평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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