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소방 지휘관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자료가 있다. 바로 1973년 발표된 '불타는 미국(America Burning)' 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당시 화재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방책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시민과 소방대원의 안전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화재예방, 소방교육 그리고 소방대원 직무훈련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당시 닉슨(NIXON) 대통령은 보고서를 준비하는 '화재예방 및 통제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f Fire Prevention and Control)'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결국은 보고서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화재를 예방하는 것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미 의회는 그 이듬해인 1974년 '미 연방 화재예방 및 통제에 관한 법률(Federal Fire Prevention and Control Act of 1974)'을 통과시키게 된다.
이 법에 의해 오늘날 미국소방 정책의 핵심 역할을 하는 '미 연방 소방국(U.S. Fire Administration)', '미국 국립 소방학교(National Fire Academy)', '미국 화재사고 보고시스템(National Fire Incident Reporting System)', 그리고 '소방 연구센터(Center for Fire Research)' 등이 만들어진다.
이 보고서는 그야말로 오늘날 미국소방의 기초를 다져준 디딤돌이 되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45년도 더 된 이 보고서가 아직도 꾸준히 검토되고 보완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없이 많은 정책들이 정권이 바뀌거나 조직의 수장이 바뀌면서 내팽개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보고서는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1973년 '불타는 미국(America Burning)' 보고서를 필두로, 1987년 '불타는 미국 개정판(America Burning Revisited)' 보고서가 나왔고, 2002년에는 '위기의 미국(America at Risk)' 보고서가 출간되어 그동안의 문제점들의 개선사항과 아직도 미흡한 내용들에 대한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이 보고서들 덕분에 미국의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은 안전한 건축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담은 보고서라 하더라도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오랜 고민의 결과들은 결국 빛을 보기도 전에 사장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1월 '미연방재난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에서 발간한 '소방조직의 위험관리 실제(Risk Management Practices in the Fire Service)'란 백여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보면 여기에도 일련의 '불타는 미국(America Burning)' 보고서 시리즈에서 지적되어 온 내용들에 대한 점검과 반성이 들어있다.
잊혀질 듯하면 다시 검토하고 또다시 잊혀질 만하면 꺼내어 다시 살펴보는 것은 미국인들의 집요함일까 아니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일까.